<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을 때의 저는, 주인공들에게 곧잘 감정이입을 하곤 합니다. 그건 좋은 일이 생겼을 때보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한층 더 깊어져요. 기쁜 일은 저의 일처럼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가 마치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졸이게 되죠. 그래서 위기와 시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고나면 목이 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져 와서 금방 피곤해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일부러 피해다니기도 하는데 이 책은 피하지를 못했네요. 거의 900페이지에 이르는 책 두께 때문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 힘겨워보여서 책을 읽는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뒤로 한 채 회사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하는 디나, 그리고 그 디나 밑에서 재봉 일을 하는 옴과 이시바, 디나의 집으로 하숙을 하러 온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리저리 엮여있죠. 디나의 부모님, 오빠와의 관계,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를 잃은 이야기, 옴과 이시바의 탄생과 그들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마넥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지만 문명의 발전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물처럼 저절로 마음 속으로 다가듭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디나와 옴, 이시바와 마넥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인도, 그 자체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희망으로 살아갈 거에요. 어제가 오늘 같지 않듯 내일이 오늘 같지 않을 거라는 희망,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희망. 시간의 흐름은 한 때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거든요.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때 느꼈던 그 시간의 흐름은 그래도 내가 잘 버티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나 봅니다. 먹을거리를 해결했더니 당장 몸을 뉘어야 할 자리가 보이지 않고, 오늘 이 일을 해결했더니 또 금방 다른 일이 터져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 속의 저처럼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일이 해결되면 이제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결혼을 꿈꾸고 가정을 생각해요. 숯으로 양치질을 해서 새하얗다는 그들의 치아가 보이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웃음이 눈 앞에 둥실,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옮긴이는 '이 작품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국가와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걸까요? 그럼 그 때 부유하고 잘 살았던 사람들은 국가와 어떤 적절한 균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 적절한 균형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서 들었다면 괜찮게 느껴졌을 그 단어가 지금의 저에게는 어쩐지 부도덕하게 생각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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