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처는 때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괜찮다고 위로해도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납득하지 않으면 그것이 괜찮은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모든 상처를 치료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서, 혹은 치료하고 싶었지만 시기를 놓쳐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새살이 돋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구멍을 메워버릴 때도 분명 있다. 확실한 것은 그저 메워져있을 뿐인 상처의 구멍은 크기가 점점 커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길라르가 나흘 간의 짧은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 아구스티나는 그녀만의 광기 속에 빠져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녀가 호텔에 있다는, 체크인할 때 어떤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고 그녀의 불륜을 의심하는 아길라르다. 그들 앞에 소피 이모가 나타나 아구스티나를 간호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시점과 인터뷰 형식을 이용해 아구스티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봉인하고 있는 불행은 무엇인지, 그녀를 광기로 몰아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음습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는 이야기를 한층 어둡고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그런 장치보다도 더욱, 이 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구스티나처럼 진정으로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듯 행동하는 그녀의 가족들이다. '이 책은 정말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소피 이모와 불륜을 저지른 아구스티나의 아버지. 그 불륜의 증거가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보이는 가족들의 행동. 특히 아구스티나의 어머니의 반응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그들의 가정은 지킬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을 포기하면서 지키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 행동과 그 일이 있은 후의 가정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어째서 아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추측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파격적이고 사실적이지만 나는 그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콜롬비아의 사회적 상황과 부패, 돈과 권력에 허물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유명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데, 내가 이 작품에 완전히 빠지지 못한 탓일까. 자꾸 '이 작품 안에 자신의 작품이 몇 편 언급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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