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지음, 송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어두운 조명, 부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들, 이상하게 생긴 병들, 그 병들에 담긴 색색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내용물.그리고 그 앞에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정체모를 누군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마법에 대한 이미지는 이랬다. 아마도 '백설공주'에 나온 의붓엄마의 모습이 기억속에 꾸욱! 박혀버린 모양이다. '신데렐라'에는 착한 마법을 부리는 요정도 나오지만, 나쁜 마녀의 이미지는 쉽사리 지워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도 '분명히 아내가 나쁜 마법을 써서 남편을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불행을 가져다주려고 하다가 들켜서 벌을 받는 이야기일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다. 표지를 보라.  사악한 것일수록 아릅답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주인공 노먼은 젊은 사회학과 교수로 사랑하는 아내 탠시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의 화장방을 장난삼아 몰래 뒤적이다가, 그 곳에서 마법과 주술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노먼에게 있어, 탠시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곧 아내에게 당장 마법을 그만 둘 것을 권유한다. 탠시는 처음에는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교수진의 아내들도 모두 마법을 사용하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흥분하지만, 곧 마법 도구를 없애고 그의 말에 따른다. 그런데, 그 후로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여학생과의 불건전한 루머, 총기에 의한 살해 위협..더구나 주위 상황은 그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할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가며,탠시를 살리기 위해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상황까지 내몰린다. 

 -탠시는 그의 연구 작업 내내 지치지 않고 능률적인 비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악인과 선인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대결 구도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결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싸움이다. 탠시는 과연 노먼의  '비서'역할을 한 것일까. 대답은 NO다.책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 아직 혼전순결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고, 대학은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들로 가득찬 답답한 공간이었다. 물론 남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시대에  앞에 나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노먼의 몫이지만 그런 그를 지켜내는 것은 그의 아내 탠시의 몫이다.즉, 단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고, 안전한 세계로 그를 이끌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다른 교수의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교수인 남자들은 뒤에서 자신들의 아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학과장이라는 자리에 아내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정숙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책은 강한 듯 하지만 약한 남자들의 모습과, 순종적인 듯 하지만 뒤에서 온갖 마법을 부리는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준다.

-마법은 실용적인 과학이다.-
노먼은 죽음에 다다른 아내를 구하기 위해 마법 안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결국 공식을 찾아내고 아내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마법은 근거없는 미신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마술도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믿으며, 그 속임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근거없는 것인 걸까. 나는 사람의 의지는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전부터 믿어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마술의 중요 요소는 사람의 동기다. 마술이 사람의 동기와 욕망을 고려한다면, 의지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결국 마술도 옛날에는 부정되었던 많은 과학이론들처럼 나중에는 실용적 과학이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단순히 미신이다, 쓸모없다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책 앞장에 적힌 것처럼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도 마법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했고, 작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싫어하는 온갖 과학 법칙 이야기가 나와도 참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내가 정말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분위기, 곳곳에 숨어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몇 번 음미해도 좋을 정도로 멋지며 영화로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많은 상을 휩쓴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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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7-09-0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뽑히신 것 축하드려요. 리뷰 읽어보니 재미있는 책일거 같네요. 보관하고 갑니다.^^

분홍쟁이 2007-09-04 23: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