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지웅배. 쌤앤파커스. 2026. 232쪽)

: 천문학자는, 아니 천문학은 쓸모가 없다, 당장은. 인간의 삶을 개선시켜 줄 기술을 개발하거나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학문이 인류의 행복에 당장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반인들은 천문학에 꽤나 우호적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자가 얘기했듯 별이 주는 낭만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별에 왜 그렇게 낭만성을 부여하는 지 의문을 가진다. 별은 그냥 별일 뿐이라고. 하지만 에세이의 내용이 전개될 수록 저자 또한 별에 관해 낭만적인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사실 저자가 처음부터 얘기했듯 이 책은 저자의 의식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쓰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상당히 무게 있는 천문학적 지식들이 꽤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로서 바라보는 죽음, 종교 등에 관한 고찰도 꽤 흥미롭다. 가벼운 맘으로 집어들었고 즐겁게 읽었지만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2. 미츠(시그리드 누네즈, 메이 역. 코라초프레스. 2026. 208쪽)

: 1934년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 부부는 지인 바버라와 빅터 로스차일드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저택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한데 이 곳에는 남아메리카 마모셋 한 마리가 있다. 빅터가 아내에게 선물한 원숭이 미츠. 딱 봐도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 이 아이는 레너드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다. 몇 달 후, 로스차일드 부부는 여행을 이유로 미츠를 울프 부부에게 맡긴다. 한차례 건강상의 위기를 겪은 후 살아난 미츠는 그 뒤로 쭉 울프 부부와 함께한다. 이 책은, 역자가 밝힌 대로 미츠의 전기이자 버지니아가 미츠와 함께 살았던 4년 간의 이야기이다. 


마모셋을 빗대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마모셋과 함께 한 이야기. 물론 거기에 더해 글쓰는 여성으로서의 삶도 이야기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곡해되는 글들, 쓰는 것에 대한 그리고 평가에 대한 부담감. 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나는 사실 미츠와 핑카, 샐리의 이야기에 더 마음을 빼았겼다. 남다른 섬세함으로 미츠를 비롯한 동거 동물들과 교감을 하기도 하지만 당대의 동물에 대한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미츠와의 교감에서 영감을 받아 책( 『플러시』)를 집필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해 대강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의 울프는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더 흥미로웠다. 즐겁게 읽었고, 이참에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밀려 있는 다른 책들이...



3. 제임스 서버 :  윈십 부부의 결별 외(제임스 서버, 오세원 역. 현대문학. 2015. 384쪽)

: 단편집. 유머 작가였다는 건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원작인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은, 작품 자체는 그저 망상증 환자의 머릿속 -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 을 보여주었지만 단순히 상상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모든 상상과 월터의 현실이 매우 정교하게 맞물리는 게 저자의 뛰어난 필력을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도 다 재밌었다. 마냥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미묘하게 삶의 페이소스를, 그 씁쓸함을 기저에 깔고 있어 즐겁게 읽으면서도 현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4. 플라테로와 나(후안 라몬 히메네스, 박채연 역. 을유문화사. 2013. 376쪽)

: 당나귀 플라테로와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시집.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시가 아니라 그냥 산문인가 싶었지만 읽다보니 시가 맞긴 했다. 당대의 생활상, 특히 저자의 고향인 작은 시골 마을 모게로의 여러 모습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마음 아픈 에피소드도 있고 - 사실 많다 - 아무래도 동물과의 일화이기에 결말도 정해져 있지만 시인의 부드러운 눈빛과 친근한 시어가 마음을 잘 달래준다. 은빛 당나귀 플라테로는 이렇게 영원히 산다. 



5. 벌집(카밀로 호세 셀라, 남진희 역. 민음사. 2010. 392쪽)

: 스페인 내전 직후 1940년 초 마드리드 외곽의 생활상. 카페 델리시아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가난하고 할 일 없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딱히 주인공이라 할 사람들은 없지만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감할 만한 사람도 없다. 단지 가난하고 비참해서만이 아니다. 다들 그저 삶을 견디기만 하기 때문도 아니다. 독자로서 그들에게 동정 이상의 애정을 갖기 힘든 건 아마도 작가 자신이 이들 인물들에 애정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르틴의 누나 필로라든가 카페를 돌며 노래하는 어린 소년 등은 가엾지만 그외의 사람들은 글쎄... 가끔씩 화가 나는 건 이들이 자신의 삶을 건설적으로 개선할 의지조차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도 그것일테고. 왠지 이 저자의 책은 이거 한 권으로 족할 거 같다. 



6. 길 위의 오케스트라(가레스 데이비스, 장호연 역. 아트북스. 2015. 324쪽)



7. 레이먼드 챈들러 : 밀고자 외(레이먼드 챈들러, 승영조 역. 현대문학. 2016. 600쪽)

: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단편 모음집. 아마도 저자의 초기 작품들을 모은 거 같은 게, 주인공들의 이름이 각각인데 역주를 보면 이들이 다 나중에 필립 말로가 되는 듯. 이 작가의 장편을 딱 한 퍈 읽었는데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동안 안 읽고 있었다가 단편은 좀 다를까 싶어 읽게 되었고 대체로 다 재밌었다. 당대의 논리가 조금 이해 안 되는 작품도 있긴 했지만(<눈 가의 돈다발>). 가장 재밌었던 건 <네바다 가스>.



8. 몬터규 로즈 제임스 :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외(몬터규 로즈 제임스, 조호근 역. 현대문학. 2014. 676쪽)

: 공포 소설의 대가인 저자의 대표 단편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대체로 공포라기보다는 고딕 쪽에 더 가까웠다. 무서운 이야기라기 보다는 신기한 이야기 쪽. 그래서 더 재밌기는 했다. 난 호러는 별로 안 좋아해서. 사실 초반의 몇 편은 너무 패턴이 보이기도 했다. 건드려서는 안 될 물건, 문서 등을 건드려서 탈 나는 이야기들. 좀 심드렁해 질 무렵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가 나타나서 후반부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준으로 가장 재밌었던 건 <바체스터 대성당의 성가대석>. 그런데 가장 무서웠던 건 <포인터 씨의 일기장>.



9. 저 지금 탑승합니다(정보라. 위고. 2026. 304쪽)

: 2022년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된 저자가 이후 원치 않던 바쁜 해외 출장들을 다니며 느낀 단상들을 모은 에세이. 저자는 알려져 있다시피 행동하는 작가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전세계로 강연과 시상식 참석을 위해 다니면서도 시간이 나면 시위에 참여하고,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주제라면 지지 의사를 밝힌다. 이러한 저자의 단단함이 지난 4년간의 여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시위며 이즘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이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여행 이야기이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자가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겪었던 행사, 사람들의 의야기. 저자의 행동력에 감탄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행사 진행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들을 읽을 땐 한없이 유하고 친근한 저자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때는 단호한 게 정말 멋졌다. 아울러 한 해 한 해를 기억하는 키워드 또한 인상깊었다. 



10.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 세상을 사고 싶은 남자 외(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이난아 역. 현대문학. 2014, 424쪽)

: 이른바 '터키의 체호프'로 불리는 저자의 단편집. 저자 이름은 처음 들었고 역자가 익숙해서 고른 책이다. 전반적으로 당대 터키의 생활상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서민들이 주인공인 단편들. 대체로 흥미롭게 읽었다. 읽으면서 앞서 읽은 『벌집』을 떠올렸는데, 서술 방식에 있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벌집』을 읽으면서 약간은 장편이 아닌 연작 소설집의 느낌도 받았었는데 이 책 또한 단편집이기는 했으나 터키 서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연작 소설집 같기도 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벌집』의 저자와는 다르게 자신이 쓴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애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때로는 바보같고 때로는 답답할지언정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독서 또한 즐거웠다. 



11. 바다 여인의 선물(데니스 존슨, 김승욱 역. 다산책방. 2026. 284쪽)

: 단편집. 이 저자는 처음인데 다섯 편 모두 인상깊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펴낸 단편집이라는 건 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읽기 전에 알았더라면 각 단편이 다르게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주인공들이 모두 조금씩 철이 없어 보였기에. 그럼에도 그들이 밉지 않았던 건 나름의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 자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그저 인정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화자여서, 그들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어도 그들을 백안시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게 저자의 필력이겠지. 다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표제작.



12.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헬렌 듀런트, 황성연 역. 서사원. 2026. 388쪽)

: 막대한 사채빚을 지고 도망쳐 이름까지 바꾸고 살고 있는 도나. 친구집 쇼파에서 신세지고 있는 힘겨운 삶에 허덕이는데, 자신을 장례식에 초대하는 이메일을 받는다. 전혀 연고가 없는 주소와 내용이었지만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런던 외곽의 장례식에 참석한 도나는 관에 선명히 새겨진 이름을 보고 놀란다. 앨리스 앤더슨. 바로 자기 자신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죽은 이는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무시하기만 하는 가운데 잘생기고 친절한 맥스가 말을 걸어 온다. 죽은 앨리스는 자신의 개인 비서였으며 정말 훌륭히 일을 해줬다고. 갑자기 사망한 그녀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일자리를 제안해 오는 맥스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 도나는 맥스가 아내 타라에게는 매우 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목격한다. 주거와 식사까지 제공하겠다는 맥스의 제안에 따라 그녀가 살 별채를 둘러보던 중, 맥스의 딸 한나와 마주치는데, 한나는 도나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스포)

제목과 설정은 좋았는데, 내용은 정말이지... 맥스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한 건 범인에 대해 혼선을 주기 위해서라는 건 알겠는데 범인은 너무 뻔해서 반전이랄 것도 없다. 그냥 거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 앞뒤가 안 맞고 짜증날 뿐. 일관성이 있는 캐릭터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내용이 말이 안 될 뿐 아니라 범인의 동기도 전혀 공감도 이해도 가질 않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너무 생뚱맞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도 짜증난다. 게다가 교정 오류도 꽤 많다. 정말 시간이 아까웠다.



13. 크로싱(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역. RHK. 2025. 464쪽)

: 해리 보슈 시리즈. 사실 이 이야기의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미키 할러 시리즈를 먼저 읽는 바람에 살짝 김이 새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잘 쓴 이야기여서 즐겁게 읽었다. 사실은 오랜만에 만나는 해리가 너무 좋아서 푹 빠져서 읽었지.

경찰 윗분들과 틀어져 결국 퇴직을 한 해리는 미키에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소송을 맡긴 채 소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 대학생이 된 딸 매디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아빠를 귀찮아하지만 해리는 그저 딸이 걱정스러울 뿐. 한편 미키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갱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손을 씻고 살고 있는 다콴이 영향력 있는 정치인 렉시 파크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지만 그가 무죄임을 믿고 그를 위해 일하는데, 조사관이 교통 사고가 난다. 미키는 해리에게 조사관 역할을 제안하고, 피의자를 위해 일하는 건 경찰 조직을 떠났음에도 경찰을 배반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해리는 망설인다. 하지만 미키의 간청에 들여다 본 사건 조서에서는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해리가 미키와 함께 일하게 된 계기가 이거였구나. 초반 해리의 갈등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어서 해리가 미키에게 합류해주길 바랐고 빨리 속시원하게 진실이 밝혀지길 바랐다. 권선징악은 통쾌했고 해리는 끝까지 멋지고 귀여웠다. 도입부부터 마지막 챕터까지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었던, 쓸데없는 수식어도 불필요한 문장도 하나도 없었던 명불허전. 이렇게 잘 쓴 장르 소설은 이미 장르를 넘어선 느낌이다. 



14. 폭풍 한가운데 1, 2(패트릭 화이트, 박유진 역. 잔상. 2026. 428쪽, 528쪽)



15. 프로코피예프, 그 삶과 음악(그레고리 하트, 임선근 역. 포노. 2014. 144쪽)



16.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마틴 에이미스, 허진 역. 은행나무. 2013. 424쪽)

: 2006년, 15세의 성실한 학생 데스먼드는 자신의 친할머니와 자는 사이이다. 할머니의 나이는 서른 아홉.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는데, 문제는 데스먼드의 삼촌 라이오넬. 라이오넬은 할머니의 일곱 번째 자식이자 무려 다섯 살 때부터 범죄를 저질러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범죄자이다. 데스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라이오넬과 함께 살고 있는데 라이오넬은 엄마의 옆집 이웃의 제보로 엄마가 누군가와 섹스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게 누구든 혼내줄 거라고 벼른다. 2년 후, 감옥에 있던 라이오넬은 빼앗은 로또를 데스를 통해 응모해서 무려 1억 4천만 파운드에 당첨된다. 얼마 후 출소한 라이오넬은 그야말로 셀럽이 되고, 데스는 대학에 진학하여 입학 면접일에 만난 도나와 사랑에 빠진다.


초반의 역겨움(?)을 잘 넘기면 꽤 재밌는 블랙 유머를 즐길 수 있다. 라이오넬의 돌아이 짓은 그야말로 헛웃음조차 안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또 그의 논리가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라서... 어찌됐든 약간의 대리 만족과 함께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데스가 있다.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줄 뿐 아니라 독자의 정신줄도 잡아주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일 뿐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한 라이오넬의 행태에 지칠 때쯤엔 데스의 평범하고도 성실한, 아름다운 가정이 등장해서 잠깐의 쉴 시간을 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작가의 유머가 다가 아니다. 난 마지막 챕터를 읽고 나서야 이 이야기가 완벽한 수미상관이었음을, 왜 반역본 제목이 이렇게 붙었는지를 이해했다. 작가의 필력이란 이런 것. 마지막 직전의 챕터를 읽으며 많이 마음 졸였는데 결말이 내가 좋아하는 결말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작가의 필력에 대한 감탄과 마음에 드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를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다. 은근 쫄려...



17. 제 9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 작품집(혜림,김상태,김아직,황수경. 엘릭시르. 2026. 336쪽)

: 미스터리 대상이라는데, 솔직히 대상 작품은 내용면에서는 좀 시시했다. 범인은 처음부터 분명했고, 다만 그걸 밝혀내는 과정을 여러 시점과 화자를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저자의 자료 조사 실력과 나름의 필력을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그게 다다. 오히려 맘에 들었던 건 김아직. <호명: 망자의 이름을 부르니>는 친근한 듯 새로운 이야기였다. 바리 공주 캐릭터를 더 발전시켜서 단편 연작이나 시리즈물로 출간해도 좋을 듯. 



18. 오케스트라 경영학 : 하모니의 역설(정현구. 솔과학. 2026. 266쪽)

: 사실 제목만 보고도 이 책이 내가 싫어하는 자기계발서 류의 책이라는 건 알았지만 오케스트라 자체에 대한 책을 찾아봤는데 예상 외로 별로 없어서 그냥 읽었다. 저자는 40여년 경력의 지휘자로, 로컬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지만 창단만 한다고 저절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오케스트라의 경영을 위해 수익을 고려하여 마케팅을 연구하고, 급기야는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오케스트라의 경영이 일반 회사 경영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고 이를 일반 기업들에게도 전파하는 컨설팅 활동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지식을 담은 책이다. 앞의 길고 긴 추천사들부터 질리긴 했지만 저자의 의도는 좋았으니 스킵하기로 하고, 저자가 서문에서 다른 것보다도 음악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썼다고 한 말을 믿고, 음악에 관한 부분은 진지하고 세심하게, 그 외의 경영 컨설팅 부분은 슬슬 읽었다. 몰랐던 지휘자 - 카를로스 클라이버 - 와 그밖의 음악 상식 - 예를 들면, 오케스트라가 맞추는 표준 음높이는 440Hz 등- 을 얻게 된 걸로 만족한다. 



19. 코스트 베니핏(조영주,김의경,이진,주원규,정명섭. 해냄. 2022. 216쪽)

: '가성비'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 필진이 다 꽤 괜찮다고 생각했고 주제도 맘에 들어서 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들이 잘 빠진 거 같지 않다. 오히려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듯 싶은 - 아니 어쩌면 가장 주제를 잘 구현했나? - 정명섭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오마주한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가 가장 재밌었다. 



20. 마운트 아날로그(르네 도말, 오종은 역. 이모션북스. 2014. 208쪽)

: '나'는 세상 어딘가에 하늘과 연결되는 산이 있다는 내용의 컬럼을 신문에 싣는다. 그 산을 통해 인간은 신성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 산은 등성이까지는 인간이 쉽게 접근 가능하다고. 얼마 후 나의 의견에 동조하며 그 산(마운트 아날로그)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편지를 받고 발신자를 만나러 간 나는 수도사 출신의 소골과 알게 되고, 그는 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며 함께 그 산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나와 소골은 각자 믿을 만한 지식인들을 모아 탐험대를 꾸린다.


소설은 당대의 모험적 분위기와 철학적 사유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번역이 과하게 문어체적이다 싶기는 했지만 이 짧은 미완의 소설이 내내 오류로 점철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사소한 오타나 띄어쓰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분명 몰라서 틀렸을 게 뻔한 맞춤법 오류나  문법 오류는 처참할 정도이다. 나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오류에 부딪칠 때마다 한솜이 나와 독서 의지가 떨어졌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아쉬운 독서였다. 



21. 햇빛무늬동물들(하가람. 은행나무. 2026. 220쪽)

: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된 어느 미래. 이모 영선과 이모의 딸 세오 언니와 함께 항구도시 무로에 사는 연오는 키키섬의 키키주에 가는 게 소원이다. 그곳에는 멸종된 호랑이 금동이가 있다. 세오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더 어렵게 구한 키키랜드 입장권을 들고 배에 함께 오른 어느날, 연오는 돌아올 수 있었지만 세오는... 그리고 말을 잃은 연오는 무로군의 뒷산에 있는 절에 자주 가는데, 그곳에 어느날 웅이 나타난다.


외로움이 무늬를 만든다면, 햇빛무늬일까. 그림자가 진할수록 금색은 더 찬란하다. 우리는 모두 금색과 검은색을 다 갖고 있다. 그걸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상대는 드물지언정.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을 하지 않고도 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중요치 않다. 그리고 진짜 우정은, 사랑은 상대방의 심장 밑을 칼로 저밀 수 있는 것. 



22. H 파일(이스마일 카다레, 이창실 역. 문학동네. 2022. 244쪽)

: 1930년대, 알바니아의 소도시 N시의 시장은 내무장관으로부터 공문을 받는다, 두 명의 아일랜드인이 N시를 방문할 예정인데, 스파이인 것 같으니 철저히 감시하라고. 이 방문 소식을 들은 시장 부인은 무료한 생활에 드디어 흥미거리가 생겼음을 기뻐하고, 두 외국인을 상대로 망상을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아일랜드인은 사실 호메로스 시의 원형을 찾아 알바니아 고지대의 음유시인들의 고전 시가를 연구하기 위해 오는 것. 도착한 두 명의 연구자는 뜻밖의 환대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한편 시장은 그들을 파티에 초대하면서도 자신의 부하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첩자를 붙여 밀착감시한다.


설정은 블랙 코미디이지만 두 아일랜드인의 진지한 연구가 이야기의 무게를 잡아준다. 이들을 둘러싼 알바니아인들의 소동과 대비되는 그들의 진중함 덕분에 이야기에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해주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필력이지. 이 소동이 대체 어떻게 끝날 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었다. 결말은 우스우면서도 씁쓸했지만 마지막의 그 노래는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하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고대 시가의 전승와 사라져가는 과거의 아름다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두려움, 당시 국제 정치 사회의 복잡한 상황과 발칸 반도의 민족 분쟁이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도. 이 작가는 읽을 수록 내 마음 속 거주 면적을 점점 넓히는 것 같다. 



23. 꿈이다 아니다(김중혁. 안온북스. 2026. 312쪽)

: 주이창은 꿈을 영상으로 포집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달리'에서 꿈을 해석해 주는 드림 큐레이터이다. 꽤 인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 그는 VIP인 기태제약회사의 회장 이기태의 개인 드림큐레이터 자리를 제안받고 엄청난 연봉에 혹해 그 자리를 수락한다. 이기태는 주이창에게 달리에서 비밀리에 VIP들에게만 제공하는 '갈라'라는 서비스가 있다며 그 서비스의 관리자로 일할 것을 제안한다. 한편 이창의 동생이자 경찰인 주아연은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조력살인과 관련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어 조사를 위해 이수은이란 이름의 언더 커버로 모임에 들어가고, 회장 김정연을 통해 목사 이정섭을 만나는데, 이정섭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루팅'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 대신 육체를 포기하면 된다고.


꿈에 관한 작가의 상상력이, 그 범위가 감탄스러웠다. 꿈을 영상으로 만들어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야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음직 하지만 그 중 행복한 꿈만을 모아 그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솔직히 난 반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천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도 보여줬듯 그런 세계 안에서도 당연히 힘은 불균형하고 자신이 가진 힘과 설정을 악용하는 인간들은 있겠지.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꿈 속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기도 했지만 어지럽기도 했다. 난 이 세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꿈 속으로 도망치고 싶지도 않다. 비록 내게는 주아연 곁에 있는 한가진이나 오연숙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성들이 연대해 거대 기업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현실에 머물고 싶다. 



24. 자작나무 숲(김인숙. 북다. 2025. 384쪽)

: 곡교의 산 1번지. 이곳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귀신집이다. 곡교의 어느 집보다 크고 웅장한 석조 저택은 발디딜 틈 없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구청의 실무 직원 정보하는 이곳에 거주하던 노인이 쓰레기 더미에 깔려 숨졌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한때 이 곳 담당이었지만, 그리고 노파의 손녀 모유리와 만나는 사이였지만 모두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현 담당자와 이전 담당자 모두 휴가중이어서 정보하에게까지 연락이 간 것. 그곳에 간 정보하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 시신을 구조하려면 쓰레기부터 치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문업체가 조금씩 쓰레기를 치워가는 가운데 들것이 나오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집의 주인이자 쓰레기를 모으던 강무자는 확실히 죽었는데, 그럼 이 산 송장처럼 보이는 사람은 강무자의 남편 모근우일까 혹은 아들 모기리일까? 


호더 할머니와 사생아 손녀. 어쩌면 모유리는 나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 다섯에 최무자의 아들 모기리의 아이를 낳은 강유이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고, 모유리가 나빠진 건 나쁜 엄마와 살면서 호더 할머니에게서 돈을 받아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난 읽는 내내 모유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강무자를 찾아가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그 집을 찾을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는,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쓰레기 수레를 안 밀어줄 수 없는. 하지만 모유리의 마음은 읽을 수록 심연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야기 속 진실보다 궁금했던 모유리의 마음과 행복... 어차피 삶이란, 버리지 못할 각자의 쓰레기를 끌어안고 그 안에 꽁꽁 숨겨놓은 비밀을 두려워하다 결국은 자신의 쓰레기 더미에 깔려 끝을 내는 것에 불과한 걸까. 이제는 모유리가 쓰레기 더미도, 석조 저택도 모두 버리고 가벼워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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