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 그 삶과 음악 ㅣ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3
그레고리 하트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로코피예프는 내게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사실 전에는 그저 음악만 듣다가, 라흐마니노프의 전기를 읽으며 그에게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프로코피예프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듯 했고 – 이는 리흐테르의 언급이나 프로코피예프가 라흐마니노프의 후기 발표곡들에 대해 얘기한 기록들을 읽으면 짐작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훌륭한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프로코피예프는 내가 사랑하는 쇼스타코비치도 좋아하지 않았고, 쇼스타코비치 또한 프로코피예프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던 듯 하다 – 이는 진위 논란이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언급된 내용이다. 해서 나는 프로코피예프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해 보고 싶었고, 내가 큰 노력 없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인 이 책을 읽었다.


프로코피예프는 1891년 4월 23일, 그 해의 100일째 되는 날 손촙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였는데 거의 10년을 재학한다. 당시 그에 대한 교수진의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던 듯. 재능이 있는 건 확실했으나 자신의 재능만 믿고 꽤나 건방지게 굴었던 모양이다. 그가 아나톨리 리아도프 교수의 화성학 수업에 대해 “값비싼 장신구 같다”며 조롱한 이야기나, 림스키코르샤코프에게 ‘함재 어뢰정’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이를 들은 림스키코르샤코프는 그저 ‘재능은 있으나 미성숙한 학생’이라며 채념했다는 일화가 있다(18쪽).


음악원 졸업 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자 했으나 그 자신의 성에 찰 만큼 대중과 평론단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고, 작곡이 오히려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작곡에 몰두하는데,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꽤 호평을 받았다. 초기의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는데 특히 콘스탄틴 발몬트와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23쪽).


당시 러시아는 사회, 정치적 혼란기였지만 프로코피예프는 191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작품들을 출판하고 해외로 연주 여행을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1918년에는 교육인민위원장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의 공식적인 허가증을 받아 미국으로 출국한다.


미국에서의 프로코피예프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아니었다. 1923년 그는 자신과 음악뿐 아니라 체스, 천문학, 식물학에 대한 취향마저 일치하는 스페인 출신의 오페라 가수 카롤리나 코디나(이하 리나)와 독일에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1924년 첫째 스뱌토슬라프, 1924년 둘째 올레크)을 출산한다. 그는 곧 파리로 건너갔고, 끊임없이 작곡을 하지만 모든 곡들이 호평을 받은 건 아니다. 초연 자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한 곡들도 있었다.


이때쯤 그는 고국에서의 연주 활동도 하게 되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들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중과 음악계를 보며 꽤나 고무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귀국하는 건 망설이는데, 아무래도 당시 소련의 정치 상황이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작곡가 자신이 그걸 이해하기 힘들어 했던 거 같다(86쪽).


이후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나아지고 명성을 쌓아갔지만 곧 대공황으로 인해 활동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소련 정부가 그에게 계속 작곡을 의뢰하는 등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1936년 가족들을 데리고 영구 귀국하게 된다. 그는 음악 활동을 할 수만 있다면 정치 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지만 솔직히 난 이 결정이야말로 그의 오만함에 근거한 판단 미스라고 생각한다(이에 대한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귀국 초반에는 프로코피예프도 꽤나 호의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이 초연을 하고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작곡가라 해도 당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노선에 대한 당국의 강한 권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의 작품 또한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하여 프로코피예프는 ‘안전한’ 어린이 음악으로 도피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피터와 늑대>가 바로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저자는 언급을 피했지만 검색해 본 결과에 따르면 이 시기에 프로코피예프는 노골적인 스탈린 찬양가를 쓰기도 했다.


1941년 프로코피예프는 처음으로 심장 마비를 겪고 이로 인해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한다(95쪽). 이 책의 저자는 아무래도 프로코피예프를 최대한 옹호하고 싶어했던 듯 하다. 1941년 당시 프로코피예프는 아내와 별거 중이었고 1938년에 만난 미라 멘델손과 동거 중이었다. 당국에서는 작곡가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코카서스 지방으로의 피난을 권했고 작곡가는 아내와 두 아들은 버려둔 채 둘만 홀랑 떠난다. 내가 화나는 건 이 부분이었다. 정확하고 디테일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무리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한들 – 이 부분은 이 책 저자의 짐작이다. 프로코피예프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 아내뿐 아니라 혈육인 두 아들마저 내버려 두고 피난을 가고 싶을까? 게다가 후에 아내 리나는 당국에 의해 스파이 혐의를 받아 수용소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난 이 대목을 읽으며 화가 나서 챗GPT에게 좀더 정확한 정보를 요구했는데, 그에 의하면 프로코피예프는 당시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아내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 건 1947년의 일이고, 이 때 소련 법원은 프로코피예프 부부가 두 사람의 결혼을 소련 당국에 적합한 방법으로 등록하지 않았으므로 혼인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후 프로코피예프는 1948년 1월 미라와 결혼하고, 첫 아내 리나는 1948년 2월 당국에 체포되어 수개월의 구금 조사 끝에 20년형을 선고 받고 10월부터 강제노동수용소에 감금된다. 다행히 20년을 다 채운 건 아니고 1956년 6월말일에 석방되고 1972년에서야 해외 출국을 허가 받아 이후 자유 세계에서 임종한다.


이 책에서는 리나의 구금이 프로코피예프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거라 얘기하지만(95쪽)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코피예프가 바람나지 않고 가정을 지켰다면 리나 또한 지킬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위의 시간 순에 따른 흐름을 보면 내 생각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당국이 일개 작곡가의 눈치를 보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작곡가의 명성이 리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잠깐 옆길로 새자면, 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나치 부역이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해 왔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정부 하에서 국립음악원 원장까지 지낸다. 그리고 독일 패전 후에도 따로 처벌을 받지 않고 빠져나간다. 후에 그에게 제기된 부역 혐의에 대해 그는 유대인 며느리와 손자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변명하는데, 난 그 변명이 정말 치졸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와 리나의 이야기를 읽은 후 차라리 슈트라우스가 낫다는 생각을 했다. 슈트라우스는 적어도 가족을 지키기는 했지 않은가(며느리와 손자는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고 가택연금 상태로 2차 대전 기간을 지낸다). 프로코피예프는 슈트라우스보다 몇 백배는 더 비겁하다. 저자처럼 이걸 심장 마비를 겪어서 어쩌구 하며 옹호하지 말기를. 프로코피예프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 이기적이고 옹졸한. 그의 명예욕이 아니었다면 리나가 소련에 들어갈 일도 없지 않았나. (첨언하자면, 챗GPT는 내 의견이 생각해 볼만은 하지만 이혼과 리나의 수용소행의 인과관계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프로코피예프는 당국의 철저한 검열에도 쉴 새 없이 작품을 썼고, 건강을 잃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창작열은 불타올랐다. 하지만 1953년 3월 5일, 심각한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스탈린 역시 사망했고, 덕분에 프로코피예프의 죽음은 그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다. 작곡가는 아마도 아쉬웠을 듯.


위에서 얘기했듯 난 인간으로서의 프로코피예프가 궁금했고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가 고결한 성품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영웅이나 위인이 아닌, 단점을 지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내보이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건 꽤 흥미로우면서 인간적인 면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프로코피예프의 성품에 대해 더 실망했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이기적이고 얕은 인간이었구나. 물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나 또한 훌륭한 성품을 지니지는 못했다. 게다가 프로코피예프의 이런 면은 예술가의 예민함과 예술에 대한 헌신에 따른 부작용(?)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민함과 별개로 타인을 지키고 위했던 많은 예술가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난 앞으로도 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 매번은 아니겠지만 그의 작품을 들을 때마다 인간의 복잡성과 다채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나쁜 인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