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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한가운데 2 ㅣ 시대의 여성 시리즈
패트릭 화이트 지음, 박유진 옮김 / 잔상 / 2026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스포)
임종이 멀지 않은 엘리자베스 헌터 부인. 이미 눈은 멀었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오래전에 남편과는 사별했고, 이제 그녀의 곁에 남은 건 요리사 한 명과 가정부 한 명, 오전, 오후, 야간 전담 간호사 세 명과 오래 전부터 집안의 일을 봐주던
변호사 한 명 뿐이다, 유명 연극배우인 아들 바질은 영국에 살고 있고 프랑스의 대공과 결혼했다 별거중인
딸 도로시는 이제 프랑스가 그녀의 고국이다. 그저 허울 뿐인 명성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빈껍데기일 뿐인
두 명의 자식들은 헌터 부인의 임종이 임박하자 재산을 바라고 서둘러 시드니로 날아 온다.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상류층 인간들의 허례허식이 날카롭게 보여진다. 특히 중년을 넘어서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미쳐 자라지 못한 채 엄마에 대해 갖고 있는 애증이. 남매가 각각 어떤 식으로든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위까지
얻었지만 이제는 퇴물이 되어 버려 엄마의 경제력에 기대고 있는 바질은 물론이고 도로시도 평생 엄마의 미모에 짓눌려 살며 엄마를 경멸하면서도 엄마의
태도를 흉내낸다. 이들의 결말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어서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엘리자베스
또한 상류층의 허위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임종의 침상에서조차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때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경했던 부잣집 딸을 회상하고 - 엘리자베스
헌터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 때로는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며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려 안간힘을
쓴다. 세 명의 간호사들과 요리사 또한 헌터 부인에게 갖고 있는 애정이나 직업 충실도와는 별개로 이
지리멸렬한 삶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점을 찾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때로는 그 태도의 진정성이 의심될 만큼.
소설은 예상대로 끝이 나지만 내게는 마지막 챕터, 와이버드 변호사의
마지막 행동이 반전이었다. 와이버드는 이 책 전체에서 무게 중심이 되어주는 캐릭터였다. 비상식적인 자식들이나 이제는 정신이 맑은 순간이 드문 헌터 부인은 물론이거니와 세 명의 간호사 중 그나마 가장
진실하고 진중한 태도를 보이는 메리 데 산티스조차 자신의 삶에 매몰되어 있지만 아널드 와이버드는 순수하게 엘리자베스와 헌터 집안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물론, 그의 그 작은 전리품이나 회상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므로. 우리 모두는 약하고 그래서 때로는 악해진다. 어쩌면 와이버드 변호사야말로 저자가 정말 얘기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갖고 있었던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듯, 우리는 모두 속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