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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오케스트라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00년의 연주여행
가레스 데이비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아트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 이하 LSO)의 수석 플루티스트이다. 세계 각국으로 공연을 다니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블로그에 연재해 왔는데, 어느날 기록실의 직원이
1912년 LSO의 첫 미국 순회공연 당시 팀파니스트였던 찰스 터너의 기록과 역시 당시
플루티스트였던 헨리 니스벳의 기록을 후손들이 발견하여 LSO로 보내 주었다며 보여준다. 저자는 100년 후인 2012년의
전 세계 공연과 교차시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한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2012년과 기록물을 기반으로 상상을 더한 1912년의 무드가 차이가
난다. 여러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2012년이 아무래도
더 감상적이다. 각 챕터가 교차되어 이야기되어지는데, 난
자꾸 헷갈려서 일단 1912년에 해당하는 챕터들을 쭉 먼저 읽은 후에
2012년의 이야기들을 읽었다.
1912년 3월 8일 100여명의 LSO 단원들은
최초로 공연을 위해 북미 대륙으로 향한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단순히 여러 사람들과 악기들을 운반하는 물리적, 행정적 문제들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재정적인 문제가. 다행히 후원자를 구해서 이동 계획을 짰는데,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단원들은 타이타닉 호를 타게 될 뻔 했다. 그러니까, 재정 문제가 한 달 정도만 빨리 해결됐어도 타이타닉 호에서 마지막 연주를 하는 게 LSO 단원들이 될 뻔 했던 것. 이후 보스턴 항에 도착한 단원들은
미 대륙 전역을 기차로 여행하며 연주회를 한다. 세상에, 기차라니.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 한다고 드러 누웠을 텐데… 하지만 단원들은
유럽 오케스트라 최초의 북미 연주회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혹은 그냥 받아들였는지, 곧 적응하며 여행을
즐기기에까지 이른다.
2012년의 연주 여행도 편치는 않다. 삿포로에선 도시락을 사들고 비행기에 올라 오사카로 이동한 후 도시락을 먹고 리허설을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연주가 끝나자마자 지하철에서 맥주와 샌드위치를 사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삶. 교통 수단이 빨라진 대신 더 먼 거리를 더 적은 시간 안에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악기들의 이동도 만만치 않다. 난 이전에 읽었던 『악보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에서
서울 시향의 북미 연주 여행을 위해 악기를 패키징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당연히 LSO의 악기 이동 또한 철저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카르네. 카르네란 악기들의 목록이 포함된 허가증인데, EU밖으로 악기 운송시
필수라고 한다. 아마도 밀수 등을 방지하기 위해 더 철저히 체크하는 듯.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순진(?)하게 읽어 나가다가 갑자기
현실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래, 음악을 그런 식으로 악용할
수도 있겠구나.
이 밖에도 1912년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러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처음 보스턴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혹평을 받았지만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던 평론들과 밤을 새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점차 적응을 넘어서 과하게 익숙해 지는 단원들의 모습들. 그리고, 순회 공연 도중 캐나다 호텔에서 사망한 가여운 월러스 서트클리프. 이
다사다난한 일들을 모두 겪어낸 후 마침내 1912년의 첫 북미 대륙 순회 공연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2012년의 공연 여행은 계속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how must go
on>> 이지만 번역본 제목이 딱 맞는다. 저자는 자신과 동료들의 즐겁고 난처하고
행복하며 힘든 이야기들을 계속한다. 여러 동료들의 이야기 또한. 특히
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대니얼 하딩, 존 엘리엇 가디너,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얼마 전 케이블 TV 클래식 채널에서 LSO 공연 실황을 보았는데 - 공연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25년이었던 거 같다 – 저자가 건강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기뻤다.
"매일 밤 연주가 조금씩 다르지만, 내게는 매일 밤이 항상 최고의 음악회다." 249쪽
내가 본 그 공연도 저자에게 최고의 음악이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최고의 음악을 연주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