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ㅣ 초승달문고 21
고재은 지음, 윤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네 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사람의 마음을 쏙쏙 읽어주는 것 같은 돈이 등장하는 「나는 보리차가 싫어」

쓸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 이름밖에 없는 주희가 곁에 있는 모든 것에 제 이름을 쓰는 「2학년 3반 이주희」

신데렐라가 좋은데 왕자이기를 강요 받는 사내아이의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는 「희철 선인장」

 

네 편의 이야기가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뭉클하게, 때로는 반성을 불러 일으키며 읽혔다.

 

 

가끔, 한정된 돈을 쥐고,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일 때가 있다. 돈은 딱 요만큼밖에 없는데, 둘 중 또는 여럿 중 하나밖에 살 수 없는데, 나는 과연 뭘 사야 한단 말인가!

그럴 때 돈이,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속삭여준다면...?

책을 살까 옷을 살까, 망설이고 있을 때, "나는 옷이 싫어, 나는 옷이 싫어..." 하고 속삭이는 돈을 보고 화들짝 놀란 순간, 어느새 내 손에서는 돈이 떠나고 그 대신 책이 들어와 있는 거지. (응, 하지만, 돈이 속삭여주지 않아도 지금껏 너는 쭉 그래왔어. 이제 그만 옷이나 좀 사입지 그래?-_-; 돈이 이렇게 말하기 전에. "나는 책이 싫어.")

가족들 먹을 저녁 반찬거리 사러 나간 엄마 눈에 마음에 쏙 드는 블라우스가 들어온다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저녁 반찬거리를 사들고 머릿속으로는 그 블라우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럴 때도 돈이 말을 해야 할 때. "나는 반찬이 싫어, 나는 반찬이 싫어..." 그리고 엄마에게 블라우스를 안겨 주는 거지! (엄마, 엄마도 이제 좀 자신을 위해 소비하세요...)

이런 재미난 상상이 담긴 이야기가 「나는 보리차가 싫어」이다.

우리 꼬마 주인공은 보리차가 싫다며 달아난 돈 대신 무엇을 갖게 되었을까?

 

초등학생 때, 내 모든 물건에는 견출지가 붙어 있었지. 그 위에는 이름 석 자, 혹은 몇 학년 몇 반이 함께 적혀 있기도 하고.

이름을 쓰면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아니, 잃어버려도 돌려받을 수가 있다.

이름이 써 있지 않은 물건들은 교실 뒤에 놓인 박스에 모였다. 그러면 물건의 주인인 아이들이 와서 제 물건을 찾아가곤 했고.

주희는 제 방 안의 모든 물건에, 교실의 모든 물건에, 심지어는 방에 불어오는 바람에도 제 이름을 써주고 싶어한다. 엄마가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도 주희는 쓰고 쓰고 또 쓰고... 그러다가 필기구를 모두 빼앗기고...

주희에게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 이미 잃어버렸지만 꼭 돌려받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바람에게 '이주희'라고 이름을 써 주었으니, 그 바람이 불고 불어, 아빠의 등 뒤에 가 닿는 날, 주희는 되찾을 수 있겠지?

 

우리 조카 아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장난감 통에서 꼭 '사내아이다운' 물건들을 잘도 골라내어 가지고 논다.

제 부모가 사주기도 전부터 칼이며 총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 쓰기도 하고 솜털 귀여운 곰인형보다 자동차나 활동적인 장난감을 좋아한다.

"머스마는 머스마로 타고나는 갑다!" 울 엄마가 그런 손자를 지켜보며 감탄하듯 내뱉는 말.

하지만 혹 사내아이가 곰인형을 더 좋아한다고, 여자아이가 칼싸움을 더 좋아한다고 그걸 굳이 말리고 억지로 못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다.

지구상의 인간을 딱 두 종류,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그에 따른 '성역할'을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행위나 태도와 관련하여 남녀별로 적절한 것으로 규정된 문화적 기대치'

남녀별로 적절한 것은 뭐고 그렇게 규정된 문화적 기대치라니.

나는 이 세상을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단 하나 '개인차'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단지 남자라는 이름으로, 여자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어 획일적인 기대치에 도달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사내아이도, 신데렐라가 좋으면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입니다"라고 공주 놀이 할 수도 있는 거다.

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파워레인저다. 음하하하하"하는 우리 조카 녀석은 또 그렇게 철저하게 '머스마'로 타고난 거고... 그런 조카 녀석에게 비록 너는 남자이지만 여성적인 취미도 가져보렴, 이라고 강요할 필요 또한 없는 거고.

 

나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 한 번밖에는...)

다른 아이들은 남아서 구구단을 외웠는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한켠에서 열심히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단뛰기를 못 해서, 나머지 연습을 하게 된 것.

그래서 나머지 연습을 해 결국 넘었던가...? 아마 끝까지 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확실치는 않다.

희철이는 구구단을 못 외워서, 아니 외우긴 외웠는데 선생님 앞에만 서면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려서 매일같이 나머지 공부를 한다.

외우고 또 외워도 왜 선생님 앞에만 서면 기억이 안나는지...

홀로 교실에 남아 구구단을 외우던 희철이 마음속에 선인장이 자란다. 아니, 선인장은 교실에서 자라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희철이도 선인장이 되어버린다.

마음에 온통 뾰족뾰족 가시가 돋아나더니 걷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구구단으로 자기를 힘들게 하는 엄마와 선생님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가시를 품고 있는 희철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마음 속에 가시 품고 사는 날이 많아서, 희철이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희철이는 구구단 때문에, 나는 뭐 때문에...?

 

 

짧은 동화 네 편 읽으면서, 참 마음속에 여러 생각들이 많은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어린이 때와는 무척 다른 감상을 전해주는 게 확실하다.

단순히 재미나 공감을 떠나, 자꾸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추억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 때는 느끼지 못 했을 어떤 애틋함 같은 게 함께 하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동화속으로 여행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돈잔치 소동 ㅣ 반달문고 27
송언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돈잔치 소동'을 그린 동화이다.

'작가의 말'을 보니 지은이가 맡은 반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었던 듯한데, 실제로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놀랍다.

 

반 아이들의 일기장을 검사하다가 이윤지가 친구들에게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

다음날 이윤지에게 돈을 받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돈 계산'을 해주고 다음날까지 갚을 것을 명령한다.

친구에게 공짜로 받은 돈을 신나게 써버린 아이들은, 뒤늦게 그 돈을 갚느라 고군분투.

아이들이 받은 돈도 적게는 천 원에서 많게는 몇 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지만, 그 돈을 갚기 위한 노력도 가지각색.

누구는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에게 팔고, 누구는 이웃집 아이를 봐주고 돈을 받고, 누구는 엄마에게 달라 하고, 누구는 돈 갚는 대신 벌을 서겠다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교훈을 얻었거나, 절대 남의 재산을 공으로 탐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거나 했다면 다행이지만, 분명 그 중에는 그냥 줘서 받은 것 뿐인데, 줘 놓고는 이게 무슨 짓이냐, 억울하고 짜증나는 아이도 있었겠지...(그러니까,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니, 나는 그랬을 것 같더란 말이지...)

그 아이들은 각자 나름의 교훈을 잘 챙기길 바라고,

도대체 이윤지는 왜 친구들에게 그렇게 돈을 뿌리고 다녔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돈이 아주아주 많은 집 아이인가? 아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게 친구들에게 마구 돈을 뿌리는 아이는 여태 듣도 보도 못 했다.

 

이윤지는, 심심해서 그랬단다. 심심해서 그랬는데 해 보니까 재미있기에 계속 그랬단다. 아이들이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어린 것이 벌써부터 돈으로 장난질이나 치고, 괘씸해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어지는 윤지의 푸념이 가슴에 짠하게 맺혔다.

 

 

"엄마가 내 입장이 돼서 한번 생각해 봐. 아빠는 외국에 가 있고 엄마는 회사 일 때문에 날마다 바쁘잖아. 엄마가 언제 내 걱정을 해 준 적이 있어? 엄마가 나를 위해 시간 내주고, 놀아주고, 딸의 고민이 뭔지 알아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느냐고. 일요일에도 엄마는 피곤하다고 잠만 자잖아!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거기에 푹 빠져들 수도 있는 거지. 아니야?"

엄마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시간 많은데 공부를 하면 좀 좋아!"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또 공부하고, 날마다 공부에 빠져 살라고? 엄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동화책이라도 읽으면서 알차게 시간을 보내면 좀 좋아!"

"날마다 동화책만 읽으라고? 사람이 날마다 책만 읽으며 살 수 있어? 엄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나: 미안해,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어...;;;)

"공부하다가 싫증나면 동화책 읽고, 동화책 읽다가 싫증나면 텔레비전 보고, 텔레비전 보다가 심심하면 숙제하고, 숙제하다가 외로우면 잠자고, 뭐 그러면 되잖아!"

"살다 보면 그렇게 안 돼!"

"……살다 보면? 네가 얼마나 살았다고 그래?"

"십 년 살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니까!"

 

 

이 대목에서, 이 책은 아이들보다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외롭게 내버려두는 부모님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바쁘다고 자녀를 외롭게 방치해둔 사이에, 그 아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부모님이 아셔야 할 텐데...

이윤지는 친구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그 외로움이 가져온 마음의 장애를 표현했고, 다른 아이들은 또 각자의 나름으로 자기의 외로움을 풀기 위해 무언갈 하고 있을 테지...

이 세상에 '돈잔치 소동' 벌이는 아이들이 없도록, 모두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예쁘게 자라길 바라는 거, 그런 걸 바란다는 것도 이상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너무나 당연한 그런 것마저 쉽지 않은 이 세상의 부모님과 아이들은, 모두 힘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땅콩 ㅣ 시 읽는 어린이 5
송상홍 지음, 민경순 그림 / 청개구리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기억으로는) 처음 만나본 동시집이다.

동화책들 사이에 꽂힌 동시집을 빼서 살짝 넘겨보다가 쉽고 재미난 시들에 마음이 끌려 데려다 읽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읽혀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시,

집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를 그려내어 무척 공감이 가는 시,

이제는 그리움으로만 남은 가족들을 그려내 뭉클해지는 시,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마음과 지혜를 담아 반성하게 하는 시,

 

이런 시들을 이 동시집에서 만났다.

맑고 깨끗하고 예쁘고 뭉클하고 사랑스러운 책!

 

 

잠을 깨도

다시 눕고 싶을 때가 있어

월요일인 줄 알았는데

일요일일 때

 

그땐 강아지처럼 기지개를

쭈욱 켜는 거야

 

햇살이 코끝을 간질여도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일찍 일 나가신 엄마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쭈욱 켜는 거야

 

또 있지

맞춰 놓은 시각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오 분 정도 남았을 때

그땐 잠자지 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려 _ 「다시 눕고 싶을 때」 전문

 

 

아웅, 정말, 잠에서 깼지만 다시 눕고 싶어 무척 갈등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런 마음을 이렇게 예쁘게 그려내었다니.

"그땐 잠자지 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려." 어이쿠, 정신이 번쩍 든다!!

기억할 것. 그땐 강아지처럼 기지개를 쭈욱 켜기!

 

 

처음 왔을 때

조그만 상자만 주었는데

 

허드레 부엌

현관

마루

드디어 안방

온 집 안을 점령하였네?

 

엄마 우리가 강아지 집에서 사는 거지? _ 「우리집 맞아?」 전문

 

 

나도, '강아지 집'에 살아서, 이 시를 읽으며 공감의 고갯짓을 끄덕끄덕끄덕!

조그마한 강아지가 새식구가 되어 낯선 듯 한구석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다가 이내 부엌이며 현관이며 마루며 안방까지 점령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정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모습.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짓게 되고,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어린이 책의 세계,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지며,

이 예쁘고 맑은 책들, 앞으로도 많이많이 읽으리라 다짐!

 

 

처음 만났다고 모른 척하지 마

알 듯 말 듯한 웃음이라도 먼저 보내고

엷은 눈짓이라도 보이거든

아무 말이라도 나눠 봐

 

말을 나누다 보면

고향이 같고

할아버지가 같고

잃어버린 이야기가 같을지

누가 알겠니?

 

마주 보고 눈 이야기라도 나누다 보면

네 눈동자 속에 박힌 내 모습

남인 줄 알았는데

네 맘속에 자리하던

친구일지 누가 알겠니? _ 「남인 줄 알았는데」 전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게으름을 죽여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아, 나는 정말이지, 게으름을 죽여야 했다. 아니, 게으름을 죽여야 한다.

할 일이 잔뜩 쌓였는데 세월아 네월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할 일이라고는 게으름 피우는 것밖에 없기라도 한 듯한 나날인데……

 

그는 평소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열네 시간이나 열다섯 시간. 깨어 있는 시간은 고작 열 시간이나 그 이하였다. 깨어나봐야 할 일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할 일이 없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그를 괴롭혔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으면서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한 그를 괴롭혔다. 그는 괴로워서 잠을 잤고 잠이 잠을 불러왔다. 잠을 자는 동안은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다소 행복해할 수도 있었다. (207)

 

요즘 나는 잠을 많이 잔다.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자는 것보다는 많이. 아침(이라고 해봐야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에 눈이 떠져도 그냥 도로 잔다. '일어나도 할 일도 없는데 뭐……'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일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내 삶을 꿈나라에 버리고 있는 중이다.

나도 이렇게, 평생을(?) 놀고 먹어온 인간은 아닌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러니까, 지금 내 처지가 '한여름 누렁이' 짝인 게 큰 원인이긴 하다.

 

한가할 때는 한여름 누렁이처럼 늘어지다가도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심심한 누렁이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암탉 신세가 되는 게 바로 나였다. (56)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직업은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번역가', 현실을 말하면 '반(半) 백조'.

일이 몰릴 때는 미친 듯이 몰려 심심한 누렁이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암탉 신세가 되어 꽥꽥꽥 울부짖으며 일하다가도, 일이 끊기면 그야말로 '뚝!', 그렇다 '뚝!!' 끊기고 말아 나는 한여름 누렁이 모드로 돌입. (뭐, 이것도 굳이 따지자면 일감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은 내 탓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이 바로 그 '한여름 누렁이' 모드여서 나는 정말이지,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아니, 이미 빠져든 것 같다.

 

밤이면 밤마다 밤을 새워 책을 읽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책은 왠지 벌건 대낮보다 컴컴한 밤에 읽어야 죄책감(?)이 없으니까, 밤이 되면 책을 읽고,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기도 하고, 다 읽었으면 독후감 쓰고, 이게 요즘 내 '게으름'의 모습이다. 다른 '생산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조카 돌보는 것은 이미 필수 일과이므로 빼고.) 그러다가, 문어발 식으로 읽은 책 몇 권이 머리를 딱딱하게 만들어버려 책 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날, '아니,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거라곤 책 읽는 거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하기 싫어지면 그 다음 차례는 숨 그만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필코 읽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집어든 책이 이 책, 『게으름을 죽여라』였다. 지난번에 얼핏 보니, '백수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라고 했다. 그래, 인정하기는 싫지만 '백수소설'이라면, 지금 내게도 많은 부분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여, 독서로 지친 마음을 풀어줄 것 같았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조금 서글프지만, 이 책의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그래, 그렇다니까!' '어이쿠, 딱 내 얘기네, 내 얘기야!!' 쉴새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책을 읽었다. 지금 나는 100% '무기력 백수'의 모습이었던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공감하는 문장들을 보며,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았다.

 

그때 못 이기는 척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게 옳지 않았을까? 못 이기는 척 결혼을 하고 못 이기는 척 회사에 나가고 못 이기는 척, 남들처럼, 그럭저럭, 살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는 거라고는 현재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30~31)

 

내 인생이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정말 몰라? 이게 다 네 인생에 대한 너의 '무책임함' 때문은 아니고?!) 하지만, 현재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지금은 '한여름 누렁이'이지만, 곧 '암탉'이 될지도 모르고, 그때가 되면 또 닭 멱따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백수 탈출'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담당 PM 말로는 다음달부터 새 프로젝트 들어간다고 했던가? 제발, 하루 빨리 시작해줘요!) 그리고 내게는 언제나 꿈이 있으니까. 비록 지금은 그 꿈마저도 흐릿해져갈 지경이긴 하지만, 다시 달리면, 잘 달릴 수 있을 거다. 그때는 게으름을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이고!

 

지금 내 처지에 비추어보다 보니 백수의 모습과 심경에 상당히 많이 공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모든 주인공이 놀고먹는 건 아니고 모두 게으른 것도 아니다. 게으름과 상관 없는 이야기도 실려 있고. 이야기 한 편 한 편, 향긋한 허브 오일처럼 지친 머리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나를 다시 '즐거운 독서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그 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젠 책조차도 읽을 수 없게 된 거냐고 한탄하며 우울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팠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 때는 지금 그은 밑줄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스쳐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훗, 그때 나는 깊은 백조의 나락에 빠져 있었군. 지금은 아니지 말입니다.' 하면서 말이다.

 

패배의 쓴잔을 높이 들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학년이 된 첫날, 석우는 같은 반 친구 영택이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일 년 동안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는다. 영택이는 양 팔꿈치에 목발을 끼고 걸어야 하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다. 매일 등하굣길에 영택이 집에 들러 가방을 받고 건네줘야 하는 임무는, 2학년 석우에게는 쉽지 않다. 아니, '2학년'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일 년 동안 다른 사람의 일을 책임지게 된다면 쉬울 리가 없다. 자진해서 하는 일이라도 쉽지 않을 텐데 선생님의 부탁으로 하게 된 일이니 불쑥불쑥 불평이 생기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도 한판 하고 싶지만 영택이 가방이 석우의 발목을 잡는다. 영택이 가방 때문에 마음껏 놀지도 못하다니! 매일 교과서와 준비물로 꽉 찬 가방은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힘들기도 하다. 게다가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석우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마구 쑤근거린다. 공부 못 하는 아이인가보다는 둥, 숙제를 많이 했나보다는 둥. 이 모든 일이 석우에게 짜증을 불러오긴 하지만, 어린 석우, 꽤나 의젓하다. 불평불만은 속으로 삼키고 영택이 가방 대신 들어주는 일을 일 년 동안 꾸준히 잘 해내니 말이다. 그리고 가방 들어주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방구 아저씨에게는 친구 가방 들어주는 착한 아이라고 사탕도 받고, 영택이 어머니는 고맙다며 석우가 구경도 못 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주기도 한다.

 

이런 석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문득 조카를 돌봐주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일하는 엄마'인 동생 때문에 매일 오후 조카를 돌봐야 하는 임무를 맡은 내 모습이, 친구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매일 가방을 들어줘야 하는 석우 모습에 겹쳐져서. 석우가 투덜거리는 장면들도, 내게는 익숙하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조카는, 조금 무겁다. "업어, 업어!" "안아, 안아!" 칭얼거리는 조카를 업고 안고 할 때는, 무거운 가방 두 개 드는 석우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고, 오후에 놀자고 친구들이 연락해 와도 조카를 돌봐야 해서 못 나갈 때는, 학교 끝나고 축구 하고 싶은 석우 마음과 같을 것이다. '내 것'도 아닌 것을 건사하느라 석우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석우처럼 나도 조카 돌봐주는 착한 이모 소리도 듣고, 가끔 동생이 고맙다며 사다주는 선물도 받곤 하지만, 역시 석우처럼 그런 소리를 들으며, 그런 선물을 받으며 마음이 썩 편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석우의 귓가에 맴돌고, 내 조카 내가 돌보는데 꼭 뭐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 찝찝함은 내 마음속에 생기고. 처음에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 도와주는 '봉사'를 권장하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별 기대없이 집어들었다가, 이래저래 석우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져, 생각지도 못 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나름대로 진지하게 읽게 만든 동화였다.

 

일 년이 다 지나간 후, 이제 석우가 가방 들어주는 임무에서 '해방'될 때, 과연 석우가 어떻게 할 것인가 무척 궁금했는데, 아이다운 갈등을 겪으며 흘러가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석우는 이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임무도, 봉사도 아닌, '우정'이겠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우정'을 석우는 진심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평소에 동화책을 읽지 않다보니 동화 작가 이름은 참 낯선데, 고정욱 작가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인가보다. 앞으로 죽는 날까지 동화라면 장애를 다룬 것만 쓰겠다고 마음 먹으며, 새로운 장애는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작가. 작가는 언젠가 한 아이가 보내준 상장을 받은 적이 있다 한다. 장애를 소재로 좋은 글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글을 읽은 아이가 감동과 감사로 보내온 그 상장이 얼마나 값진 것일까. 이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진심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를 알게 되었구나 싶어 참 기쁘다. 앞으로도 꾸준히 작가의 글을 찾아서 읽고 싶다. 동화, 정말 사랑스럽다. 맑고 깨끗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