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Look After Mom (Hardcover, Deckle Edge)
신경숙 지음 / Knopf Publishing Group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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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아, 이제 영미권 독자들과도 이 감동과 공감을 함께 느끼게 되었군요!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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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나리,냉이, 떡쑥, 별꽃, 광대나물, 순무, 무. 새하얀 죽에 곱게 다진 재료들을 흩뿌리자, 그 속에만 봄이 찾아들었다.(7)

 

꽃샘이 기승을 부려 창문으로 시린 바람이 파고들던 밤에, 봄향기로 나를 맞아주는 책을 만났다.

반가운 봄의 아이들 이름에 내 마음은 금세 훈훈해졌고, 이 소설, 읽기도 전부터 마음에 든다.

 

한 고즈넉한 동네에서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는 시오리.  다도회에 입고 갈 기모노를 사러 시오리의 가게를 찾은 하루이치로.

두 사람의 잔잔하고 은은한 사랑이 흘러가는 중에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 일본의 수많은 먹을거리들, 일본의 전통 풍습 등이 맛깔스러운 고명으로 얹어진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그려내는 중에 두 사람의 사랑이 간간이 등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은은한 벚꽃 향기 같은 사랑을 조심스럽게 맺어가는 시오리와 하루이치로의 이야기도 예쁘고 애틋했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매 장면 장면 등장하는 향기롭고 맛깔스러운 음식 묘사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추천 받은 『달팽이 식당』과 같은 저자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달팽이 식당'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책은 식당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라 했고, 당연히 음식 묘사가 절로 군침 돌게 할 정도로 뛰어났을 거다. 읽어보지 않았어도 어떤 분위기의 문장들로 음식이 그려져 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시오리는 이제 매일 매일 생각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 하루이치로와, 늘 맛있는 간식을 사들고 방문하는 마도카 씨와, 시오리를 닮은 첫사랑에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잇세이 씨와, 애교스럽게 기모노 좀 빌려달라며 찾아오는 동생 하나코와 마주 앉아 많은 음식들을 먹는다.

하루이치로 씨와 이렇게 같은 음식을 먹다 보면 하루이치로 씨와 내 몸이 조금씩 같은 물질로 채워진다는 기분이 들어 기뻤다. 같은 세포, 같은 냄새. 하루이치로 씨와 같이 먹는 식사가 나이테처럼 내 몸속에 새겨져갔다. 하루이치로 씨의 몸에도.(202)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일이, 이처럼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일이었다니! 이제 누군가와 음식을 마주하고 앉으면, 우리의 몸이 같은 물질로 채워진다는 기분에 먹는 행위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내 몸속에 나이테처럼 그 식사를 새기며.

 

평소에 일본 소설을 별로 읽지 않은지라 일본 문화나 풍습은 무척이나 낯선데, 이 책에서는 그런 전통적인 명절의 모습도 무척 잘 그려져 있어 이웃나라의 풍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기모노와 전통 풍습과 맛있는 요리가 아주 멋진 삼박자를 이루며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린 이 책!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솜씨 또한 어찌나 뛰어난지,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는 봄의 벚꽃, 여름의 무더위, 가을의 높은 하늘, 겨울의 눈송이가 차례대로 찾아들었다. 지금은 꽃샘이 기승을 부리는, 봄이라기엔 너무나 추운 계절이든 말든, 나는 화창한 봄부터 시작해 사계절을 한바퀴 돌았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작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빼앗기는 일,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오가와 이토'라는 이름을 확실히 기억했다. 그리고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다 찾아 읽을 준비 되어 있음!

얼마 전에 추천 받은 『달팽이 식당』 외에도 작가의 또다른 장편 『패밀리 트리』가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 하니 그 책들을 한 권 한 권 만나볼 생각에 무척 설레고 기쁘다.

신간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작가가 한 명 늘어났다.

행복하다.

 

 

"아직도 미흡한 점투성이에요."

"무슨 소리야, 시오리는 아직 젊은데. 그 나이에 인생이 다 완성되어버리면 재미없잖아."(252)

 

"난 안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은 인생의 어둠이라고 생각해."

"응."

"그렇긴 한데, 그런 어둠이 없으면 좋은 일이나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행복한 일도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겠지. 최근에 별을 보다가 문득 인생이 줄곧 대낮처럼 밝으면 별의 존재도 알아챌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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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
세스 스티븐슨 지음, 윤미나 옮김 / 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인천에서 중국 대련까지 비행 시간 1시간,

인천에서 중국 대련까지 항해 시간 18시간.

 

중국 대련에서 잠깐 유학생활을 했던 나는 방학 때 여러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이동 수단은, 1시간의 짧은 비행이 아니라 18시간의 긴긴 항해.

 

처음에는 짐이 많아서, 비행기보다 배가 더 많은 짐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배를 탔던 건데, 한 번 타 보니, 이 열여덟 시간이 꽤나 매력적인 거다.

그 전에 단기 어학연수를 위해 비행기를 탔을 때는 한 시간만에 국경을 넘었다며 낯성 풍경 속에 나를 떨어뜨려 놓은 통에 도무지 내가 외국으로 왔다는 실감을 가지지 못했을 뿐더러, 그래도 이것도 '여행길'인데 그 어떤 운치라고는 없어 서운했다. 뭐, 이웃나라이니까. 국내선 타는 만큼만 타면 오는 거리구나, 생각하려 해도 뭔가 조금 아쉬운, 심심한 국경 넘기.

 

배는 달랐다. 그 무거운 짐을 낑낑대고 배로 옮겨 싣는 작업은 마치 부두 선적 노동자라도 되는 것 같아 "야, 다시는 배 안 탄다!!"라며 친구와 둘이 투덜투덜 칭얼칭얼거렸으나, 예약된 침대에 짐을 부려놓고 친구와 함께 갑판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쐴 때의 그 상쾌함은 짐 나르기의 수고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배 안에서 주말 오후에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며 기다리고 있자니 서서히 배는 출발했고, 조금씩 조금씩 육지와 멀어져 어느 순간에는 그야말로 '망망대해'를 미끄러져가게 되었다. 친구도 나도  배는 처음 타본지라 마냥 신기하게 배 뒤로 화려하게 일어나는 물거품을 바라보며,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배 안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이 열여덟 시간 항해의 '최고의 순간'이 펼쳐졌다. 하늘도 바다도 먹물을 풀어놓은 듯 까맣고 까맣기만한 시간. 그 경계도 구분이 가지 않는 하늘과 바다에 은빛 가루가 가득 흩뿌려졌다! 오래 전, 호주의 밤 초원을 달리다 만난 그 황홀했던 별 세상을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마침 바닷물을 뜨러 내려온 것 같이 자리잡은 국자(북두칠성)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몇 개 안 되는 아는 별자리 중 왕관자리가 더없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며 환호하며, 그야말로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밤, 밤바다, 밤하늘을 즐겼다.

 

책 읽고 리뷰 쓴답시고 앉아 쓸데없(다고만은 생각되지 않)는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사랑한 그 열여덟 시간의 항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가 배의 매력에 사로잡혀 비행기와는 작별하고 배만 타고 중국을 오간 것처럼, '일종의 로맨스'를 빼앗기는 빠른 속도의 이동에 염증을 느끼고,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황홀함'을 잊을 수 없었던 저자도 비행기 대신 배를 비롯한 다른 탈것만을 이용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세계일주를 이렇게 유쾌상쾌한 이야기로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세계를 한 바퀴 돈다는 건 생각만큼 혹은 생각도 못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실어다 줄 화물선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서 현지 국경일에 맞물려 극적으로 기차표를 구하는 일하며, 선실을 날려버릴 정도로 코를 골거나 객실을 마비 시킬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다른 여행자들과 꼼짝없이 몇 시간 혹은 며칠을 함께 해야 하는 고욕, 까딱 잘못하면 예약해 놓은 크루즈를 놓치고 비행기를 타야 할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지경에서 파트너를 버려두고(?) 혼자 배에 탑승해야 했던 숨막히는 사건까지……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여곡절의 순간들이 이어졌지만 그러한 이동 자체가 색다른 매력의 여행 풍경이 되어주었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니 이건 '여행'이라기에는 너무 이동만 하는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보니 제목이 '세계 여행'이 아니라 '세계 일주'다. 이동하는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거다. 그런만큼 그동안 읽어온 다른 여행서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 그 색다른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비행기가 등장하지 않고, 어느 한 군데라도 머물기보다 움직임이 주가 되는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여행 에세이.

 

이색 세계일주 중인 저자 만큼이나 독특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도 중간중간 소개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도 꽤나 매력적이다. 이를 테면, 이런 사람들.

활기찬 일본 친구는 파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삼륜차를 몰고 왔다고 말했다. 좌석이 하나뿐이고 뒤쪽은 짐칸인, 바퀴가 세 개 달린 작은 자동차다. 그는 그것을 보여주려고 우리를 자동차 갑판으로 안내했다. 삼륜차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꽃다발을 가득 싣고 암스테르담 주변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일본 친구는 그걸 타고 유라시아 땅덩어리 전체를 누볐다. (138)

며칠 후 정유업을 하는 미국인은 랑카위를 떠나면서, 포브스와 마이크에게 원한다면 배에서 살아도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캐나다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찢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계류장 주민들로 이루어진 이상하고 작은 공동체의 필수 세간과도 같은 요트 갑판 위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배 밑바닥에서 물을 퍼내거나 가볍게 수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에서 열리는 범선 경주에 나가기도 한다. 그들은 경주를 좋아한다. 그러나 대개는 기타를 치고 푸시업을 하거나 일광욕을 한다. (252)

삼륜차를 몰고 유라시아 전체를 누빈 일본 친구나, 여행길에서 만나 동행하게 된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찢어버리고 배 위에 머무르는 삶을 선택하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지은이의 독특한 세계일주가 펼쳐지는 가운데 만나서인지 '이야……'하는 감탄이 나오도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지은이처럼 '비좁은 알루미늄 탈것 안에 갇혀 괴로운 비명을' 지를만큼 비행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아니, 오히려 비행기 나름의 매력을 즐기기도 한다. 뭐 몇 번 타본 건 아니다만 모든 이동 수단에는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일이 온다면 혹시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 줄 육상 또는 해상 수단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빠른 것보다는 조금 느린 것으로. 내가 지금 이동 중임을, 곧 국경을 넘거나 다른 풍경의 땅에 가게 될 것임을 내 몸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지금도 나는 배를 타고 중국 여행 가기를 꿈꾸고 있으며, 너무 빨리 나를 남쪽 땅으로 데려다주는 KTX보다 무궁화호를 선호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열여덟 시간이 아닌 더 긴긴 시간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몇날 며칠을 보낼 수 있는 해상 여행을 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날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공부를 할지도!

 

아참, 그래서 지은이가 비행기 대신 도대체 뭘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돈 거냐 하면,

화물선, 여객선, 크루즈 등 각종 선박, 초고속열차, 침대열차, 좌식열차 등 각종 열차, 버스, 자전거, 택시, 지하철 등등 각종 이동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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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아, 정말 가슴 벅찬 책읽기였다.

약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손에 잡는 일은 마음먹기만 어려웠을 뿐, 막상 책장을 펼치고 나서는 이 '엄청난' 책이 품고 있는 '대단한' 흡입력에 그대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이런 게 바로 고전의 힘인가...? 이런 힘이 있기에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이겠지?

고전을 읽는 기쁨과 더불어 긴긴 이야기를 읽어냈다는 뿌듯함까지 함께 안겨주며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한 여러 날이 지났다.

그리고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을 여운.

 

평소에 고전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고전'이라 하면 일단 어려워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왠지 그 안에서 읽어내야만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 그것을 파악하지 못 하면 내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운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앞선 나의 걱정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안나 카레니나는 정말 술술 읽혔으며 이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나의 몫, 나는 내 몫대로 이 책을 아주 재미난 연애 이야기로 읽어냈다.

(당시 러시아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고 어쩌고저쩌고,를 물론 느끼기도 했지만, 본문 밑에 달린 주석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내기를 바라는 듯 했지만, 나는 주석은 과감히 지나치며 나만의 책읽기에 몰두했다. 주석은, 어쩐지 지나치게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기도 했고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키티 쉬체르바쓰카야.

네 젊은 남녀의 사랑과 실연과 결혼과 출산과 죽음은 세 권의 책도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되며, 인간사의 중대한 순간들 앞에서 이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은 정말 심장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참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몇 해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역시 이처럼 연애, 결혼 등과 관련하여 무척 섬세한 심리 묘사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그런 책을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제목과 지은이가 언뜻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서 책을 찾아 꺼내보니, 아 맙소사, 역시 톨스토이의 책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지금까지 읽은 두 권의 톨스토이 책이 모두 내게 같은 종류의 감동과 소름을 선사했다니, 놀랍고 재미있다. 톨스토이 글의 특징인 것일까, 내가 우연히 그런 책만 두 권을 읽은 것일까.(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의 또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난 분명 톨스토이의 다른 책들을 읽은 적이 있음이 지금 문득 떠오른다. 그 책들은, 예쁜 혹은 감동적인 동화 같은 글들이었던 듯한데... 아마, 『세 그루 사과나무』를 비롯한 단편선들이었던 듯. 헛 읽었다!! 다시 읽어야지.)

여튼, 이런 인간 심리의 세밀한 묘사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주변에 이 책을 추천하며 이런 말을 했더니, 그런 섬세한 묘사 때문에 때론 지루하고 졸음이 오기도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장담컨대, 지독한 공감으로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릴지언정, 지루해 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가득 차오른 벅찬 감동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사그러들지 않으나, 그 소감을 적어내기에는, 아, 내 손끝이 너무 부족하다.

그냥, 밑줄 그은 문장 몇 부분 옮겨야겠다.

 

 

"아아, 당신 나이 땐 정말 행복하지요." 안나는 계속했다.  "나도 마치 스위스의 산줄기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그 하늘빛의 안개를 기억하고 있고 또 알고 있어요. 그 안개는 바로 유년 시절이 끝나가는 그 행복한 시기에 온갖 것을 가리우고 있죠. 그러나 그 거대하고 즐거운 세계에서 나오면 앞길은 차츰차츰 좁아져요. 겉으론 밝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길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우리는 누구나 다 이런 길을 지나오게 마련이죠." _ 1권, 150

 

"난 그 '사로잡히기'만을 바라고 있는걸요." 브론스키는 침착하고 선량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투덜거릴 일이 있다면, 사실은 말입니다, 그 사로잡힐 기회가 너무 드물기 때문이에요. 난 차츰 희망을 잃어가고 있어요." _ 1권, 255

 

"독신생활과 손을 끊는다는 건 거저 되는 일이 아니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말했다. "아무리 행복하다손 치더라도 역시 자유는 아까운 거야." _ 2권, 406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 2권, 474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죠." 레빈은 음울하게 대답했다.

"너는 툭하면 무엇이든 쓸데없다고 말하지만, 네가 한번 해보렴. 좀처럼 잘되지 않을 테니까." _ 3권, 216

 

인간이 길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_ 3권, 307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싫증이 난 생활을 그대로 몇 해째 계속하고 있는 부부가 꽤 있지만, 그것은 모두 완전한 분열도 일치도 없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_ 3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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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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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정말 가슴 벅찬 책읽기였다.

약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손에 잡는 일은 마음먹기만 어려웠을 뿐, 막상 책장을 펼치고 나서는 이 '엄청난' 책이 품고 있는 '대단한' 흡입력에 그대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이런 게 바로 고전의 힘인가...? 이런 힘이 있기에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이겠지?

고전을 읽는 기쁨과 더불어 긴긴 이야기를 읽어냈다는 뿌듯함까지 함께 안겨주며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한 여러 날이 지났다.

그리고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을 여운.

 

평소에 고전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고전'이라 하면 일단 어려워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왠지 그 안에서 읽어내야만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 그것을 파악하지 못 하면 내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운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앞선 나의 걱정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안나 카레니나는 정말 술술 읽혔으며 이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나의 몫, 나는 내 몫대로 이 책을 아주 재미난 연애 이야기로 읽어냈다.

(당시 러시아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고 어쩌고저쩌고,를 물론 느끼기도 했지만, 본문 밑에 달린 주석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내기를 바라는 듯 했지만, 나는 주석은 과감히 지나치며 나만의 책읽기에 몰두했다. 주석은, 어쩐지 지나치게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기도 했고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키티 쉬체르바쓰카야.

네 젊은 남녀의 사랑과 실연과 결혼과 출산과 죽음은 세 권의 책도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되며, 인간사의 중대한 순간들 앞에서 이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은 정말 심장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참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몇 해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역시 이처럼 연애, 결혼 등과 관련하여 무척 섬세한 심리 묘사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그런 책을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제목과 지은이가 언뜻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서 책을 찾아 꺼내보니, 아 맙소사, 역시 톨스토이의 책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지금까지 읽은 두 권의 톨스토이 책이 모두 내게 같은 종류의 감동과 소름을 선사했다니, 놀랍고 재미있다. 톨스토이 글의 특징인 것일까, 내가 우연히 그런 책만 두 권을 읽은 것일까.(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의 또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난 분명 톨스토이의 다른 책들을 읽은 적이 있음이 지금 문득 떠오른다. 그 책들은, 예쁜 혹은 감동적인 동화 같은 글들이었던 듯한데... 아마, 『세 그루 사과나무』를 비롯한 단편선들이었던 듯. 헛 읽었다!! 다시 읽어야지.)

여튼, 이런 인간 심리의 세밀한 묘사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주변에 이 책을 추천하며 이런 말을 했더니, 그런 섬세한 묘사 때문에 때론 지루하고 졸음이 오기도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장담컨대, 지독한 공감으로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릴지언정, 지루해 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가득 차오른 벅찬 감동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사그러들지 않으나, 그 소감을 적어내기에는, 아, 내 손끝이 너무 부족하다.

그냥, 밑줄 그은 문장 몇 부분 옮겨야겠다.

 

 

"아아, 당신 나이 땐 정말 행복하지요." 안나는 계속했다.  "나도 마치 스위스의 산줄기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그 하늘빛의 안개를 기억하고 있고 또 알고 있어요. 그 안개는 바로 유년 시절이 끝나가는 그 행복한 시기에 온갖 것을 가리우고 있죠. 그러나 그 거대하고 즐거운 세계에서 나오면 앞길은 차츰차츰 좁아져요. 겉으론 밝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길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우리는 누구나 다 이런 길을 지나오게 마련이죠." _ 1권, 150

 

"난 그 '사로잡히기'만을 바라고 있는걸요." 브론스키는 침착하고 선량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투덜거릴 일이 있다면, 사실은 말입니다, 그 사로잡힐 기회가 너무 드물기 때문이에요. 난 차츰 희망을 잃어가고 있어요." _ 1권, 255

 

"독신생활과 손을 끊는다는 건 거저 되는 일이 아니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말했다. "아무리 행복하다손 치더라도 역시 자유는 아까운 거야." _ 2권, 406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 2권, 474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죠." 레빈은 음울하게 대답했다.

"너는 툭하면 무엇이든 쓸데없다고 말하지만, 네가 한번 해보렴. 좀처럼 잘되지 않을 테니까." _ 3권, 216

 

인간이 길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_ 3권, 307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싫증이 난 생활을 그대로 몇 해째 계속하고 있는 부부가 꽤 있지만, 그것은 모두 완전한 분열도 일치도 없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_ 3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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