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아, 정말 가슴 벅찬 책읽기였다.

약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손에 잡는 일은 마음먹기만 어려웠을 뿐, 막상 책장을 펼치고 나서는 이 '엄청난' 책이 품고 있는 '대단한' 흡입력에 그대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이런 게 바로 고전의 힘인가...? 이런 힘이 있기에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이겠지?

고전을 읽는 기쁨과 더불어 긴긴 이야기를 읽어냈다는 뿌듯함까지 함께 안겨주며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한 여러 날이 지났다.

그리고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을 여운.

 

평소에 고전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고전'이라 하면 일단 어려워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왠지 그 안에서 읽어내야만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 그것을 파악하지 못 하면 내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운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앞선 나의 걱정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안나 카레니나는 정말 술술 읽혔으며 이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나의 몫, 나는 내 몫대로 이 책을 아주 재미난 연애 이야기로 읽어냈다.

(당시 러시아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고 어쩌고저쩌고,를 물론 느끼기도 했지만, 본문 밑에 달린 주석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내기를 바라는 듯 했지만, 나는 주석은 과감히 지나치며 나만의 책읽기에 몰두했다. 주석은, 어쩐지 지나치게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기도 했고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키티 쉬체르바쓰카야.

네 젊은 남녀의 사랑과 실연과 결혼과 출산과 죽음은 세 권의 책도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되며, 인간사의 중대한 순간들 앞에서 이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은 정말 심장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한참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몇 해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역시 이처럼 연애, 결혼 등과 관련하여 무척 섬세한 심리 묘사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그런 책을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제목과 지은이가 언뜻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서 책을 찾아 꺼내보니, 아 맙소사, 역시 톨스토이의 책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지금까지 읽은 두 권의 톨스토이 책이 모두 내게 같은 종류의 감동과 소름을 선사했다니, 놀랍고 재미있다. 톨스토이 글의 특징인 것일까, 내가 우연히 그런 책만 두 권을 읽은 것일까.(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의 또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난 분명 톨스토이의 다른 책들을 읽은 적이 있음이 지금 문득 떠오른다. 그 책들은, 예쁜 혹은 감동적인 동화 같은 글들이었던 듯한데... 아마, 『세 그루 사과나무』를 비롯한 단편선들이었던 듯. 헛 읽었다!! 다시 읽어야지.)

여튼, 이런 인간 심리의 세밀한 묘사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주변에 이 책을 추천하며 이런 말을 했더니, 그런 섬세한 묘사 때문에 때론 지루하고 졸음이 오기도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장담컨대, 지독한 공감으로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릴지언정, 지루해 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가득 차오른 벅찬 감동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사그러들지 않으나, 그 소감을 적어내기에는, 아, 내 손끝이 너무 부족하다.

그냥, 밑줄 그은 문장 몇 부분 옮겨야겠다.

 

 

"아아, 당신 나이 땐 정말 행복하지요." 안나는 계속했다.  "나도 마치 스위스의 산줄기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그 하늘빛의 안개를 기억하고 있고 또 알고 있어요. 그 안개는 바로 유년 시절이 끝나가는 그 행복한 시기에 온갖 것을 가리우고 있죠. 그러나 그 거대하고 즐거운 세계에서 나오면 앞길은 차츰차츰 좁아져요. 겉으론 밝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길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우리는 누구나 다 이런 길을 지나오게 마련이죠." _ 1권, 150

 

"난 그 '사로잡히기'만을 바라고 있는걸요." 브론스키는 침착하고 선량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투덜거릴 일이 있다면, 사실은 말입니다, 그 사로잡힐 기회가 너무 드물기 때문이에요. 난 차츰 희망을 잃어가고 있어요." _ 1권, 255

 

"독신생활과 손을 끊는다는 건 거저 되는 일이 아니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말했다. "아무리 행복하다손 치더라도 역시 자유는 아까운 거야." _ 2권, 406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 2권, 474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죠." 레빈은 음울하게 대답했다.

"너는 툭하면 무엇이든 쓸데없다고 말하지만, 네가 한번 해보렴. 좀처럼 잘되지 않을 테니까." _ 3권, 216

 

인간이 길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_ 3권, 307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싫증이 난 생활을 그대로 몇 해째 계속하고 있는 부부가 꽤 있지만, 그것은 모두 완전한 분열도 일치도 없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_ 3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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