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 "그리고 제겐 둘 다 있으니 얼마나 축복이에요." (54)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 (79)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108)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124)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227)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축구장에서의 그 순간들이 올리브가 지녔던 가장 순수한 추억들인지도 모른다. 순수하지 않은 다른 추억들도 있었으니까. (292) 

 

"언제 점심이나 하러 가시려우?" 

"나는 저녁이 더 좋은데요." 잭이 말했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종일 고대하게 되잖아요. 점심은 헤어지고 나면 아직 하루가 많이 남지만."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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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몰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인생 모두가 비참한 쪽으로 기울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21)

 

내가 터득한 시간 보내기의 지혜는, 언제 무엇이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질문하지도 말며, 기억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는 일은 질문하지 않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고행이었다.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오히려 더 생생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것이었다. 가령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잊어버린다든지, 장래에 있을 희망적인 일들을 상상하지 않는다든지, 질문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나의 보잘것없는 의지력에 기댄다 해도 얼마든지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기억되는 것만은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기억과 나의 의지력은 그 태생과 궤적을 달리하는 전혀 다른 유기체와 같았다. 의식의 어둠을 뚫고 사나운 짐승처럼 내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그 기억이란 존재는 그래서 나에겐 크나큰 고통이었다. (25)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밤중에도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불 켜진 상점과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밤중이 아니라, 멀리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잘 보인다. (143)

 

알고 보면 나도 가엾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내 책임이냐, 그렇다고 너 책임이냐. 아무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하늘이 그러라고 시킨 일인데, 책임 소재가 따로 있겠나. 그렇다면 나나 너나 그렇게 훌쩍거리고 울어봤자, 모두가 남이 보면 웃을 일이다. 사주팔자 시키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디쯤 가서는 지쳐서 끝장이 나겠지. 울지 말고 어서 일어서거라. (148)

 

"글쎄다. 그건 나도 모르겠더라."
거짓말이라거나 무성의한 대답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생애에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갈 테지만, "왜 그랬어요"라고 무턱대고 묻는다면 열에 여덟은 어머니와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애매하기 그지없는 생애를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았든 나빴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세상에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220)

 

뚜껑 열린 채로 넘어진 병에서 물 쏟아지듯, 한번 그립기 시작하면 더욱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었다. (245)

 

그러나 그 꽃 같은 나이만 가질 수 있는 금쪽같은 세월을 허송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후회가 가슴을 칠 때가 옵니다. (285)

 

어떤 인생도 완전하고 순탄하지는 않아요.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든지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릅니다. 잘못 살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정신병자들이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은 지진이나 태풍뿐이지요. (285)

 

 

 

내 마음속의 빈집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허허벌판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나의 외로운 빈집.
그러나,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다 빈집이 한 채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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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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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오.늘.을.잊.지.말.자. 내.가.그.쪽.으.로.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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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언제부터 거미를 무서워했어?
  ㅡ 오래됐어.
  ㅡ 근데 왜 내가 몰랐지?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성장했는데도 단이가 거미를 그리 두려워하는 줄을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ㅡ 모를 수밖에.
  ㅡ 응? 무슨 큰 비밀이었어?
  ㅡ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거미를 밟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단이의 등을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나.를.사.랑.하.지.않.으.니.까, 라는 말이 낙숫물처럼 내 가슴속에 똑똑 떨어졌다. (42)

 

 


  ㅡ 저 잘 지내요. 어젯밤엔 너무 깊이 잠들어서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어요. 아버진요?
  ㅡ 나도 잘 지낸다.
  나.도.잘.지.낸.다, 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내 마음 안에서 울려퍼졌다. 나도 잘 지낸다는 평범한 말이 이렇게 큰 울림을 가지고 다가올 줄이야. 소식이 끊긴 미루가 나.잘.지.내, 라고 전화해주었으면.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는 그가 나.잘.지.내.고.있.어, 라고 해주었으면.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아버지의 숨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나.잘.지.내.고.있.어, 라는 이 평범한 말을 단이에게서 들을 수 있다면. (274)


나.잘.지.내.고.있.어.요.
그.대.도.잘.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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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이야기
정효구 지음, 주명덕 사진 / 작가정신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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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단말기를 받아 들고, 어떤 글을 읽어볼까 고심하며 책 목록을 보던 중, 이 제목이 눈에 띄었다.

책 소개를 볼 수는 없었다. 제목만 보고 구입해야 하는데, 평소에 알던 책과 작가가 아니라서 조금 망설였지만, '마당'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선택했다.

그렇게 전자책 단말기와 나의 인연을 '마당 이야기'로 열게 되었는데, 굉장히 성공적인 첫만남이었다!

역시, '마당'이라는 단어가 나를 향해 내뻗었던 유혹의 손길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집엔 손바닥만 한 시멘트 마당이 있다.

처음엔 '손바닥'만 한 게 불만이었는데, 살다보니,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흙마당이 아닌 게 더 불만스러워졌다.

마당이라면 모름지기 흙 냄새가 나야 하는데, 마당 아무 데나 파고 꽃이며 푸성귀를 가꿀 수 있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진창에 드문드문 돌을 옮겨 놓으며 지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가끔은 개구리 손님도 찾아오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멘트 마당은, 도무지 그런 재미라곤 없는 거다. 시멘트 마당의 아량은, 내가 수시로 자리 옮기며 가꾸는 화분 몇 개를 받아들이는 정도일뿐.

내가 너그러운 흙마당을 그리워하는 건, 청소년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의 '운동장'만 한 흙마당이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가슴 깊이 자리잡아서 일 거다.

 

한창 나의 감수성이 자라던 그 시절, 내게는 그런 마당이 있었다.

할머니는 마당 귀퉁이 아무 곳이나 파서 갖가지 푸성귀를 가꾸셨고, 아버지는 마당에 널찍한 평상을 만들어 여름철의 시원한 추억을 갖게 해주셨고, 어머니는 마당 하늘을 가로지른 빨래줄의 바지랑대를 눕혔다 세웠다 하며 빨래를 널고 걷으셨고, 강아지와 고양이는 마당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 뛰놀았고, 우리 형제들은…… 지금 도시 아이들은 뭔지도 모를, '흙냄새'를 맡으며 발에 흙을 묻히며 흙마당에 드러누워 별을 보며, 그렇게 자랐다. 내게 마당이란, 그런 유년의 추억들이 담긴 공간이다.

어떤 아름다운 '정원'을 본데도, 내 마음속 그 흙마당이 주는 아련함과 따뜻함이 깃든 추억을 이길 수 없다.

 

이 책은 내게 그런 흙마당의 추억을 다시금 불러일으켰고, 마당을 향한 간절함을 절절하게 했으며, 맨발로 흙을 밟아보고 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게 만들었다. 아아, 흙마당이 없는 지금의 삶이 왜 이리 퍽퍽하게 느껴지는지.

 

  마당 없이 유년을 보내는 어린아이들에게, 마당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맘껏 뛰어놀 장소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야생의 놀이터인 마당을 되돌려주고 싶다. 마당과 같은 성실함과 튼실함을 배워가야 할 아이들에게, 드넓은 마당의 꿈을 선사하고 싶다.('작가의 말' 중)

 

이 책을 읽으면, '마당'이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당'이 없는 지금 우리네 삶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혹은 모르고 사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 어린이용 책은 아니다.(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어린 시절 마당의 추억을 간직한, 지금도 틈만 나면 마당 넓은 시골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기웃기웃거리는, 아무튼, 흙마당이 그리워 못 견디겠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많은 걸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다. 마당의 흙냄새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_ 무심한 자는 무심하기 때문에 절대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마당은 무심의 화신으로서 누구에게도 호객을 하는 일이 없다. 그런 마당의 영원과 같은 무심한 지대에 가까이 가려면 우리가 솔선수범하여 그를 속까지 닮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다. 도저히 온전하게 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그러니 마당은 인간들에게 언제나 그릴 수는 없고, 오직 그리워할 수만 있는 대상인 것 같다. 마당이 부른 바 없는데도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며 찾아가고, 그가 위로한 바 없는데도 우리는 그에게 찾아가서 위로를 받고 돌아온다.

 

_ 밤의 마당에 비치는 달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심저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열게 한다. 밤 마당에 비친 달의 풍경은 단 한 번도 피하고 싶은 마음, 지루한 마음, 피로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며 이전보다 더욱 부드럽게, 신비롭게, 싱싱하게 할 뿐이다. 이런 정경을 마음속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스르르 녹으며, 열린다. 그런 마음과 정경 속엔 아무런 계산도, 초조도, 피로도, 긴장도 끼어들 틈이 없다.

 

_ 아파트나 도심의 빌딩에서는 비의 전신全身을 볼 수 없다. 그저 베란다나 창문을 통하여 출처도 없이 떨어지는 비의 옆구리나 허리께만 파편처럼 스치듯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_ 꽃밭에 꽃씨를 심어보는 일, 그 꽃들을 가꾸어보는 일, 그 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보는 일, 그런 밥이 되지 않는 허虛의 삶을 살아보는 일, 한마디로 말하여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이른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적 사건이 우리의 삶에 자주 있어야겠다. 그래야 무겁고 지친 우리의 삶이 좀 가벼워지고 나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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