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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미란다 줄라이 지음, 이주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이런 책이 좋다.
이런 책? 글쎄, 어떤 책을 이런 책,이라고 한 거지?
그러니까,
책 속 어딘가에 내가 자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그 일상의 이야기...?
그래, 그런 이야기들이 좋다. 비범한 사람들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혹은 평범보다는 조금 찌질한 사람들의 평범하거나 조금 찌질한 이야기가.
아니, 이 책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평범하다고 하는 걸까, 나는?
뭐, 어쨌든, 비범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들의 젠체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옮긴이의 말처럼
'미란다 줄라이의 주인공들은 키 작고 못생기고 내성적이라 아무도 관심이 없던, 기억도 안 나는 반 친구일 수도 있고, 집 앞 편의점의 고등학생 아르바이트 학생일 수도 있고, 평생 짝사랑 말고는 사랑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노처녀 고모일 수도 있고, 아무도 들어주거나 앨범을 사줄 리 없는 무명 인디밴드의 보컬일 수도 있고, 로맨스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일 수도 있다.' (나는 벌써 두 군데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니, 내가 주인공일 수도 있는 책.
그래서, 제목을 따라 가만가만,
나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라고 생각했다.(제목이 '너'라고 말했으니까, 읽는 내게는 '나'겠지.)
이 책, 제목도 무척이나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제목으로 나를 유혹한 책, 하니 작년에 읽은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가 생각난다.
그 책을 들고 나갔던 날, 공교롭게도 나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 내 몸이 그대로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펼쳐들었던 그 책이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인생을, 구했다. 제목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자꾸 내게 주문을 걸어왔다.
'내가 너를 구할 거야'라고.
그리고 제목이 아주 매혹적인 이 책,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를 읽으면서, 나는 정말 나만큼, 내 삶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철 지난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까지는 아니지만) 생각했다.
그래, 여기 이 자리에, 나만큼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책을 초반 몇 페이지쯤 읽고,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지인에게 재미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좀 독특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책,이라는 답장이 왔다.
좀 독특하다는 데에는 나도 금세 공감을 했지만, 불편하다니 어느 부분이? 하고 의아했는데, 조금 읽다보니, 끄덕끄덕 공감이 가긴 했다.
하지만 뭐, 그 불편도 어찌보면 내 안의 편견이 빚어낸 불편일 뿐,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짧은, 조금 긴, 아주 짧은, 들쭉날쭉한 길이의, 여러 사람들의 들쭉날쭉한 이야기들이 평온한 내 주말을 들쭉날쭉, 개성있게 그려주었다.
내게. 어울리는. 책,을 읽으며, 내게. 어울리는. 주말,을 보내며, 잊지 않기 위해 가만가만 기억해본다. 미란다 줄라이.
_ 나는 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야. 어쩌면 누군가에게 내가 해주고 싶었거나 듣고 싶었던 단 한 마디가 있다면, 바로 이 말이었을 것이다. (19)
_ 인생에 대해 회의가 가득하다고요?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하늘을 보세요. 바로 당신 거예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세요. 그 얼굴들도 당신 거예요. 거리며, 거리 아래의 땅이며, 땅 아래 불덩어리인 지구도 모두 당신 거예요.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사실을 기억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을 향하세요. 그리고 하늘과,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안에 담긴 빛을 찬미하세요. 인생이 불확실하게 느껴져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삶을 찬미하고, 찬미하고, 또 찬미하세요. (27)
_ 우리가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실은 누군가 죽도록 일한 결과였다. 횡단보도의 흰 줄도, 과자 한 조각도. (109)
_ 또 어떤 걸 할 수 있나요?
널 사랑하는 거.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못해요?
못해.
하지만 나한테만 이렇게 해주는 거죠?
너는 우주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니까.
내가요?
그럼. 당연하지! (186~187)
_ 다리 힘이 풀리더니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영어로 울부짖었고, 불어로 울부짖었고, 온갖 언어로 울부짖었는데, 눈물은 만국 공용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마치 에스페란토어처럼. (235)
_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그냥 쪽, 계속, 계속 밀고 나가라고. (241)
_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눈물을 덜 흘린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단지 여자랑 우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남자들은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각자 독창적으로 우는 방식을 고안해내야 하는 거예요.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