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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이제와서 리뷰를 쓰기에는 이미 많이 흐려진 기억이 멋쩍지만,
뭐라고 조금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너무나 아쉬울 책이다.
엄마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귀여운 소녀 알마와, 알마의 이름을 따온 소설인 <사랑의 역사>를 쓴 실제 저자 레오.
그 둘의 이야기가 갈마들며 흘러가는 이 책은,
나의 어휘력과 언어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게 미안할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도, 아름다운 말도 많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말은, '다이 루쿠'였다.
"할아버지와 같이 살던 방으로 널 데려가려고. 또 네바 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법도 가르쳐줄게." 미샤가 말했다. "난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겠네." 미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르쳐줄게. 첫 단어는 다이(Dai)야." "다이?" "두 번째 단어는 루쿠(Ruku)." "무슨 뜻인데?" "먼저 말해 봐." "루쿠." "다이 루쿠." "다이 루쿠." "이게 무슨 뜻이야?" 미샤가 내 손을 잡았다. (197)
"다이 루쿠." "손을 잡아줘." 프러포즈의 의미가 담긴 말이라 한다. 다이 루쿠. 손을 잡아줘. 정말 낭만적인 프러포즈.
다이 루쿠,의 은은한 감동으로, 내 마음속 손을 잡아 준 책.
"브루노?"
"네?"
"살아 있다는 게 행복하지 않아?"
"글쎄요,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은데요."
"너한테 뭘 팔려는 게 아니야. 나야. 들어봐. 지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어."
"누가 널 스쳤는데?"
"이봐, 들어보라니깐. 살아 있는 게 얼마나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어. 살아 있어. 너한테 말해주고 싶었어.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하겠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야, 브루노, 아름다움과 영원한 즐거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물론 네가 뭐라고 하건 간에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그리고 영원한 즐거움이지." 내가 말했다.
"좋아. 즐거움."
나는 기다렸다.
"영원한."
전화를 끊으려는데 브루노가 물었다. "레오?"
"왜?"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거야?"
나는 반시간 동안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며 마셨다. 소녀가 공책을 덮고 일어났고, 남자는 신문을 끝까지 다 읽고 있었다. 나는 제목들만 읽었다. 나는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한 일부였다. 그래, 사람의 인생. 사람의! 인생! (110)
브루노는 종이를 현관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인생은 아룸다워."라는 글씨가 보였다. 내가 종이를 밀어내자 그는 또다시 밀어 넣었고 나는 다시 밀어내고 그는 또다시 밀어 넣었다. 밖으로, 안으로, 밖으로, 안으로. 종이를 노려보았다. 인생은 아룸다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을 뜻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문 밖에서 브루노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연필을 찾아서 휘갈겨 썼다. "그리고 영원한 농담." 나는 종이를 다시 문 아래로 밀어냈고, 그가 종이를 읽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브루노가 만족했는지 위층으로 올라갔다. (114)
단 4페이지만에, 인생이 '영원한 즐거움'에서 '영원한 농담'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
이라는 생각이 오래오래 나를 붙들었던, 기억에 남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며...
아름다운 이 책을 언제고 다시 펼쳐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