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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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초난난』을 읽고 작가의 글에 반해 바로 다른 책도 찾아 읽었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은 국내에 두 권 소개 되어 있고, 또 다른 한 권이 곧 출간 될 거라고 들었다. 이제 막 작가의 글에 반했는데 더 찾아 읽을 책이 많지 않다는 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앞으로 작가의 신간을 늦지 않게 발맞추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기도 하고...)

 

이 책은 어느날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니, 남자친구가 돈이며 조리도구며 집 안의 모든 것을 들고 사라져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내온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 자기만의 식당을 열고, 음식을, 마음을 요리한다.

 

『초초난난』에서도 음식에 관한 뛰어난 묘사를 살짝 엿볼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내 기대 이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감동을 안겨주었다.

음식에 관한 맛깔스러운 묘사는 물론,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감탄할 만한 문장들,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책 잡은 손을 멈추지 않게 했다.

 

(내 기준으로) 늘 먹고, 가끔은 요리하고, 아주 가끔은 만들어서 먹이고 하는 행위가 더 없이 숭고하게 다가온 책.

정성스러운 마음 가득 담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 들게 한 책.

 

오늘 점심에 내가 먹은 한끼 식사에는 얼마나 큰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으며, 얼마나 많은 농사꾼과 어부와 태양과 땅과 빗물의 수고가 담겨 있을까.

음식, 물질로서의 그 자체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숭고한 노동과 정성을 생각할 때, 음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늘 잊지 말아야 할 것. "감사히 먹겠습니다~~!!"

 

 

_ 장작패기를 마친 구마 씨와 함께 점심으로 우동을 먹은 후, 나는 아까 따온 산포도를 정성껏 씻어서 조려 발사믹 식초를 만들었다.

완성되는 것은 12년 후. 어떤 맛으로 태어날지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어쩌면 도중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2년 후에도 나는, 이렇게 지금과 같은 신선한 마음으로 주방에 서 있고 싶다. 그런 강한 바람을 담아서 나는 신중하게 발사믹 식초의 원액을 소독한 병에 담았다. (69-70)

 

_ 지금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살아 있던 닭 한 마리가 희생된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내어 준 토종닭을 위해서도,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88)

 

_ 거식증 토끼가 왔다거나, 오늘은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건 손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것이 요리에 영향을 미친다면 프로로서 실격이다. (129)

 

_ "초조해 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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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지금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
신현림 엮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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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엄마 마음.

 

신현림 시인이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엮은 시선집이다.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들을 모아, 이 세상 모든 딸들에게(물론 아들에게도) 전하는 책.

프롤로그를 읽다가, 그만 목이 메였다. 엄마의 사랑이란 그런 거다.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울컥하게 하는. 절로 눈물을 떨구게 하는...

 

이것만은 알아주렴. 딸아, 네가 상처받고 아파할 때 엄마도 같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은 네가 짊어질 인생이기에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덜 상처받고, 덜 아프기만을 바라지는 않아. 좀 상처 입으면 어때, 좀 아프면 어때, 까짓것 다시 일어나면 되지 뭐, 하면서 훌훌 털고 나아가는 딸이길 바란단다. 그렇게 괴로움을 용감하게 뛰어넘는, 그래서 온몸으로 인생을 껴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단다. _ '프롤로그'에서

 

'그렇게 괴로움을 용감하게 뛰어넘는, 그래서 온몸으로 인생을 껴안는 사람이 되'는 데 든든한 동반자가 될 시들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시집을 읽는 나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포근해졌다.

마치 나의 엄마가 딸인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차곡차곡 적어두었던 공책을 선물 받은 것처럼, 이 안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사랑에 가슴 뭉클했다.

얼마나 좋은 시들만 담았을까. 자식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히고 싶은 엄마의 심정으로 시들을 골랐을 게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시들 뒤에 숨어 있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시들이 온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따스하고 풍요롭고 감사한 이 시집은 엄마의 정성으로 차려진 무공해 밥상 같은 기분.

한 입만 떠 먹어도 몸이 튼튼해질 것 같은 그런 기분, 아니, 한 줄만 읽어도 마음이 튼튼해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절로 드는 책.

엄마의 마음이니, 때로는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잔소리도 이렇게 시로 들려준다면 귀 기울여 듣게 될 것 같다.

 

"넌 뭐 해보지도 않고 못 하겠다고 해! 어서 해 봐!"라고 야단치는 대신 이런 글을 읽어준다면...

 

길은 가까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되이

먼 곳을 찾는다.

 

일이란 해 보면 쉬운 것이다.

그러나, 시작도 안 하고

먼저 어렵게만 생각하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_ 맹자

 

이런 '잔소리'라면 자꾸자꾸 듣고 싶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교훈적인 시만 담긴 것은 아니다. 소녀의 감성을 더욱 충만하게 해줄 시, 인생의 아픔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시, 가슴 가득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시...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인생의 희로애락 모든 순간들에 딸에게 건네고 싶은 시편들.

 

여행길에 이 시집을 읽었다. 함께 여행하는 이에게 여기 실린 시 몇 편을 읽어주었다. 그만큼 나누고 싶은 시들이었다.

이렇게 가슴 벅찬 엄마의 사랑을 나 혼자 받기가 아쉬웠기에.

허기진 마음으로 떠나던 여행길이 이 시집으로 인해 출발부터 풍요로웠다.

나는 앞으로도, 외롭고 힘들 테면 시를 읽을 테다. 이 책에 실린 시들도 좋겠다.

 

내가 읽고 (혹시 있게 된다면) 나의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시집이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_ 도종환 '쓸쓸한 세상'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라뿌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_ 고은 '낯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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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들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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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쓸 걸 그랬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억이 이토록 허망하게 유실되는 것인 줄 알았다면 일기를 쓸 걸 그랬다고. 과거에 대해 무엇도 상기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자, 신분증을 잃어버린 것처럼 황망해졌다. _ 「고도리」 중

 

 

한때 나는 매일같이 일기를 썼었다. 초등학교 때는 숙제였으니까 밀린 일기까지 챙겨가며 꼬박꼬박,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어느날 내가 '아그네스'라 이름 붙인,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을 산 뒤로 매일매일 쓰고 싶어서, 그렇게 일기를 썼다. 숙제로 쓴 일기는 제외하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까지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다. (사실은, 몇 번 빼먹은 적이 있었다. 숙제도 아닌데, 그렇게 빼먹은 일기는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채워넣었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일기'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일기 쓰기를 그만 둔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 내게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거나 그런 까닭은 아니었다. 다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쓰지 못한 3일의 일기를 채워 넣기가 힘들었다. 뭐라고 쓸 것인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나는 아직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아픔과 죄책감이 있다. 어찌되었든, 3일이나 이가 빠져버린 일기장은 나의 '개근 정신'을 시들하게 했고, 그 후 나는 일 년에 며칠, 생각날 때만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장 속에는, 일기에 적지 않았더라면 결코 떠올리지 못 했을 수많은 추억과 기쁨과 슬픔과 반항과 사랑과 자기 혐오가 나만큼이나 못난 글씨로 담겨 있다. 가끔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 시절 내 모습에 혼자 얼굴 붉히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도 민망해 고개를 세차게 저어 기억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이런 행복한 날도 있었지 싶어 괜히 가슴 두근거리기도 한다. ('이런 걸 내가 썼단 말이야?' 뿌듯해지는 문장도 1년치에 하루이틀쯤 보이기도 한다.) 내가 잊고 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재미'가 있지만 나는 일기장을 웬만하면 꺼내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아픈 내가 너무 많다. 열등감과 외로움으로 똘똘 뭉쳐 세상에 대해 온통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던 내 모습을, 이렇게 과거의 일기장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 나는 지금도 아프다. 덤덤해질 수 없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기에. 그런 나를 떠올릴 때면, 차라리 '신분증'을 잃어버리고 싶어진다. 과거의 내가 어떠했는지, 지금의 내가 어떠한지, 나조차도 나를 잊고, '나는 이런 사람이었겠거니'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지기도 한다. 일기를 쓰지 말 걸 그랬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기가 이토록 아프게 열등감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인 줄 알았다면 일기를 쓰지 말 걸 그랬다고. 과거에 대해 무엇도 상기해내지 못하게 되더라도, 허전해하지 않겠다고.

 

애써 펼쳐보려 하지 않던 일기장이, 예고 없이 내 앞에 펼쳐졌다. 한때, 특히 사춘기 시절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열등감을 낱낱이 상기시키며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일기장'을 읽다가 조금 울었다. 그러다가 이 글을 쓴 이를 떠올려봤다. 하재영. 두 권의 책으로 만난 작가. 전작 『스캔들』에서도 차마 몇 쪽 몇째 줄이라고 밝히기 뭐한 부분에 밑줄 그으며 '슬픈 공감'을 하게 했던 작가. 그녀와 나, 성질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그 깊이는 비슷한 열등감으로 마음이 일그러졌던 경험을 공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콤플렉스로 뭉쳐진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 역시 결핍을 만성질병처럼 끌어안고 사는, 그녀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타인들의 타인-17세」) 설령 진실은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오해'하며 '내 마음 아실 이'라고 진한 동지애 느끼고 싶었다. (나는 심지어 이런 문장에도 밑줄을 그었다. '예쁘지 않아서 슬펐던 적이 있다.' 예쁘지 않아서 슬픈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 언젠가 눈물 자국 얼룩지게 썼던 일기가 생각났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내가 보이는' 그런 문장들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 사랑을 갈구하는 건 결핍감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핍을 앓을 만한 환경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랐다. 결핍이란 선천적으로 내장되는 것인지 모른다, 유전적 질병처럼. 결핍감은 열등감을, 열등감은 시기심을 낳는다. 늘 누군가가 부러웠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러움은 증오로, 자기혐오로, 자주 모습을 바꾸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게 되면 판단력이 마비되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시기, 증오, 자기혐오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다른 모양의 열매였다. 한 아버지의 씨를 가지고 다른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부럽다 못해 미워진 사람은 동생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다가, 시기하다가, 증오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혐오했다. _ 「타인들의 타인-17세」 중

 

  내가 바라는 것은 이 고독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 차가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너희가 말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합리화. _ 「타인들의 타인-18세」

 

  나는 친구는 단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의 문인과 철학자들의 말처럼 우정이 고귀한 것이라면 그것은 여러 사람에게 분할될 수 없다. 카사노바가 많은 여자를 안았다고 해서 그가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직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면 안간힘을 써서 테두리 안에 들어간들 외로운 건 마찬가지다. 나는 그룹의 일원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타인들의 타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_ 「타인들의 타인-18세」

 

안간힘을 써서 테두리 안에 들어간들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그래도 그룹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타인들의 타인'이 되기를 자청하지 못하고, '싸늘한 얼굴' 짓기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다정한 무리인 척, 그냥 그 속에 속해있고자 했다.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혼자일 때보다 더 지독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 그럴바에야 차라리, 그래, 차라리, '타인들의 타인'으로 지내는 편이 더 낫겠다. 어차피 그들도 내게는 '타인들'일 뿐이다.

 

겉으로는 다정한 '절친'이지만 속으로는 서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는(어쩌면 나만 혼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친구들」 읽으며 씁쓸한 웃음도 많이 흘렸다. 그래, 우린 그렇게 '좋은 친구들'이지, 하는 자조. "'자신의 방패막'을 만드는 데 급급해 타자와의 관계 맺기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상처 받지 않는 대신 '그대로 멈춰버린 생'과 마주하고 있"('해설')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표제작 「달팽이들」에서는, 나 역시도 '그녀'처럼 나와 달팽이의 유사점을 발견했다. 바로 앞에 인용한 부분들. 정여울이 작품 해설에서 말하듯이 '하재영의 소설은 이렇듯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검열하며 끊임없이 자기 안의 결핍을 양산해내는 고독한 존재들을 그려낸다. 하재영의 인물들은 콤플렉스를 만성질병처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 하재영의 소설 속으로 걸어들어간데도, 하재영 소설 속의 인물이 소설 밖으로 걸어나와 내가 된데도, 삐걱거림 없이, 이질감 없이 금세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콤플렉스를 만성질병처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니까.

 

이 책에서 너무 '콤플렉스'만을 읽어내고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글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닌데 하필이면 내게 와서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책으로 둔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음에 만족한다. 대단히 만족한다. 비록 글을 읽는 동안 들쑤셔지는 열등감에 아팠을지라도, 이 책을 만나서 마음 한켠이 따스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 마음 읽어주는 소설,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상자에 꼭꼭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는 내 일기장과 많이 닮은 마음이 담겨있는, 그래서 마치 내 일기장 꺼내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한 글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와 마음을 나눈 것이 하재영이든, 하재영이 허구로 그려낸 소설속 인물이든, 그 깊은 밤 나와 교감하고 서로의 상처 꺼내보여준 이 지기(知己)를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테다. 그리고 언제고 또 펼쳐 만나볼 테다. 앞으로 나올 작가의 책들을 기다리는 마음도, 그 설렘의 박자를 더해간다.

 

 

  바라는 건 달라도 모든 욕망의 밑바닥에는 타인의 시선이 있는 거 아닐까요? 나도, 당신도, 남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나 전전긍긍하는 나약함을 욕망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나요? 외부로부터 강요받은 욕망을 내면에서 우러난 것이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고요? 혼자 밥 먹을 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은 왜일까요? _ 「같이 밥 먹을래요?」

 

  모든 비행에는 이유가 있다. 담임의 말은 틀렸다. 내가 그랬던 건 오직 그러고 싶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같은 일을 겪었지만 나처럼 되지 않았다. 차압을 당하고 빚쟁이가 쳐들어와도 일일호프에 쫓아다니거나 도둑질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쓰는 방에서 곱사등처럼 몸을 웅크린 채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모든 비행의 원인이 불운은 아니다. 모든 불운의 결과가 비행은 아니듯이. 어떤 비행에는 이유가 없다. 있다면 삐뚤어지고 싶은 욕망만이 이유다. _ 「고도리」

 

  후는 헌책방이라는 말 대신 오래된 책방이라는 말을 쓴다. 책은 새 것과 헌 것이 따로 있지 않다고, 누군가에 의해 펼쳐진 책과 펼쳐지지 않은 책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후를 만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새 것과 헌 것으로 나눌 수 없음을, 어떤 것들은 그 분류로부터 비껴나 단지 낡거나 오래되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_ 「가장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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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의 혼자 놀기
권윤주 지음 / 미메시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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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에는 일반적으로 저자의 프로필이 실려 있지.

내가 책을 펴면 가장 먼저 읽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을 집어들고 책날개를 펼쳤다가 나는 깜짝 놀랐단 말이지.

저자 소개가 실려 있어야 할 부분에, 나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좋아하는 게 같은 우리는 동지인 거야! 반갑다, 스노캣!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 잠잘 때 방해받지 않는 것 / 밖에 나갔을 때 볼일을 한꺼번에 다 보고 들어와서 / 며칠동안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 / 그리고 혼자 노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적어도 내 주위에는 아직까지 이런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거든.

다들 바삐 무언가를 하고 있고, 매일매일 어딘가에 나가고(대부분은 출근을 하겠지),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보내지.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나처럼 대문 밖을 나가는 게 엄청 귀찮고, 온종일 집에서 혼자 놀고 싶은 이가 있을 텐데, 바로 그런 친구가 책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간단하게 생긴(?) 고양이 그림 몇 컷과 짧은 이야기뿐이지만,

아아, 그거면 충분해!

이 고양이의 혼자 노는 이야기들과 그에서 나오는 속내들이, 정말 많은 공감을 자아냈거든.

 



(좌: 당신의 타입은? / 우: 당신이 혼자 놀기에 성공할 확률)

 

자, 여기서 간단한 테스트 두 개.

먼저 좌측 테스트 결과 'C'가 나왔다면 이 책에 공감할 확률 아주 높음. 나는 물론 C가 나왔지.

 

당신은 '반드시' 혼자 놀아야 해요.

 

그러므로 스노캣의 혼자 놀기를 읽으며 깊은 공감에 꺌꺌꺌 웃거나, '맞아맞아!!!' 박수를 치거나, 뭐라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을 느낀 것이겠지.

 

우측 테스트 결과 0개가 나왔다면, 굳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을지도. 하지만 4-6개가 나왔다면, 역시, '우리'의 동지 스노캣을 만나보도록!

나는 물론, 4-6개가 나왔지.

 

당신이 혼자 놀기에 성공할 확률 : 꼭 성공할 거예요.

 

그런데 말이야, '반드시' 혼자 놀아야 하는 타입이고, 혼자 놀기에 꼭 성공할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끼는 한편으로 뭔가 나 자신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어쩌면 혼자가 아닌 여럿이 그리운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굳이 혼자 놀기를 하고 있는 것은, 글쎄, 이런저런 어떤, 내가 제어하기 힘든 요인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꼽아본 이런저런 요인들. 조금은 씁쓸하데. 그래서 또 생각. '역시 나는 혼자 놀아야 해!'

 

그래, 인정하자면, 나도 가끔은 어울리는 게 좋고(그래서 가끔은 어울리고 있고) 나도 한때는 혼자 밥을 못 먹던 때가 있었고,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도 든다고.

그래서 스노캣의 혼자 놀기를 보며 어딘가 측은한 마음('혼자 놀기'에 공감하는 나를 향한 측은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라고.

그건 인정! '혼자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웠어요!'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아!' 정도의 '혼자 놀기 지존'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거 같아.

괜히 씩씩한 척(?)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가끔은(어쩌면 자주) 정말로 혼자 놀고 싶을 때가 있다고. 몇날 며칠이고 문 밖에 나가지 않고,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상자를 뒤집어 쓰든 오징어 가면을 쓰든, 탁자 밑에 들어가든 책상 밑에 들어가든 나를 감추며 혼자 놀고 싶을 때가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혼자 즐기는 시간은, 결코 외로움 따위는 찾아들 수 없는, 내가 나와 만나는 또다른 만남의 시간이라고. 내게는 정말 값진.

그러니, 내가 그렇게 혼자 놀 때는 나를 억지로 끄집어내려 하지 말아 줄래?(이건 요즘 우리 조카가 잘 쓰는 말투. "이모, 장난감 좀 꺼내 줄래?"-_-;;;)

남보기엔 '궁상'떠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정말 혼자서 신나는 시간 보내고 있는 중이거든.

"처량 맞게 집에 혼자 있지 말고 같이 나가자!" 엄마의 이 말이 나는 가끔 슬프다고.

 

나는 진심으로, '혼자 놀기'가 좋은 때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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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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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와 제이와 케이의, '그녀의 집'을 찾아 떠나는 여행! 책으로 다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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