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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은 쓸쓸하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가 아니면 누가 과거의 나를 찾을 것인가. 항해(航海)와 노동으로 채워졌던 이십대 후반의 시절은 기억 속에 촘촘한데, 삶의 매 시기마다 닻 주었던 자리는 이렇듯 흔적이 없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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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푸른 바다 한가운데 익사 모면할 정도의 몇 뼘 땅.
광활한 수평의 세상을 버티고 있는 수직의 장소. 방파제를 넘어 달려드는 거대한 파도와 초속 30미터의 강풍. 어부의 죽음. 가지가 한쪽으로만 늘어나버린 팽나무. 단 한 뿌리라도 더 캐려다가 비탈에서 떨어져버린 아낙. 살아남은 자들의 깊은 주름. 급경사의 밭. 끝없이 이어지는 일. 이젠 됐다 툭, 떨어지는 동백꽃.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 이별과 쓸쓸함만큼은 풍족한 곳. 사람도 섬을 닮아버린다. 각자 독립된 고립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된 채 달이 가고 해가 바뀐다. 섬은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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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되면 조간대가 드러나며 섬은 제 영역을 키웠다. 아직 달의 인력을 몰랐던 때라 나는 밀물과 썰물이 바다가 숨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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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는 바다가 그리웠지만 바다로 오면 육지가 아팠다. 그래도 나는 이곳으로 왔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나를 고독과 불편의 고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인가.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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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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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쁜 것과 나쁘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었다. 나쁘지만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좋다, 라고 말했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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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나는 세상을 좀 앞당겨 살아버렸는데 어쨌거나 젊음이 끝나기도 전에 늙음을 기웃거려보는 것이 소설가의 팔자라고 생각하는 게 그 이유이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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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흠 될 것 없는 나이였지만 막걸리마저 마음놓고 못 사먹을 정도의 불편이 괴로웠다.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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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은 무기력하다. 충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먼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긴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다면 그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고민은 돌아갈까 말까 부분에서 해야 한다. 세상 저만큼 간 다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갈까를 고민하는 것, 그게 내가 말하는 여행이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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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꿈꾸기 위해 내륙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꾸는 곳은 늘 멀리 있는 법. 먼 곳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꿈꾸는 것.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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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바람이 바뀌고 찾아오는 어종이 변하는 것에 의해 일 년이 간다. 갈치가 가고 삼치가 오듯, 참돔이 물러가고 감성돔이 방문을 하듯 그렇게 바다의 시간도 주기를 가진다.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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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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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그래서, 한창훈 작가님이 왜 쓰는가 하면,
바로 이것을 위해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문장이 가장 와 닿았다.
사람과 함께 태어나 함께 살다가 함께 스러져간 변방의 말[言]과 노래. (95)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와 '근친 혐오' 속에서도, 꿋꿋이, 맛깔나게, 힘 있게 써내려가는, 변방의 말들과 노래.
그 말들과 노래들이 담긴 한창훈 작가님의 책들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이 책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