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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악착같이 해 보란 말이야."
고3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충고가 바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라는 것이었다. 아마 전국의 수험생들이 보편적으로 듣는 조언일 텐데, 사실 나는 왜 공부 따위를 죽지 않을 만큼이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우상 리엄 갤러거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난 내 인생의 어떤 면에서든 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지 않아. 뭣하러 그래? 왜 스스로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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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여러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꽂아 놓은 바늘로 가득하다. 그 수많은 상처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건,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상처를 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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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시간에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배웠다. 어느 인간도 방대한 우주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티끌만 보고 우주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피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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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아홉이다. 젊다고 하기엔 어리고, 어리다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세상이 너무 어둡고 축축해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엔 누려 보지 못한 세상이 너무나 넓었고, 세상이 마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린 나이였다. 누가 뭐라든 우리는 열아홉이다. 어리석은 열아홉도, 철없는 열아홉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열아홉도 아닌 그냥 열아홉.
시리지만 상쾌한 밤공기에 나는 옷깃을 여미었다.
그래, 춥지 않다. 우리는 춥지 않다. |
*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업이 끝나면 저녁 먹고 야자 마치고 집에 와서 쓴 소설".
저자 소개의 이 문구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한 건,
작가가 '고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쓴 소설이라는 게 놀라워서이기도 하고,
고등학생이 또래의 이야기를 써낸 소설이란 건, 이렇게 생생하게 펄떡펄떡 살아 있는 거로구나, 그 또한 놀라웠기 때문.
내가 읽어본 책들 중, '어린 작가' 하면 전아리 작가가 먼저 떠오르는데(이제 전아리 작가도 어리지 않네... 이 책을 쓴 최서경 작가보다 여덟 살이나 많다...) 전아리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경이'와는 또 다른 것이다.
청소년소설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이겠구나, 하는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을 깨달으며,
몹시도 빨려들어가 읽었다.
* 그 또래 아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속마음이 담긴 소설이다.
어떤 교훈이나, 그럴 듯한 성장담 같은 게 담긴 건 아니다. 왠지, 그 느낌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서, '저 아이들은 지금 이런 마음으로 저 시기를 보내고 있겠군' 하고 섣불리 '아는 척'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번만이라도, 들어봐 주길...
"도대체 왜 그래?" "이유가 뭐야?" "뭐가 불만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봐." 듣겠다는 건지 윽박을 지르겠다는 건지 모를 그 입이 아니라,
가만히 그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귀를, 내밀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