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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ㅣ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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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독자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꾼, 미야베 미유키 여사.
기다리고 있던 미시마야 시리즈도 현대물도 아닌, 이번에 들고온 이야기는 '하이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하이쿠라는 장르가 매우 생소할 겁니다.
'치하야후루'라는 만화를 볼 때도 카루타라는 놀이가 넘 생소해서 작품의 재미가 반감되었던 경험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하이쿠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하이쿠는 우리나라의 시조와 비슷하지만 굉장히 압축된 한줄 시로,
5-7-5 총 17음이라는 정해진 글자수 안에서 정제된 의미를 담아내는 운문 장르입니다.
번역자분께서 워낙에 하이쿠 번역을 잘해 주신 것 같은게, 하이쿠만 읽어도 뭔가 와닿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제목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만 읽어도 알듯 모를듯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12수의 하이쿠로 미야베 미유키가 만들어 낸 12개의 멋진 이야기.
압축된 세계에 미미여사만의 상상력이 더해지니 더없이 멋진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타이틀인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언젠가부터 멋을 부리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등 변하기 시작한 언니 노리카, 그리고 그런 언니를 좋아하는 동생 미노리의 이야기로, 행복해보이던 언니가 어느날부터 얼굴이 어두워지곤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날 우연히 마주치게 된 언니의 남자친구 다쓰야는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하는 무례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함께 만난 첫 자리에서 외할머니의 부고 문자를 받고 슬퍼하며 가봐야겠다는 노리카의 말을 믿지 않고 남자를 만나러 가는거 아니냐고 추궁하며 때리기까지 합니다. 결국 다쓰야와 헤어지기로 한 노리카.
수십통의 문자와 전화, 울고 협박하는 음성메시지... 노리카는 외할머니 댁에서 잠시 머무르며 다쓰야를 피하고자 합니다. 연락이 잠잠해진 듯했으나 다쓰야는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밤하늘에 구름이 흐르고 달이 그 뒤로 숨자 창가에 버티고 선 다쓰야의 모습은 달빛을 잃어 새카맣습니다.
달빛으로도 정화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자못 끔찍한 이야기였는데, 3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압축한, 하이쿠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였습니다.
'날 선 가위여 꽃밭의 맨드라미 목을 자르리'라는 이야기도 괴이하면서 재미있었는데,
'미짱'이라는 죽은 여자에게 미련이 가득한 남자와 결혼한 도모카.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남편도 오래 전에 죽어버린 동창생 '미짱'에게 집착하는데, 미짱과 남편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는 것.
가족을 내팽개치고 미짱에게만 집착하는 남편에게 질려버린 도모카는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미짱'의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듣게 된 충격적인 진실이 참으로 어이없었는데요. 각 단편들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 역시 미미여사가 대단하구나, 이야기꾼이 틀림없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이쿠를 먼저 감상하고 소설을 읽고 마지막으로 하이쿠를 읽어달라는 미미여사의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먼저, 그 다음에 본문, 마지막에 편집자의 후기를 읽어달라는 삼송 김사장님의 메모.
저도 이 순서대로 읽었고, 이 책을 읽으실 분들도 꼬옥 이 순서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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