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리고 80
콜린 히긴스 지음, 정성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극작가 콜린 히긴스의 유명한 시나리오 [19 그리고 80]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오랜만에 누렸습니다. 이 작품은 외국에서는 이미 TV와 영화로 만들어졌고 연극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레퍼토리입니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삶보다는 죽음에 집착하는 해롤드와, 이제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모드의 사랑이야기라서 원제는 [Harold and Maude]입니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짧고 강렬한 통찰을 보여주었기에 시나리오의 교본처럼 숭배를 받고 있습니다. 참 Collin Higgins는 예전 할리우드 영화 [Nine to Five], [Foul Play],  [Silver Streak]과 같은 재치있는 작품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연극 [19 그리고 80]은 박정자의 작품입니다. 이제 60이 된 고참 연기자의 저력과 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극본에 휘둘리지 않고, 연출에 휘둘리지 않고, 무대에 휘둘리지 않고 도를 깨친 듯 한 박정자의 연기는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아마도 3년 이상 같은 역할을 연기한 경험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움도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풋풋한 어린 소년을 연기해야 하는 해롤드의 캐스팅은 아마도 연출가 강영걸에게는 힘든 숙제였을 것입니다. 경험 많은 연기자를 쓴다면 해롤드의 풋풋함이 나오진 않을 것이고, 반대로 너무 어린 배우를 쓴다면 그 경험 부족으로 어설플 뿐 아니라, 박정자의 '모드'에게 휘둘리기 십상일 테니 말입니다.

우려했던 것에 비해 소년 윤태웅은 훌륭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오히려 '해롤드'본인의 캐릭터에 누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삶에 비관적인 해롤드로부터 모드를 만나면서 인생의 기쁨을 느끼고, 활력을 찾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닮는 어려운 역이 였음이 분명한데, 이런 변화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반부에서는 좀더 힘을 뺏으면 좋았다고 느꼈기에, 사실 비관적인 해롤드보다는 적극적인 후반부의 해롤드에서 그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화, 무대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서 인지 소설 [19 그리고 80]이 주는 감동은 무대에서의 그것보다는 훨씬 떨어집니다. 자신의 삶을 던져 自由를 전파하는 '모드'의 탁월한 대사는 소설을 통해 곱씹어봐도 여전히 재밌었습니다.

극단의 각색과 연출도 원작 못지않게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원작의 행간을 적절히 채워 놓았고, 무대에 불필요한 상황을 적절히 삭제하는 현명한 선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강영걸의 연출은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역동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대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와 같은 편집과 템포가 무대 위에 펼쳐졌기에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두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제일 지겨운 것이 인생 선배랍시고 술자리에 불러놓고 두 시간씩 인생에 관한 훈계를 할 때입니다. 그 훈계가 '모드'할머니가 '해롤드'에게 하듯 재밌고 생생한 내용이었다면 아마 제 인생이 달라졌을 겁니다. '모드'의  삶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의 인생의 더욱 자유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최소한 더 재밌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 [19 그리고 80]과 책 [19 그리고 80] 모두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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