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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ㅣ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 가지의 인연이 책꽃이에 갇혀 있던 이 책을 제 손에 이르게 했습니다. 마침 저자인 테드 창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었고, 알라딘의 중고 책방에 처분할 책을 고르다 구석에 유배되어 있던 책을 발견했습니다. 테드 창의 기사에서 이 책이 과학 소설(SF)이란 것을 알았고, 평소 과학소설을 편애하기에 과감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왕년에는 저도 한다 하는 SF소설 광이었습니다. 약 삼십 년 전 '아이디어 문고'에서 나온 60권에 달하는 공상과학 문고는 초등학교 시절 제 교양의 기반이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더 C 클라크의 계보를 한동안은 외웠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영화보다 먼저 소설로 읽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SF의 세계는 저와 결코 별개의 장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작가의 상상이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읽었던 보통의 SF는 (요즘은 소프트 SF라고 불릴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이나 행태를 유지하며 여기에 미래의 새로운 문물이 더해진 형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테드 창의 상상력은 인간의 행태를 초월합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새로운 언어 체계를 선보인 것과 같은 류의 충격입니다.
도입부에 꽝하고 새로운 전제를 던집니다. 바빌론 사람은 탑을 쌓고 조만간 푸른 색 석회암으로 덮인 하늘을 뚫고 신의 뜻을 가까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바빌론의 탑) 진흙으로 골렘을 만들고 적절한 이름(명령어)을 써서 붙이면 움직인다.( 일흔두 글자) 사람들이 외모의 차이를 인식하지만 미추의 차이를 느끼게 할 수 없는 장치가 도입되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천사가 강림이 일상화되어 하느님의 이적을 보여준다.(지옥은 신의 부재) 이상의 황당한 전제가 소설의 문을 엽니다.이런 이야기를 언어학, 물리학, 수학 등의 학문적 지원을 통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작가가 전달하는 이론의 30%만 이해하더라도 이 소설은 훨씬 흥미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문과 출신의 일반 독자에게는 먼 이야기로 들릴 때도 있습니다.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여서 이해하지 못하고 책장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중단편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천재의 세계를 넘보는 기회는 범인들에게는 자주 오는 행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 소설을 진지하게 좋아하거나 이공계의 배경을 지닌 독자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소설일 것입니다. 머리에 든 것도 없이 공허한 말장난으로 꾸민 이야기보다는 이런 과학 소설이 훨씬 몸에 좋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