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끼가 좋았을까요? 


연인이나 친구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도 채우지 못한 허전함을 저는 하루끼로 달랬었나 봅니다. 이상한 것은 하루끼는 저의 허전함을 채워주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저의 허전함을 극으로 치닫게 해 고독이라는 외로운 까마귀를 불러들이곤 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고독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저는 명징하게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끼라는 우물에 제 얼굴을 비추어보며 치장도 없고 가식도 없는 실체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어둠의 저편]은  결국은 새벽을 향해 나아가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독자를 애달프게 하는 이야기의 유혹도 없어 보입니다. 다만, 하루끼의 우물을 다시 만나 물 한 바가지를 퍼서 마셨기에 갈증을 덜었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예전처럼 마음이 맑아지지 않습니다. 하루끼의 우물은 혼탁해져서 저의 고독한 자아를 비추어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변해서일까요, 하루끼가 변해서일까요. 저는 제가 변해서 일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루끼는 항상 그리움에 시달리는 작가입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가 그 손을 잡아줍니다. [어둠의 저편]에서도 이러한 관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에리와 똑똑한 마리 자매는 한 사람은 타인들의 시선을 독점하고 한 사람은 소외당하면서 서로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런 에리가 '잠을 자겠다.'라고 선언하고 2개월 넘게 자는 어느 밤에 이 소설은 무대를 설치했습니다. 그 밤 마리는 다카하시를 만나고, 다카하시를 통해 카오루를 만나고, 카오루를 통해 고르기를 만나면서 에리와 가까워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습니다. 여전히 '손내밀기와 손잡기'라는 하루끼의 테마는 유효합니다.


하루끼의 다른 소설에 비해 작가 자신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를 발견했습니다. 밤새 트롬본을 연습하며 그 와중에 마리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다카하시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 다카하시란 인물은 하루끼를 좋아하던 우리 독자들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롭게 힘들게 세상을 홀로 서는 법을 배우 사람들, 이제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여유를 갖게 된 사람들, 이제 막 좋아진 연인과의 6개월간의 이별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 다까히시를 통해 하루끼를 보고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전의 작품처럼 이야기의 흡입력이 크진 않습니다. 예전의 그의 소설처럼 다시 읽게 되면 새로운 맛을 느낄까요? 언제가 시도는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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