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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노래
폴 글린 지음, 김숭희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 동부에 사망, 실종자의 숫자가 이만 천여 명을 넘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났습니다. 이 재난으로 지진 피해자들이 겪은 절망과 상실감을 쉽게 표현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변한 현실이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을까?"하고 한탄하게 마련입니다. 만약 만물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 순진무구한 어린이, 그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까지 가리지 않고 데려간 신의 잔혹함에 대해 한 서린 원망을 할 것입니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을 멀리한 데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자 하나님이 내린 벌’이라는 요지의 대답을 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인구 20만 명의 일본 도시 나가사키에 B-29 폭격기가 폭탄 한 발을 떨어뜨립니다. 새로 개발된 그 폭탄은 나가사키의 전체 인구 중 7만 명을 순식간에 화염과 폭풍으로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폭발 순간 불에 타서 녹아 버렸고, 시신은 후 폭풍으로 날아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거기서 살아난 사람은 그 후 방사능에 의한 후유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죽음보다 질긴 생명이지만, 이후의 삶도 절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가사키라는 곳의 역사가 특별합니다.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최초로 선교가 시작된 곳이었고, 14세기에는 봉건 제후가 그리스도교인이기도 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대대적인 박해가 있기 전, 15명의 일본인이 사제 수품을 받았던 그리스도교인의 마을이었습니다. 미키 바오로라는 일본인이며 예수회 회원은 순교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하며 이 죽음을 주님의 위대한 선물로 여깁니다.”
도쿠가와 막부에 이르러서도 박해는 계속되었고 나가사키의 신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일본이 문호를 연 후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집니다. 그 수백 년에 이르는 박해의 시간 동안 나가사키의 신자는 ‘숨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몰래 신앙을 이어 나갑니다. 1945년 8월 9일 떨어진 피폭의 영점은 나가사키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성당으로부터 불과 500m 거리였습니다.
나가이 다카시라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이르는 참화 속에서 군의관으로 참전했습니다. 전쟁의 격랑 속에서 똑같이 피를 흘리는 아군과 적군을 보며 나가이는 인간에 대한 각성과 평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 후 그는 절대자의 인도라고밖에 볼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의 교차 끝에 가톨릭교도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는 방사선 과학자로서 엑스레이 진단을 계속하다 방사선에 심하게 노출되었습니다. 그 결과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나가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에 무척 상심합니다. 남편의 병을 알았을 때 아내 미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삶도 죽음도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요. 당신의 수고는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아내 미도리는 시한부 인생인 나가이 보다,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나가사키의 핵폭탄이 7만 2천여 명의 시민과 함께 나가이의 터전과 함께 아내 미도리를 데려갔습니다. 그 후의 나가이의 삶은 성인(聖人)의 그것이었습니다. 그 후 죽기 전까지 6년간, 나가이는 나가사키의 재건과 희망, 미래를 위해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1945년 11월 23일 열린 합동 위령 미사에서 나가이는 연설을 합니다. B29는 폭격 당일, 기체 이상으로 폭격지점이 갑자기 나가사키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시에 신자 7천여 명이 희생되었음을 상기시키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민족의 죄악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하느님에게 선택된 희생 제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나가사키를 희생 제물로 선택해 주신 것에 감사합시다. 이 희생 제물을 통해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고 우리에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것을 감사합시다.”
가장 원통한 희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절대자의 뜻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아무리 헤아려도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의 재난을 보고 벌을 받았다고 하는 냉정한 비평에 비해 나가이의 연설은 참 위대해 보입니다. 피해 당사자가 ‘우리의 죄를 씻으려 희생하였다.’라는 속죄의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나가사키의 노래]라는 책을 제가 읽게 된 시점과 그 내용이 신기할 정도의 시의(時宜)성을 띄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희생되었던 1945년과 2011년의 두 사건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또 조용기 목사와 나가이 박사의 희생에 대한 상반된 해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나가사키의 노래]가 마음 깊숙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