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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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

 

틈이라고 한다면, 나는 우리 집 시멘트마당바닥의 갈라진 틈이 생각난다.

 

장마가 지난 후 더 커진 그 틈을 빨리 시멘트로 다시 메워주지 않으면 점점

 

커져 우리 집 마당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한번은 엎드려 그 틈 사이를 본 적이 있다.

 

깜깜하고 깊어 그 아래에 뭐가 있는지 통통 알 수가 없었다.

 

혹 가다 개미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틈은,

 

처음에는 선으로 보일 정도로 하찮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틈은 점점 커지는 속성이 있다. (무수한 영향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그 틈을 메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

 

'틈'의 정의를 찾아보니,

 

1.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2.모여 있는 여럿들의

 

3.겨를

 

4.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

 

5.사람들 사이의 정분이 떨어진 거리

 

이 모든 틈의 정의가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굳이 '틈'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연관을 시키지 않아도

 

하나하나의 단편이 의미가 있었다.

 

뭐,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느낀 의미가 전부 다 정답이지 않겠는가.

 

.

 

물 한모금  ★★★★★

 

"아밀, 인생은 소가 물 한모금 마시는 시간만큼 밖에 안된단다."

 

아밀의 할머니가 그랬듯 정말 인생은 '물 한모금' (틈) 그것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 같다.

 

물 한모금을 모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빨리 갈증을 풀기 위해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물 한모금을 마시기 위해 한방울씩 모아온 물사발이 한 순간에 엎질러지기도 한다.

 

'눈앞에서 엎질러진 물그릇. 더 심해진 조갈증이 샤프의 몸에 그나마 남은

 

 물기를 쥐어짜리라.'

 

시~원한 물 한모금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인생에 몇몇이 될까.

 

대부분은 목이 말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다 죽어가지 않을까.

 

욕망이 많을수록 그 틈은 더욱 커져 물을 아무리 줘도 메울 수 없을 거다.

 

 

섬  ★★★★★


잠이 안 오는 고요한 밤.

 

조금씩 먼 옛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것도 좋은 기억이기 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다.

 

왜 사람들은 생각할 틈이 있으면 좋은 추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까?

 

'큰 독에 장아찌 담그듯 차곡차곡 집어넣고 넓적한 돌로 단단히 눌러놓은 기억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돌의 무게를 견뎌내고 솟구치려는 기운은

 

 밤이면 더 기승했다.

 

 하루에 네댓 편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발효해버렸으면 싶은 기억은 양념이 다 삭아

 

 어우러진 신 김치 속에서도 제 맛을 주장하는 생강조각처럼 도드라졌다.'

 

 

문밖에서  ★★★★★

 

고등학교 때 나는 곱슬머리였다.

 

그렇게 깊다고 할 수 없었던 두 친구는 나에게 '스트레이트 해봐~' 하고 권유했다.

 

그 당시에 비쌌던 스트레이트를 하기에는 부모님에게 염치가 없었다.

 

비싼 머리를 하고 유명브랜드의 옷을 사 입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급기야 '기지배 고집도 쌔니까 이렇게 곱슬머리지.'  '스트레이트 하면 더 좋은 걸 왜 안해?'

 

하면 질끈 묶은 머리를 잡아당겼다.

 

하기 싫은 일을 친구들에게 강요받던 어느 날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어버렸다.

 

'내가 하기 싫다고!!!!'  이렇게 고함을 칠 수는 없었나..ㅡ.ㅡ

 

"인생에는 세 가지 길밖에 없대. 달아나든가, 방관하든가, 부딪치는 것.

 

 영화 <씨티오브조이>에 나온 대사야.

 

 나는 주로 방관하는 편이었어. 하지만 방관하는 게 더는 허용되지 않을 때가 오지.

 

 그러면 달아나거나 부딪치는 수밖에."

 

 

망태할아버지는 저기 오시네 ★★★★★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좁은 집에 사는 여자는 남편의 전출로 이사를 한다.

 

거기는 풍광이 멋있고 깨끗하고 공기도 좋으며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와 시이모들이 떨어져 있다.  바퀴벌레도..없는 거 같다.

 

하지만 그 깨끗한 곳에 시어머니와 시이모들은 횟수는 줄었지만 종종 방문하고,

 

사이좋게 지내던 아파트 부녀자들이 한 이웃을 매도한다.  일명 따!

 

그 싫던 바퀴벌레도 깨끗한 집에서 어김없이 출몰한다.

 

더러운 집이든 깨끗한 집이든 바퀴벌레는 있다.

 

새 집으로 이사하면 바퀴벌레하고는 안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

 

어디로 이사를 가나 부녀자들이 단체로 누구를 흉보거나 매도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우리네 풍광이다.

 

시어머니와 시이모들도 떼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언제든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자는 바퀴벌레가 싫은 건지도..

 

 

 

 

늑대가 나타났다 ★★★★★

 

우선 이 이야기는 아주 귀여웠다.

 

아이의 가출기.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그 정해진 곳을 넘어가면 '늑대'들이 우글거린다. (마을 안에도 몇몇의 늑대가 있다)

 

아버지는 그 늑대들을 싫어한다. 상종 못 할 인간들이라는 거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이웃집 언니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밤마다 늑대처럼 ㅇ~ㅏ 우 하고 운다.

 

늑대들이 득시 대는 곳에 갔다 오면 그 언니처럼 늑대가 된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곳이 궁금하고 이 마을 안이 너무 갑갑하게 생각되어져

 

가출을 한다.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후회가 되는 아이는 때 마침 자전거를 타고 오는

 

마을 안 '늑대 아저씨'에게 태워져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에 있을 땐 다른 데를 그리워하게 만들던 어스름이 짙어졌다.

 

 마을 밖의 어스름은 매몰차게 떠나온 마을과 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늑대가 되었다고 생각한 아이는 처제와 사는 '늑대 아저씨' 가

 

그다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람들을 늑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진짜 늑대는 아닌지.

 

.

 

여러 가지 틈새를 돌아 댕긴다고 바빴다.

 

'틈'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머지 4편의 단편들도 맘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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