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6
에밀 아자르 지음, 지정숙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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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뜻하는 바는 여생이였습니다. 남은 생...에밀 아자르라는 작가가 너무 독특해서 이 소설에 상을 주려고 했을땐 작가를 찾아야 했다고 합니다. 읽는 동안 너무 천연덕스러운 슬픔에 묵묵히 침묵했습니다..

주인공은 착하고 순수하며 얌전한 아이가 아닙니다. 창녀들이 낳은 아이들을 맡아기르는 로지아줌마와 주인공 모모의 따뜻한 교감에 대한 이야기..어떤것이 사랑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죽어가는 로지 아줌마 곁에서 모모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보다..자신도 모르게 전할수 있는지 그걸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모모는 로지아줌마의 극성스러움을 모두 기억하고 그의 아픔앞에 멀뚱히 서있습니다. 자신이 필요하다면 늘 곁에 있겠다는 다짐을 하고 로지아줌마와의 진실한 관계성을 회복합니다.

슬픈 이야기여서 빨리 읽어버렸습니다. 모모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에 함께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뭐가 진실이고.. 사랑없이 인간이 살수 있는지 헷갈려하며 혼란을 겪을때 함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에밀 아자르..마치 어린 모모인양 그 마음과 기억할 수 없었던 어린 아이의 행동을 그려내었습니다. 모모는 살아있는 우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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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다니엘 페낙 지음, 문영훈 옮김 / 산호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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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야릇한 제목을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설처럼』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한껏 궁금증은 부풀려진다. 겉장을 열자마자 이런 글귀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책은 읽지 않아도 됩니다. 혹은, 건너뛰어가며 읽어도 되고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며 다시 읽어도 됩니다. 그것은 독자 여러분의 권리입니다.'

왠지 풋웃음나는 분위기속에서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었던 이 책은 신선하고 용감한 시선과 어투로 독자의 권리를 은근히 일깨워주고 있다. 누가 읽어도 어떤 강요도 느낄 수 없는 편안한 이야기로, 특별히 연결해서 읽지 않아도 되는 독특한 내용구성이 그 재미를 더한다.

소설이라 하기에도,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책위에서 군림하는 뿌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건 작가의 재치와 유머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니엘 페냐크는 밝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도입부에선 독서를 강요당하지만 책의 신성성(?)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년과 과거에 독서에 열중하고 있던 한 소년이 밖으로 내몰리는 장면이 겹친다. 부모들은 아이를 올려보내고 아이교육에 대한 걱정거리를 토로하고, 아이가 보는 책은 여전히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 있다. 독서를 두려워하는 아이들, 계속되는 부모님의 걱정속에 책에게도,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는 걸까........?

곧 책읽기를 사랑하는 법이 뭔가 해결해 줄 듯 이야기를 꺼내지만, 교육환경에 둘러싸인 학생은 독서행위에 경직되어 있고, 교사는 그런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작품을 읽고 분석하는 과정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진정한 독서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으며 수많은 훌륭한 고전들도 소리없이 죽어가지나 않을까..결국 교사(혹은 페냐크)는 독서의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몸소 보여준다. 한학기 수업시간 내내 쥐스킨트의 '향수'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고 우왕좌왕하던 학생들 모두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몇차례가 지나기 전에 학생들은 독서라는 거대한 행위에 대한 자각없이 그저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서히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아이들은 독서습관들을 몸에 담으며 진지한 책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데....이것이다 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독자의 권리를 일깨워주고 그 경쾌함이 또 다른 책을 향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중간을 건너뛰어 가며 읽을 수 있는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수 있는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보바리즘에 빠질 수 있는 권리, 어떤 장소에서나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권리, 중간 중간 발췌해서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권리. 그렇다, 그 열가지가 주어지는 데 누리고 싶지 않을자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책과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책읽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독서를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자신을 종종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힘 안들이고도 책이 읽어진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다음 책에 손을 옮기게 해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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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눈 - 3단계 문지아이들 11
다니엘 페낙 지음, 최윤정 옮김, 자크 페랑데즈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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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마음에 슬픔과 행복이 찰랑 찰랑 다가오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참 마음에 듭니다. 역자가 서평 첫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난 다니엘 페나크가 좋다.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 늑대의 눈을 통해 소년 아프리카는 늑대의 기억속으로 들어가 그의 과거를 봅니다. 그리고 늑대는 소년 아프리카의 눈을 통해 그의 과거를 봅니다. 그의 과거에 있던 모든 동물들과 사람들은 이제 썰렁한 동물원에 함께 모여 있습니다. 늑대의 눈 한쪽이 감겨 있습니다.소년 아프리카도 한쪽 눈을 감습니다.

그런채로 서로를 이해합니다. 말 한마디에 없이 슬픈 기억이라는 단어 한마디 없이 깊은 슬픔을 보여주고 따뜻한 이해를 보여줍니다. 삽화도 보면 볼 수록 끌립니다. 다니에 페나크는 대단한 독서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관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아동문학 작품이지만 읽고 또 읽고 깨달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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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동안에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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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새벽에 내가 느낀..나..참을 수 없을 만큼 내 모습의 실체가 나약해 보이기도 하네요...'흐르는 자'의 이야기 입니다. 천년동안 묵묵히 살아온 거목이 산에서 자살한 여인네의 자궁에서 갓 빠져나온 아기를 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거목은 생사여부조차 알수 없는 아이의 28년을 생생하게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자로서 살아준 아이의 미래..그 28년을 확인조차 못하고 잘려가는 그 거목의 마지막 한마디는...
'잘 태어났다.......'그러나.. 잘 태어났다...무슨 울림처럼 이 말이 떨어지질 않아요.

책을 읽는 동안 고여있기 싫어하는 성질을 발견하고는 불끈 불끈 '이렇게 살았으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안락함과 바꿀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객기인것이죠.^^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포기한 듯 싶지요...지금은 그럴지도. 어찌되었든 인간은 다른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거 아닐까요...자신만의 자리가 자신만의 모습이 있으니...그것만은 지켜가야지요...서로 얼룩덜룩하지만 예쁘게 꿰매지면 예쁜 조각보를 이루듯이 우리 사는 모습도 그래야지요. 누군가 책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어한다면 읽어보라고..무조건 읽어보라고 더더욱 지겨움과 답답함에 겨운 사람이라면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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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 세계의 문학 21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서 옮김 / 을유문화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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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눈도 많이 아팠건만 유리알 유희 책을 집어들고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고요한 새벽에 요제프 크네히트..유리알 유희 명인의 죽음과 함께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였습니다. 다 읽고 책장을 덥는 순간 온 우주에 붕 떨어져 있는 기분일만큼...가볍게 얘기하는 듯해 오히려 실례가 아닐까 걱정이 될만큼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특별한 인물이 몇사람이 나옵니다. 물론 그 인물 모두에겐 헤세가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불어 불완전한 우리네 모습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크네히트의 청년기와 크네히트의 말년에 함께한 데시뇨리란 친구..그리고 같은 카스텔리안인..테굴레리우스..크네히트가 아닌 그 두사람에게서 전 저의 생각에 대한 모양새를 읽어낼수 있었답니다. 유리알 유희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 참 기쁜 일이였습니다. 완벽한 작품이라고... 모두에 눈에도 그러하지 않을까..그의 죽음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삶이 완전에 가까운 불완전함이였기에..헤세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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