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 책은 너무나도 이미 유명하지만 솔직히 별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영국 드라마 빅토리아 시리즈를 보게되면서 대화 중 등장하는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관심이 가 읽게 되었다. 왜냐하면 영국의 가장 평화롭다는 빅토리아 시절의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책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당대 통렬한 사회 비판과 도시 밑바닥의 하층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때문에 가장 상류층의 정점에 있는 퀸 빅토리아가 이 책의 이름을 대사로 말했을 때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제목과는 다른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보기 좋게 깨졌다. 아이의 이름을 표제로 내세운 것과 다르게 아이의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자 또한 작품 해설에서 이 점을 짚고 있다. 사실 올리버라는 인물 자체는 그다지 우리의 관심을 계속 끌지 않는다. …… 그밖에 대부분의 경우에 올리버란 인물은 어떤 상징으로 작용한다. 초반에는 구빈원 시스템의 희생양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완전무결한 순수함을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힘은 주인공이 아니라, 각양가색의 다채로운 등장인물이 뒤섞여 벌어지는 아수라장 같은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p.605 어른이 되어 읽는 『올리버 트위스트』는 고난을 거쳐 행복을 찾는 아이의 이야기라기 보다 19세기 영국의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다. 올리버가 태어나 성장하는 구빈원의 부조리한 상황, 요즘의 기준으론 아직 어린 아이임에도 노동현장에 투입돼 어이없는 처우 끝에 죽음의 위협을 맏닥뜨리는 일, 거리의 아이들을 등쳐먹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특히 책 초반의 구빈원의 운영 상황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튀어나오는 대목이 많았다. 작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으로 풍자한다. 9살 먹은 올리버가 구빈원을 나가 일터로 가게 된 상황을 서술한 대목이다. 낡은 밧줄의 실밥을 푸는 간단한 과정 속에서 교육과 기술이라는 두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올리버는 말단 교구관의 지시에 따라 꾸벅 감사인사를 올린 다움, 서둘러 커다란 보호소 건물로 끌려가서 거칠고 딱딱한 침대 위에서 훌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이 축복받은 나라의 자상한 법률에 따른 사례를 어디에서 이토록 고귀하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다니! p.32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일터에서의 노동착취를 ‘교육과 기술이라는 축복’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나라를 ‘축복받은 나라’로, 아이들을 착취 현장으로 보내도록 강제하는 법률을 ‘자상한 법률’로 묘사하고 있다. 구빈원이 가난한 사람에게 지나친 복지를 제공한다고 판단한 이사회의 신사들의 결정에 대한 서술에서도 풍자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든 구원받을 수 없다. 이 책은 19세기 한 고아 소년의 인생 여정을 통해 참담함을 느끼게하지만 그 안의 희극적인 요소들을 배치해 왜 그 당시 이 책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사회권력자들마저도 이 책을 읽어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통해서 영국 신랄한 풍자문학의 진수를 엿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