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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걸음 - 박이도 詩 선집
박이도 지음 / 시간의숲 / 2019년 1월
평점 :
<가벼운 걸음>
시로 깃들다
언어로써 치환된 내 사상
그 낱낱의 담화의 형식들
시로 깃들었던 내 이상
이제 때가 되었네, 때가 되었네
육신의 허물을 벗고
한 마리 잠자리로 날자
자유의 시공으로 날자
내 허물 벗는 소리를 엿들어 보라
내 시에 깃든 영혼의 가벼움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그 음성을,
끝내 볼 수도 없는 밝은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것, 밤하늘에 별똥처럼 날아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풍경을,
어느 인생
이제야 내 뒷모습이 보이는구나
새벽안개 밭으로
사라지는 모습
너무나 가벼운 걸음이네
그림자마저 따돌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림자
그림자 중엔 사람의 그림자가 제일 초라하다.시의 그림자 중엔 내 모습, 육신의 그림자가 초라하다. 사막의 선인장처럼 엉성한 가시와 밑동이 잘려나간 무시래기처럼. 거추장스럽다. 정오를 맞아 그림자 없음의 가벼움, 내 존재를 드디어 확인한다. <없음>의 의미, 내가 없음으로 육신의 그림자도 없다고. 오늘은 비 오는 날이 그립다. 육신의 허물을 잊어버리고 싶다. 그립다. 잊어버리고 싶다.
새로운 시집을 만날때마다 설렌다. 평소 시를 어플로 읽는데 이때는 주로 시를 한 편씩 따로 읽기 때문에 여러 시들을 한번에 읽을 수 있는 시집을 만날 때마다 설렌다. 그리고 시집은 시인이 직접 엮은 주제와 시인이 직접 정한 순서대로 시를 읽을 수 있기때문에 시를 잘 이해할 수 있기때문에 더 좋다. 요번에 읽은 시집은 <가벼운 걸음>이라고 박이도 시인의 詩선집이다. 이 시집의 저자 박이도 시인은 사실 이 시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시인인데 심오하면서도 시 자체는 어렵지않게 다가오고 자연의 모습을 생각나게하는 프레시한 시들이 많이 있어서 자연이 주는 다양한 풍경들에 대해 영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박이도 시인은 "나는 영감처럼 와닿는 언어보다, 때로 길가에서 주운 언어를 맞추어 보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시라는 숲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주는 시들이 많은데 시인의 말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간의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들, 이 책의 제목처럼 시에 대해 가벼운 걸음을 내딛게하는 시들이 많고 가벼운 걸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우리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시집에 소개되는 시들 중에 <시로 깃들다>, <어느 인생>, <그림자>라는 시들이 기억에 남는데 시적 에스피리에 담겨진 향기들이 계속 이 시들을 끌리게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어두운 시들보다는 밝고 희망적인 시들이 많은데 침묵,평화, 시간에 대한 내용들이 시리즈로 쓰여져있어 고독함이 느껴지면서도 그 고독함이 싫지않은 고독함이라 이 시들을 읽으면서 마음과 정신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중간중간 인간 근원에 다다르게하는 철학적인 시들도 이 시집에 실려있는데 처음엔 어려울 것 같아 괜히 겁먹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철학적인 의미들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어서 좋았다. 밝고 활기찬 시보다는 편안하고 고요함을 주는 시들이라 읽으면서 침묵이 주는 평온함, 자연의 사소한 풍경들부터 자연 속 근원의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다가와서 좋았다. 시인의 고요하고 은은한 내면이 담겨 세월이 주는 시간의 둘레를 천천히 가볍게 시를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가벼운 걸음으로 가다보면 내면의 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어 그의 시적 표상인 '생명사상'과 '자유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차분한 시, 자연의 시, 평화로운 시들에 대해 인간의 내면의 깊이에 대한 시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