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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기분이 즐거워진 '방심' 상태들이 있다. 물론 정신은 여전히 말짱하지만, 그럴 때 나는 얘기를 하고, 어느 때는 농담도 한다. 그러다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 상태에 빠진다. 눈물 흘리고 말 정도로. (p.39)
이 기록들 안에 들어 있는 놀라운 어떤 것은 황페화된 주체, 그러니까 또렷한 정신 상태 때문에 페허가 되어버린 주체다. (p.40)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 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 . (p47)
마망의 죽음을 견뎌내게 하는 무엇. 그것은 일종의 자유의 향유와 같은 것을 닮았다. (p.108)
애도의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지금 마망이 죽고 없는 지금, 나 또한 죽음으로 떠밀려간다 (그저 시간만이 나와 죽음 사이를 떼어놓고 있을 뿐). (p.140)
바르트의 슬픔은 애도와 멜랑콜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건 바르트의 슬픔이 애도와 멜랑콜리와는 다른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애도와 멜랑콜리는 서로 양립적이기는 해도 하나의 원칙에서 만난다. 그건 상실된 대상의 '대체'다. 애도는 다른 사랑의 대상으로, 멜랑콜리는 자기 자신으로, 상실된 사랑의 대상을 대체한다. (p.271)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의 슬픔을 남겨둔채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여한다는 그 슬픔과 어려움은 아직도 어렵다. 나에겐 아직 그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애도의 슬픔은 느껴본 적이 없지만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면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을까, 솔직히 1년이가도 2년이가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여기 무척이나 사랑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후 2년간 써내려간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상실의 슬픔이 담긴 <애도 일기>는 프랑스가 사랑한 현대 사상가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로 철학자 김진영씨가 옮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기들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짧은 문장들 사이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의 슬픔이 짖게 깔려있다. 2년동안이나 자신의 어머니, 마망을 생각하며 일기를 썼다니 대단하다는 마음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까지도 슬픔에 잠식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알지못한 아직 겪지 못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어떤 이에 대한 상실의 슬픔을 사실은 마음 속으로는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이 그런 나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있던 두려움을 끌어냈다. 사실 옮긴이 김진영 철학자의 '아침의 피아노'를 먼저 읽는 나로서는 이 작품과 '아침의 피아노'가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위한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던 무언가를 써내려간 기록. 그 사실이 나의 내면에 깊숙이 박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도 일기>의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에 대한 해설부분인데 바르트의 슬픔은 애도와 멜랑콜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을 읽으면서 아마 '애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상실의 슬픔의 깊이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에 실린 쪽지가 세상에 나온 건 사실 그가 죽은 후 30년이 지난 2009년이다. 현대 저작물 기록 보존소에 보관되어 있던 원고는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분리된 쪽지의 모습 그대로 생략되는 내용 없이 온전하게 편집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 상실의 슬픔에 대해 여전히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상실의 슬픔의 조그마한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르트의 지적 궤적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는데 그의 사상과 함께 살펴보면서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텍스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어머니의 슬픔을 통한 상실의 무언가를 알 수 있었던 글이었기 때문에 보고 또 보아도 생각날 것 같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