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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지금 나는 틀림없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존재해. ....., 이런 말을 하면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영혼' 같은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껴.
하지만 죽으면 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몸을 떠나 어딘가로 갈까. 아니면 ......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질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시간만이 내내 흘러간다. 그런 상상을 하면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P,110)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중에 치넨 미키토의 소설은 거의 다 읽어본 것 같다. 치넨 미키토 작가님은 소설을 빠르게 쓰신다는데 유명한 <가면병동> 역시 몇 시간만에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평소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 이번 치넨 미키토의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는 표지처럼 마냥 어둡운 분위기의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스피스 병원으로 실습을 간 의사 우스이 소마와 호화스러운 호스피스 병동의 가장 넓은 방에 머무르는 신비한 여인 ' 유카리'가 그 주인공이다. 유카리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글리오블라스토마에 걸린 환자로 즉 뇌종양 말기 환자로 우스이가 점점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느껴 그동안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돈의 망자처럼 살았던 지난 날들을 뒤로하고 유카리에게 다가가려하지만 그녀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한부 환자이기에 유카리는 우스이의 마음을 외면한다. 과연 우스이는 유카리의 마음을 얻고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총 2부로 나눌 수 있었을 것 같다. 유카리가 죽기 전과 유카리가 죽고 난 뒤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까지는 크게 이 책이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걸 못 느꼈다 단지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시한부인생인 여자와 어린 시절 상처를 갖고 있어 빚에 시달리며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로맨스라고만 느껴졌는데 유카리가 죽고 난 뒤 이 책의 비밀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드러난다. 머리속에 '폭탄'을 안고 산다는 시한부 유카리와 과거에 억메어 상처를 입은 우스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우스이의 어두운 과거를 유카리가 치유해주면서 우스이가 유카리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우스이의 과거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점차 알게 되면서 우스이는 돈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을 과거에서 구해준 유카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이 기억에 남는 장면 중 첫번째는 우스이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게되었던 장면이었는데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졌던 부분이라 사실 울컥하면서도 아버지의 기발함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는 우스이가 모든 진실을 알게되고 난 뒤 진짜 유가리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반전에 반전을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사실 진짜 유가리의 존재는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이 책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카리가 죽고 그녀를 죽인 배후를 찾아 복수하는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성적인 미스터리 로맨스였다니 치넨 미키토 작가는 정말 미스터리 소설을 탄탄하게 구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살아가는 이의 공포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게하면서도 그들이 삶에 대한 의지와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 책의 주인공 유카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삶의 의지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고 죽음에 가까운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 또한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지 삶 자체가 고통일 뿐인데 그럼에도 죽음을 인위적으로라도 막아내야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DNR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의 뜻은 심폐정지상태가 되었을 경우 소생술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환자의 의사표시를 뜻하는 말인데 이 소설에 DNR을 원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죽음으로 평안함을 얻을 수 있는 환자들을 위해 죽음을 일방적으로라도 막아야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스터리가 주는 장르적 재미도 좋았지만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이주는 두려우면서도 따스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치넨 미키토 작가를 좋아하고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 뿐만아니라 잔인하거나 어둡고 무거운 소설이 부담스러우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