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삼환 지음, 강석환 사진 / 마음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아내가 떠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 개인적으로 달갑지 않았다.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에 휩쓸리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아킬레스건은 측은지심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측은지심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피할 수는 없지만 죽음이나
아픔에 대한 글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일부러 찾아읽지 않는 장르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30년을 함께 한 옆 사람의 빈자리가 예고 없이 하루아침에 현실이 된다면 이후의 삶이 내내 공허함으로
가득할 것은 뻔하다.
첫 문장을 읽고 철렁했던 마음이 페이지를 넘어가며 안도로 바뀌었다.
어떤 환경에 놓여있든 영혼과 육체 모두 맵시가 있어야 한다는 연륜 있는 저자의 문장들에 공감하며
그의 연륜만큼이나 단단하고 유연하게 삶을 엮어가는 과정을 따라갔다.
아내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걷던 저자는 우연처럼 필연처럼 우즈베키스탄의 사막도시로 한국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떠나게 된다. 인생의 많은 순간들은 우연처럼 필연처럼 찾아오지만
우연처럼 지나갔던 일 하나하나가 다 추억이 된다는 저자의 문장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길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미리 갈 길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가고 싶어도 끝내 갈 수 없는
길이 있고, 가고 싶지 않아도 운명처럼 가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
인생을 한편의 그림으로 분류한다면 추상화가 될 테고, 글에 비유한다면 픽션에 가깝지 않을까.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삶에서 긴장이 좋을지 느긋함이 좋을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이정표가 있다면.... 하는 대목을 읽다가 내가 일상에서 종종 신호대기를 하다가, 자동세차를
끝내고 초록불이 켜지면 움직이라는 안내 문구를 볼 때마다 하곤 했던 허황된 상상을 하던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책은 저자의 우즈베키스탄 9개월의 봉사 기간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일상의 기록들이다.
우리나라처럼 그 나라에도 미래를 예측하는 미신 같은 풍습이 있다고 소개할 만큼 누구나 삶의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함은 생각해보면 인간의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희망이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막연하니 불안하지만 막연해서 희망을 갖기도 하니 말이다.
말이나 잘못된 정보들에 대해서도 저자는 떠도는 말을 잘못 잡으면 온몸에 화상을 입는다고 경고한다.
부유물이라는 말로 허황된 말에 대해 경각심을 주는 그의 제안은 그냥 흘러가게 놔두라는 것.
저절로 흐르다 소멸되는 말의 홍수 속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삶을 지향한다.
반면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끊임없이 숙고하는 삶을 제안하고 다짐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삶의 역할들이 변해간다. 아직 노년을 논할 나이로는 부족하지만 문득문득 삶의
뒤안길에 대한 고민과 걱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가 있다. 매 순간 열정만으로 삶을 마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잔잔하게 숙고하며 써 내려간 저자의 글에서 간혹 쓸쓸함이 배어 나오는 문장을 마주
할때 근간에 부쩍 노년의 우울감을 비치는 아빠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삶의 연륜을 품은 저자의 글에서 종종 아빠의 문장들이 교집합처럼 더해진다.
내 인생의 꽃길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것. 꽃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있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꽃길이고,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면 그것 또한 꽃길이고, 우리가 미처 인지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꽃은 주변에 있다는 것.
단지 일정량의 여유가 있어야 그 꽃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이왕이면 주어진 삶의 여정에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는 우즈베키스탄의 말
Bo'ld(볼드, 된다 )와 Bo'lad(볼라드, 가능하다 )는 말이 행동을 동반한다고 생각하는 내게
이 책에서 가장 와닿는 단어였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