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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1929년~1939년은 제2차 세계대전(1939.9.1~1945.9.2)이 일어나기 직전
뉴욕 증시 폭락을 시작으로 대공황, 나치즘이 부상하고 불안과 증오가 악순환을 이루며 파국으로 치닫던 시대이다. 저자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자료 등의 수집 이외에도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394권의 책을 읽고 자료조사를 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 절반은 사랑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위대한 몇몇 예술가들의 바람기와 복잡 미묘한 사랑 이야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근간을 이루기도 한다. 역사 속 위대한 이들도 사랑 앞에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𝒍𝒐𝒗𝒆이라는 단어는 '갈망한다'라는 의미의 산스크리스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사랑 때문에 불행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예술가들은 열광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얽히고설킨 현대사의 순간들을 그려낸 감정의 연대기를 읽다 보면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수두룩하고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과 '사랑'은 글자만큼이나 시대와 상관없이 너무나 닮아있어서 시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사랑 참 어렵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처음 만나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기의 사랑 중 하나로 꼽히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전통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계약 연애를 50년간 유지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랬던 보부아르는 사실 강연 일 주 여행에서 만난 미국의 소설가 넬슨 올그런과 깊은 사랑에 빠져 무려 17년간 서신을 교환했던 것이 <연애편지>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올그런의 편지는 아직 공개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지 못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올그런이 결별을 선언한 이후에도 서신교환은 10여 년이나 계속되었고, 보부아르는 타계 후 사르트르의 옆에 안장되었다.
이 외에도 책 속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서사가 아닌 에피소드처럼 등장한다. 역시 친숙한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낯선 인물이나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들에는 낯선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쏙 빠져 들어 읽을 수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직업이나 관심사에 따라 사랑에 대한 정의가 참 다양하고 기발하다.
예를 들면 상대성이론 창시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사랑에서 시간과 공간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가 아내에게
"글로 쓰는 것은 바보 같아, 일요일에 당신에게 키스하러 갈게."라고 전보를 친다.
아인슈타인에게 《 일요일 = 키스 ×시간² 》 이 셈이다. 이런 과학적 사랑 같으니라고.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위대한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연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위해구한 집에서 은밀하게 그림도 그리고, 은밀하게 사랑도 나누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으로 귀가하는 이중생활을 하다가 그때 그려진 그림들 때문에 비밀이 탄로 난다. 붓은 마법이 사라진 시대에 살아남아 마법 지팡이가 된 격이다. 그렇게 부인 올가 이외의 사랑에 빠진 피카소가 젊은 애인의 초상화를 그리며 사랑이 식어버린 부인 올가의 그림은 영혼을 그리는 모습 또한 위대한 거장의 모습 이외에 영원하지 않은 영원하지 않은 사랑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책 속에는 정말 많은 세기의 거장들의 사랑 그 민낯에 대해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공감되는 이들의 이야기, 증오와 몰락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불꽃같은 사랑의 파노라마를 담은 책. 역시 사랑은 시대를 넘어 흥미진진하고 참 징하다. 강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