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 보부아르와 넬슨 올그런의 사랑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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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 1997>는 보부아르가 1947년 강연 일주 여행으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만난 미국의 소설가 넬슨 올그런(1909-1981)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후 1964년까지 무려 17년간 지속된 보부아르의 304통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이다. (아쉽게도 올그런의 편지는 아직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지 못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올그런이 결별을 선언하고 그들의 사랑은 종지부를 찍게 되지만 이후 10여 년이나 서신교환은 계속 이어졌다.

보부아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체험하는 모든 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과 공유하기를 열정적으로 원했다. 올그런을 위해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편지를 쓰고,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하지 않는 연인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하는 보부아르는 세계적 문장가 혹은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랑스러운 여인 그 자체의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수없이 많은 애칭과 편지의 맺음말까지도 아쉬운 그녀의 사랑스러운 글 수다는 멀리 떨어진 애틋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서로를 알기를 갈망해요. 결코 끊어지지 않을 수백 개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낀답니다. (중략) 스테이크와 옥수수만 먹고도 아니, 빵과 감자, 사랑과 신선한 물만으로도 살 수 있으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요." 👨시몬드보부아르


"우리는 더 많은 걸 공유하고, 대다수의 결혼한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할 것이오. 우리가 만나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가 헤어질 때도 사랑 속에서이며, 우리는 함께 행복할 것이고 서로를 그리워할 것이오. "👨넬슨올그런


올그런에게 보내는 그녀의 편지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좀 더 사적이고 귀여운 장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미국 여자들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는데 8천만 명이나 되는 다양한 이들을 아는 바 하나 없이 어떻게 쓸 수 있겠나 투덜거리지만 이미 돈을 받아서 파란 벨벳바지와 빨간 구두를 사신고 뽐내며 걸어 다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써야 한다는 귀여운 투정은 내가 마치 올그런이 되어 킥킥 웃게 되는 장면이었다. 아~ 너무 사랑스러워♡

삶의 희로애락을 알만한 나이에 만나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거리감까지 더해진 이들에게 세월은 또 아쉬운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보부아르는 죽음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지만 올그런을 만나고 난 이후에는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죽고 병들고 늙거나 추해지거나 몸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졌다고도 말한다. 최선을 다해 생기 있고 건강하며,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연인이 선물한 빨간색 만년필이 아파서 간신히 사용하는 중이라 편지가 발가락으로 쓴 것 같은 인상이 들겠지만 세상의 무엇을 준다 해도 다른 것으로 쓰지 않을 거라는 고백. 사랑에 빠진 여인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회 운동가, 페미니즘의 선구자라는 타이틀 이전에 오직 사랑스러운 여인의 표본처럼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존재한다.

17년간 이어진 보부아르와 올그런의 사랑은 추억과 희망을 공유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따로 또 같이 채워갔고 이어진 오랜 시간만큼 두꺼운 기록이 책으로 남았다.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여행과 온갖 소일거리를 포기하고 친구들을 버리고 파리의 감미로운 생활을 떠날 수도 있다고 고백했던 보부아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일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던 그녀.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글로 남아 두고두고 세상에 회자되고 이어질 것이다. 가장 내밀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보니 그녀의 다른 책들을 아무래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전과는 분명 다른 시선이 되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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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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