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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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의 <암실 문고>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해 보았다. 암실 문고는 우리의 상식

이나 정의의 바깥, 우리가 아는 단어의 뜻 바깥의 마음들을 주로 탐구하는 시리즈라고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는 (b.1920-1977)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 내전을 피해 가족 모두가 브라질로 이주를 했고, 

이 작품은 1943년 무명작가였던 리스펙토르가 인세 대신 책 100부를 받는 조건으로

출간되었던 첫 장편소설이다.

그렇게 출간되었던 이 책이 이듬해 브라질 문학계를 뒤흔들며 그해 최고의 데뷔 작품

에 주어지는 그라샤 아랑냐상을 수상하며 문학계에서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리스펙토르의 첫 문장을 마주하기까지 이렇게 이 책의 소개는 기대감을 한층 고조 시키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간에 울려 퍼지는 타자기 소리와 함께 공간과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아버지와 딸의 대화가 이어진다. 처음 마주한 주아나라는 소녀가 통통 튀는 첫인상을

남기며 등장하는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어딘지 엉뚱하지만 무척 섬세한 그녀의 특징이 짧은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표현의 유창성이 도드라진다.

 

 


 

그렇게 기대감을 가득 안고 이 책의 전개를 따라가는 과정은 주아나의 시선과 문장으로 이어

지며 어느 순간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문장의 표현들이 기름진 음식

을 과하게 먹은 것처럼 해독되지 않고 엉켜가는 당황스러움을 주었던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봤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우리는 진정한 지구촌을 형성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 문화가 갖는 특징들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이 이 책 속 문장,

주아나의 시선에서 느껴진다.

 

 


 

이 책의 편집을 맡았던 편집자는 리스펙토르의 문장들이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하는 이유 또한 주아나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장

면이 입체적 퍼즐처럼 맞추어져 가는 과정에서 잠시도 딴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 만큼

과감하다. 픽셀과 픽셀이 모여 하나의 입체적인 덩어리를 만들듯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그렇게 하나의 스토리를 주아나의 성장과정처럼 부피를 키우듯 완성해간다.

 

불꽃같은 시선으로 포착하여 불꽃같은 문장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책의 말미로 갈수록

강렬해지는 느낌은 아마도 이 시리즈를 칭하는 암실 문고의 취지처럼 우리가 익숙한 기존의

시선이 아닌 언어이면의 것들에 집중하게 하는 감각을 건드리는 작용을 했다. 장면 묘사로

불쑥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가 문장들에 홀려 어느 순간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하는

리스펙토의 문장들은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기술이 있다.

설명할 수가 없다. 사물들이 정해진 형태와 경계를 갖고 있으며 모든 것들이 회고하고

바뀌지 않는 이름을 지닌 지역, 그녀는 그곳에서 천천히 벗어나고 있었다. (중략)

그녀는 살아온 시간이 다시 자기 안에서 쌓이고 있음을 느꼈다.

책 속 문장 中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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