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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ㅣ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21년 6월
평점 :

책이 나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읽으며 저자의 오랜 정성이 느껴졌다. 미술실기 책들은 다양하고 많지만
저자의 오랜 수업 과정의 기록들이 반영되어 책으로 접하면서도 여느 오프라인 강의보다 더 와닿았다.
자화상은 그저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왜 그토록 많은 예술 거장들이 자화상을
그렸을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작품들중 자화상.
작가는 나다움"에 대해서 질문하며 시작한다.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이 세상에 나를
말할 때 우린 완벽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려 애쓰는 이유를 건드린다.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마지막의 그리기 실기 파트의 분량보다 그림을 그리기까지의 여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백지 한 장을 마주하고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 이 과정이 미술심리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수업을 많이 오버랩시킨다.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일들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필터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이럴 때 또 한번 느낀다.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발췌한 글에 공감한다. 우리는 종종 나에게, 혹은 가까운 이들에게 보이는 진실
앞에서 당황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자화상을 그리는 것, 가까운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 것은
보이는 외형이 다가 아니다.
책 속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널리 알려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저자와 함께 자화상 그리기 과정의 수업에 참여했던 참여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림의 결과
물이 아닌 여정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술실기 책의 범주를 한참 뛰어넘는다.
책 속의 주홍빛 꼬마 책이 눈길을 끈다. 그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작은 수첩에 주변의 지인
들의 모습이나 일상의 소소한 스케치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리기에는 완전 꽝 손
인터라 이렇게 슥슥 그려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그림으로 그려진 결과물보다 이렇게 그리기까지의 관찰과 관심이 그림 속에 담긴다. 거울 속에 비친 실물
과 다르게 그림은 더 많은 스토리가 더해진다. 책 속의 다양한 그림 이야기 중에서 부부의 자화상이 인상
에 남는다. 수록된 예시 작품중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오랜 시간 함께
나이 들어가며 만들어진 모습에서 묘한 닮음이 느껴졌다. 본인의 자화상이나 지인을 그릴때 그림에
우리의 개인적인 포장이 더해져서 실물과 달라보인다니 공감이 간다.
자화상 그리기의 직행버스가 아닌, 자화상 그리기까지의 느린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한편의 에세이를
읽은 느낌처럼 진솔하게 여정을 제시한다.. 자화상은 그저 외면을 담는 그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까지 담겨야 한다는 것.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종종 감동하고 공감하는 그림들은 그림 속에
감정이 투영된 경우였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림의 완성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책의 말미에 자화상을 그렸던 참여자들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가 문득문득 스스로의 마음조차 생소하고 낯설게 다가올 때가 종종 있을 텐데,
단순히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을 하며 자신에 대해, 혹은 가까운 이들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되었던
타인들의 경험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와닿았다. 타인의 삶을 통해 비춰보는 나의 삶
미술 거장의 심오한 자화상을 보면서,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안의 연약함
조차도 자화상의 일부라는 걸 알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늘 일상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상을 그리듯 꼼꼼히 나를 살피는 일.
자화상은 그려진 결과물보다 그리기까지의 고찰이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