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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충분한 삶 - 일상을 불충분하게 만드는 요구와 욕구를 넘어
헤더 하브릴레스키 지음, 신혜연 옮김 / 샘터사 / 2021년 5월
평점 :

언젠가부터 우리는 긍정 마인드와 과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책들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다양한 책들에서 전해오는 동일한 뉘앙스의 글들을 접하다 보니 무감각해지고, 식상해지는
순간마저 늘어갔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 지금의 나 자신,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오해들과, 익숙하고 친근해서
잘 몰랐던 일상의 오류, 그리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통한 냉소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사이다 같은 장면들이 많았다.
작가는 지금의 우리를 디지털 잡동사니가 둘러싸고 있다고 표현한다. 많은 물건들을 들이고, 어느 순간
물건들에 둘러싸인 과한 소유는 정작 또 다른 소비를 불러오고, 이제는 심지어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통해 온라인 저장소마저 채워가는 삶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당장 내 컴퓨터와
휴대폰에 쌓인 데이터들이 떠올랐는데 물건과 마찬가지로 빼곡한 자료들도 혹시 모를 필요를 위해
과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운동"이라는 반향을 일으켰던 곤도 마리에 작가의 제안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오고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젠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나서 골치 아픈 시대라니.

과하게 쌓아나가고, 과하게 성취해가는 우리의 삶의 목표가 언젠가부터 끝도 없이 이어지는 데는
활발하게 소통하는 SNS의 몫도 커졌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취미조차 영웅적인 광휘를 발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경쟁적으로 빠른 속도로 경험들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흐름들에 무척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어느 순간 비슷한 피드들의 향연에 합류하지
않기 위한 삶을 지향한다.
작가의 말대로 지금은 자아도취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과한 기대치와 목표를 가지고 무의식적인 갈망 때문에 희미하고 종잡을 수 없는 목표에 주력함으로
영원히 뭔가에 홀리는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오다 보니 삶은 늘 결핍이 아니라 과한 목표와 욕심, 그리고 과한 성실함에서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과도한 정보는 그래서 때로는 독이 된다.
작가는 책에서 지금 당장의 순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직설적이고 사이다 같은 표현들을 책 속에 담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이미 중요한
존재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실은 서서히 펼쳐지는 불가사의임을,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선택과
너그러운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발견과, 사소한 대화, 그리고 즉흥적이고 엉망진창 일수 있는 순간들이 우리
행복의 중심을 이룬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이외에는 전부 마음을 산란하게 할 뿐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