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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미 현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평점 :

<어느 사진작가의 참전용사 기록 프로젝트>로 TV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봤던 작가의 스토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자신의 사비를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더하는 과히 작지 않은 일들에
정성을 쏟는 그의 행보는 그의 말처럼 우연하게 시작된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일이다.
무려 22개국 1,500여 명의 참전용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자국이 아닌 타국의 전쟁에 참여하고, 모진 고생을
경험했던 이들은 원망보다 자부심을 드러내는 또 한 번의 놀라움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칫 흘러가버릴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역사 속에
존재하게 해주는 일을 하는 이는 학창시절 선생님의 한마디를 마음에 담았고, 그 가르침대로 사진을
통해 현시대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실천 중이다.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실천 중인 그 제자는 바로 라미현 작가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인사를 건네는 그의 행보를 따라가며 살벌한 전쟁
터에서도 동료인 전우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나누었던 우정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를 넘어 인류애를
느끼게 한다. 글을 모르는 전우를 대신해 편지를 써주며 가족보다 더 끈끈한 연대를 이어갔던 마음 따
뜻한 이들의 이야기는 풍족하지만 삭막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참전국에 대한 원망보다 애정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평생의 자부심을 간직한 이들.
참전용사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신체적인 장애와 심각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지키는 힘은 자신의 힘으로 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이다.
이미 많은 참전용사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작고한 이들이 많고, 남은 이들도 고령으로 짧은 생애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떤 보상으로도 그들의 노고와 비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예우는 전달하는 기회가
더 늦기 전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졌던 이후, 참전국
용사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했던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왔던 일도 그중 하나로 기억된다.

벌써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전쟁의 상흔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힘든 후유증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고 있다, 엊그제 신문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참전용사들의 열악한 의료지원금의 현실을 접하고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복지가 선진국 수준으로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음지에서는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분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어느 시대나 소수의 희생으로 많은 이들이 편안함을 누리는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그들의
노고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전 세계 참전용사 분들과, 또 나라를 대신해 개인의 노고를 아끼지 않고 따뜻한 전달자가 되어주는
라미현 작가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직 세상은 이런 분들 덕분에 살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