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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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동화라는 문학 장르를 처음 시도했던 정채봉 작가의 20주기를 기념해 그간 출간되었던 4권의 산문중

에서 엮어낸 <첫 마음>이 출간된데 이어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유고집이 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개정 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연말과 연초에 마주하는 정채봉 작가의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글이 참 곱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산문집 첫 마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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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다가오는 1년보다 오늘의 하루를 잘 살고 싶은 그런 날🍏

첫 마음을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아니 매일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날들에 꾸준히 담고 가야지.

 

아기였을 때 어머니를 여읜 작가는 막연한 어머니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평생 마음 한편에 담고 살았

으리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시인의 그런 마음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길상사와도 인연이 깊은 작가에게 스님이 보낸 꽃눈 붙은 잔가지의 나뭇가지는 그의 화병에서 피어

"길상사가 진달래로 피어났습니다."라는 결이 고운 문장으로 피어났다.

이 시집에서 가장 먼저 와닿았던 짧은 시가 곧 다가올 봄에 피어나는 꽃을 볼 때마다 나에게도 피어날

것 같다. 구절구절 묻어나는 시인의 글은 짧은 시구에서 무척 묵직한 의미를 전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찮은 돌멩이였던 오해가 결국은 통로를 막아버리는 바위가 되어버린다는 것.

작가는 화가 난 기분에 대해서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혹은 어떤 느낌을 가진 사람인지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시를  통해 이야기한다.

벽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모레와 시멘트가 물과 버무려져야 하고, 날씨도 청명한 날만 있는 것이 아니

라 흐리고 눈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있다. 사랑에도 좋음과 시련이 눈물로 버무려지게 된다는 것.

벽돌 같은 사랑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도 그의 시에서  의미를 일깨운다.

백두산 천지에 오른 시인은 백두산이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말로 표현하며, 그렇게 태산 같은 산도

눈물샘을 안고 사는데 하물며 인간의 슬픔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행복의 열쇠는 금고를 여는 구멍과 맞지 않고, 마음을 여는 구멍과 맞아야 한다고.

정채봉 작가와 호형호제하는 정호승시인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가  써 내려간 시를 삶에 대한

통찰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염전에서 바닷물이 다 마르고 나면 만들어지는 소금의 분말을 염부들이

소금이 내린다는 말로 표현한다고 하는 유래를 들며, 정채봉 작가의 이 시들 또한 "시가 내렸다"라는 말로

그의 문장들을 기린다. 자신의 삶의 끝을 준비하며 가장 정제된 언어인 시로 담아내며 작가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남겨진 이들을 다독이는 문장들로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다르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삶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떤 삶인들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정채봉 (b.194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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