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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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2호 EPIIC
다양한 장르의 책들로 익숙한 다산에서 창간된 문학잡지


논픽션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픽션을 넘나들고, 관심 있는 작가들의 참여가 반가웠다.

인간의 탄생부터 인격의  형성 과정 자체가 계획과 철저한 분석으로 이루어지는 미래사회를 그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강하게 남았던 여운을 이번 호의 제호로 마주하니 더 궁금해졌다.
일단 판형과 구성은 너무 취향 저격이었고,  인트로 같은 그림 페이지들에 이미 솔깃해진다.

노란 햇살 닮은 기분 좋은 에픽의 첫인상.

 

​에픽 epiic 경계를 무너뜨리다"라는 이 잡지의 콘셉트의 수수께끼는 곧 이해가 되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장르의 다양화, 그리고 책 속의 책을 통해 한 권의 책은 어느새 더 많은 책 목록과

자료를 꼽게 만들었다.

 

이 고운 페이지는 바로 를리 외르 Relieur 예술제본가를 다룬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를리외르라고 하는

직업은 내가 오래전 도서관에서 어린이들과 활동했던 그림책이었어서 더 반가웠다.

우연과 필연이 이어지는 인연에서 시작된 작업이 여전히 이어지며 발전하고 있는 소식에도 반가웠다.

백순덕 선생의 예술 제본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 신청해 두었다.

 

첨단의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손맛 가득한 코덱스 형태의 책은 절대로 소멸하지 않을 거란 강한 믿음이

남았다.

 

문지혁작가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참 여러 가지 맛을 담았다. 다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개된 세 편의 논픽션, 실제로 구술작가의 글로 전하는 여성 노숙인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나이 지긋한 구술작가의 눈에 비친 노숙인의 삶을 따라가는 그녀의 시선은 노숙인의 삶 자체보다 노련

한 그녀의 밀당이 돋보였다. 사람을 대하는 법 혹은 자세는 상대방의 경계마저 녹아내리게 한다.

그리고 덕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가 정명섭이 말하는 덕후의 세계.

오타쿠라는 말로도 표현하는 덕후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이 무척 적극적인 형태를 말한다.

스스로의 인생과 경력에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감내할 수 있는 대상.

일명 덕질은 삶의 원동력이자 유희의 대상이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덕질의 경험

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의사 남궁인이 전하는 응급실의 24시를 통한 다양한 인생 이야기.

세상은 정말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는 고된 작업들을 묵묵히 오늘도 이어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지치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파트 2 에세이 코너의 virtual 에세이 김대주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근간에 읽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강의에서 소개된 꿈에 대한 해석에서 현실이 꿈에 개입하는 경우의 이야기가 그래도 재현되어서 반갑

게 읽었다. 요즘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를 읽고 온통 현실에서 대입되는 장면들을 통해 간접임

상의 생활화를 하고 있다. (너무 몰입 중인 부작용 ㅋ)


그리고 책 VS 책 이야기로 두 권의 책을 비교하는 리뷰 형식의 책 소개도 새롭다. 늘 리뷰어로 책이야기

를 생활화하고 있는 내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런 리뷰 도전해 보고 싶다.

소개된 책들 중엔 내가 읽었던 책들과 새로운 책들이 고루 담겼다. 역시 읽은 책 이야기는 반갑고,

새로운 책들은 또 궁금증을 유발한다. 책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은 역시 무궁무진하다.

 

삶의 논픽션들을 읽으며 잠깐 가라앉은 마음을 세 번째 파트에 수록된 5편의 픽션들로 다독인다.

5인 5색의 짤막한 소설들이지만 픽션 또한 현실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삶 또한 픽션인지 논펵션인지 종종 헷갈리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황정은 작가의 <기담奇談>은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말한다. 이 작품을 읽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시린 건가. 그냥 이름만 부르는 장면인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말의 뉘앙스에서 종종 느껴지는

온도 차이는 언어로서만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다. 무심함과 세심함 사이. 현실과 가상 사이

집이 주는 의미들에 대해 생각한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에픽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과 장르들. 정말 반해버렸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무엇보다 더 기대가 되는 건 에픽의 열린 창구이다. 앞으로 또 어떤 작가들의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벌써 기대가 가득하다. 한 권의 문예지에서 마치 가득한 플랩들을 펼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군더더기 없이 문학 장르의 고른 경험을 하는 재미에 뭔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러 감상의 폭을 경험했

다. 에픽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마치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동시대 작가들의 그룹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에픽 EPIIC3호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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