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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로 살 뿐 2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ㅣ 다만 나로 살 뿐 2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평점 :

세계 일주 1호 스님 <원제 스님의 5대륙 45개국 세계 만행기> 1권을 읽을 때 내 스스로의 선입견에
화들짝 놀라며 선을 그었던 마음은 2권을 마주하며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원제 스님은 스스로를 점검
하기 위해 떠난 여정이었다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삶을 자연스러운 인연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스님의 글이 문득 이제서야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아마도 내가 그은 선의 테두리 안에서 색안경을 끼고 봤던 이유 때문이겠다.
온전히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여행은 바로 수행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수행은 고요한 산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타인들과의 만남에서 깨달음과
발견이 수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여행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의도치 않은 오류와 변화 덕분이 지 알고 있는 사실의 재확인 때문이
아니며, 객관적인 사실을 완전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은 여행자로서의 오만이라고
하는 생각에 너무 공감했다.
스님의 여행기에서는 안목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자기 삶
의 뚜렷한 중심이나 안목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매가 되듯 삶의
경험들이 수천수만이라도 자기만의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멋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인물과 풍경이 달라 보이듯,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사람의 색다른 모습이 드러날
수도 세상의 다른 의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깨우침에 대한 공감.
스님의 여정에서 행선지는 단지 다양한 사람들과 세상을 만나는 하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사건을 대하는 관점과 안목은 순전히 본인의 책임임을 여러 상황들에서 일깨우는데 성인이 되면
안목에 따른 삶의 모습이나 결과도 당연히 스스로의 몫임을 인정해야 한다. 때로는 안목이 아닌
집착이 스스로의 감옥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종종 우리가 범하는 일상의 오류이기도 하다.
스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이번 책에서는 박장대소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세계여행이라고 하면
치안에 대한 우려가 늘 뒤따르게 마련이다. 스님의 여행 또한 그 치안과 관련된 소소한 사건들이 에피
소드로 담겼는데 동네 꼬맹이들의 위협에 혼비 백반 하여 달아난 사건이나, 소매치기를 당했던 상황들.
나도 유럽여행 중에 뒤따라오며 내 가방의 지퍼를 여는 소매치기들에 당황해서 이들을 쫓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스님의 에피소드에 내 경험이 더해져 웃음이 났다.
그런데 참 궁금한 점은 소매치기라고 하면 필사적인 수단을 동원할 것 같은 예상을 깨고 이들은
지퍼를 열어서 지갑을 꺼내려는 수법을 쓴다는 게 사실 좀 어설퍼서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스님의 여행기를 따라 나 또한 여행 아닌 여행을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
인간의 삶이란 정 반대로 보이는 축복과 족쇄를 묘하게 조합하는 연속이라는 것. 마냥 즐겁게 취할 수도
고통스럽다고 버릴 수도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한다. 매사의 인연에 순조롭게 응하며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 앞에서 사람은 종종 과거와 기억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
기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의 행복과 만족이 지금 눈앞에서 재현되기를 원하는 삶 또한
집착이자 욕망이라고 스님은 이야기한다.
정중동 동중정 靜中動 動中靜
"고요함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
수도자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때로는 갈등하고, 어설픈 속임수에 속기도 하고,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실수와 내적 갈등과 장난스러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스님의 여행기는 진정한 수도의
과정을 보여준다. 어떤 상황을 변화시키는 큰 개혁을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혁명이란
바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바뀌는 것, 내가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이
모두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과정이 스님의 여행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세계여행을 계획한 스님의 이야기에서 세계 일주의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꼭 봐야 하고 경험
해 봐야 하는 인상적인 곳들을 꼽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일상에서 내가 꼽고 싶은
블랙홀에 대해 생각했다. 삶을 돌이켜 볼 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어떤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물리적인 이익이 아니라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이라면 분명 무익의 순간이 아닌 내 삶의
비타민 같은 에너지를 내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 삶의 일정 부분은 무익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에 할애하고 싶다.
스님의 여행기는 이미 꽤 오래된 10여 년 전 여행의 기록이다. 스님의 세계여행의 경험들과 그간의 시간
들이 더해진 기록으로 함께했던 원제 스님의 세계 일주에 동행하며 얻은 결론은 중요한 일일수록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것. 막연하고 먼 것을 추구하느라 눈앞의 소중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적당히라는 말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토닥임처럼 마음에
남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