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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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은 가시 돋친 생명체다. 밖으로 내보내기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댓글 창은 여론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떠들썩한 광장이라는 댓글시인 제페토의 시詩와 성립의

표지 그림이 더해졌다. 익명의 뉴스 댓글로만 10년째 활동하는 제페토 시인의 2015년부터 2020년까지의

글이 담겼다. 휘리릭 넘겨보다 안간힘°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콕 박혔다.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별일! 없는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력을 다하는 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렇게 버티어 내는 이들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는다.

어릴 때 매일매일 이어지는 뉴스를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끊이지 않고 뉴스가

이어지는지.... 평안은 뉴스가 되지 않고, 별일 없는 날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올해는 일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낯설고도 어려운 단어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시인의 글은 별일들에 대한 댓글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일상을 담은 한 줄의 글, 그리고 포토뉴스 등의 글들과도 함께 어우러진다.

얼마 전 밀린 신문을 읽다가 빵 터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아이가 신문을 읽다가 빨간 볼펜으로 신문의

기사에 대한 몇 가지 코멘트를 달아놓은 것이었는데 마냥 아이 같은 그녀가 새삼 참 많이 컸구나를 느낀

순간이다. 올해 스무 살을 맞은 그녀의 눈에도 어이없는 어른들의 세계가 분명 있겠구나를 생각했다.

어른은 나이로 되는 것이 아니다를 종종 실감한다. 오죽하면 '철없는 어른'이라는 모순적인 어휘가

생겼겠는가.

많은 이들의 덕분에.

그나마도 위태로운 올 한 해를 엉거주춤 넘어가고 있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힘든 일들을 묵묵히 이어가는

고마운 이들을 떠올린다. 어렵고 힘든 일들을 감당하는 이들이 그만큼의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는 세상

이 되면 좋겠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남보다는 나, 우리보다는 내 가족들만의 안위를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이렇게 또 덕분에 나 아닌 우리를 돌아본다.

요즘 SNS를 타고 종종 등장하는 챌린지. 잠깐의 이슈가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변화가 조금씩이라도

이어지는 날들이면 좋겠다.

매일매일 하루의 시작을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운전 중 신호대기를 하는 순간마다 엉뚱한 상상을

종종 하게 된다.  일기예보처럼 가까운 미래의 일들을 알려주고,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나 멈춰야 하는

순간을 알려주는 일들이 가능하다면 참 좋겠다는 어이없는 상상.

예측불가한 인생이라 더 의미가 있다지만, 너무 예측불가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날들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또

삶이라는 아이러니.

문득,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지난날들의 신문기사와 포토뉴스에 표기된 날짜.

요즘 10년 다이어리를 쓰는 나는 해마다 10년간의 오늘을 동시에 소환하는 일상을 보낼 예정이라

과거의 오늘이 될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보낼 수가 없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듯,

그렇게 소소한 오늘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엊그제 100년 만에 가을비로 최고치가 내렸다는데

이제 곧 눈이 쌓이는 겨울이 코앞이다. 옷장도, 마음의 월동준비도 해야 하는 시기.

 

문학으로서의 시가 이렇게 일상과 가까이 닿아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삶이 담긴 소통의 언어로

소개된 제페토 시인의 시詩, 댓글이라는 얼굴 없는 글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지금도 누군가는

키보드가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안 그래도 팍팍한 일상에 이왕이면 따뜻한 온기를 품은 언어로 소통하길 기대해본다.

제페토 시인의 또 다른 책, <그 쇳물 쓰지 마라>를 통해 다시 지난날들의 기억을 소환해보기로 했다.

그때보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나아진 날들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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