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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유난히 힘겨웠던 2020년의 나날들,
매일매일이 예측불가였고 일상이 멈추었고, 그 와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
들었다. 유례없는 긴긴 장마를 지나왔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멈춤의 시간들 속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화창하고 높아진 하늘이 그나마도 일상의 활력을 찾게 한다.
그 와중에 반가운 류시화 시인이 전하는 마음 챙김과 삶의 무늬를 담은 시詩의 언어들이 담긴 한 권의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시 모음집을 앤솔러지 anthlogy라고 하는데 그리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꽃 모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음 챙김이라는 타이틀로 담겨있는 한편 한 편의 시를 읽으며 각양각색의 꽃을 마주하는 기분.
정제된 언어로 간결하게 와닿는 문장들이 주는 울림은 오히려 더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어렵고 난해한 글이 아닌,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에게 차 한 잔 같은 위로를 전한다.
기쁨과 슬픔
그 어느 하나라도 거부한다면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둘 다에게 "네"라고 말해야 한다.
주디브라운의 <네>라는 시의 한 구절을 시인은 인용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만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그 이외의 시간을 마주하는 어려운 순간마저도 감당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시기에 미국의 한 전직 교사가 SNS를 통해 나누었
던 한편의 시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끝이 안 보이는 지금을 살고 있지만 이 시에서는 희망의 미래를 노래한다.
한편의 시는 종종 한편의 노래처럼 와닿는다.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며 읽어내는 문장에서 희망의
에너지를 마음속에 충전한다.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날들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과 비를 위해 건배
변화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으로 돌아오는 것들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를 위해 건배
(중략)
낮뿐 아니라 밤을 위해서도 건배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파블로 네루다>의 시중 몇 구절을 주문처럼 마음속으로 공감하며 되뇐다.
종종 일상을 살다 보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앞으로 앞으로 만 나아가는 관성이 생긴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고, 다시 또 속도 내기를 반복하는 어른 사람들의 삶.
멈춰있는 시간 동안에도 마음은 종종 저 멀리 앞서나가기 일쑤인 날들이라 이 글귀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속도에 취해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날들을 반성한다.
한편한편 마음에 와닿는 시들에 스티커를 붙이며 읽다 보니 어느새 빼곡하게 테이핑을 하고 있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 가로 평가된다는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이 가을에는
마음 챙김의 시들을 통해 짧은 계절 가을의 시간들을 느리게 경험하고 싶다.
시詩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묻는다.
"마음 챙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 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류시화 시인이 전하는 마음 챙김의 시들은 차갑게 온기를 잃은 마음에 따뜻한 온기와 바람을 불어넣었다.
손 닿는 언저리 곁에 두고 수시로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한 권의 시집
마음 챙김의 시. 애정 하는 이들과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의 언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