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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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면에 소개되었던 은희경 작가의 단편 6작품이 담겼다. 은희경 소설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는 그녀의 문장들. 이 책의 타이틀인<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첫 번째 수록 작품의

강렬하고 흡인력 있는 타이틀 제목은 릴케의 문장에서 인용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두이노의 비가 中)

잡힐듯 잡히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추구.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을 차용하여 주인공의 심리적인 상태와 자신의 상황들을 연결

한다. 다이어트야말로 동물로서의 자연선택을 버리고, 문명적 선택 관계로 접어든 현생인류의 새로운

존재 증명 방식이라고 하는 문장처럼 불편한 아버지와의 관계와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의 과정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필사적인 집착처럼 애처롭다.

극한의 다이어트처럼 보이는 변화의 노력들을 통해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고지가 보일 즈음

주인공의 공허함을 더할 상황이 펼쳐진다.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은 뒤로 갈수록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에둘러 생각의 꼬리를 자꾸만 이어간다.

인생의 길 찾기라는 책 속 어휘가 이 책을 읽어나가는 느낌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타인,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인간은 종종 방황하고,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적응과 진화를 해나간다.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또 서로 달라야만 존중을

받는다고 번복한다.

 

<지도 중독>을 읽으며 종종 일상에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떠올랐다.

자동세차를 하거나 운전 중에 신호대기를 하면 어느 순간 신호가 차의 출발과 정지를 신호로 알려온다.

간혹 우리의 삶도 그런 신호등처럼 출발과 대기, 정지의 순간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하며 혼자 웃곤 했는데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의 순간들에 대한 갑갑함이 만든 공상이었겠지.

책의 말미에는 신형철 평론가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은희경 작가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각각의 작품들을 읽으며 끝으로 갈수록 어떤 주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보다 오히려 궁금증이 증폭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다. 각각의 스토리의 제목들을 이어가면 하나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드러난다. 저자의 마지막 엔딩문장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반짝반짝하게 닦아나가고 싶은 욕심을 갖는다. 그런 마음과 달리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여러 가지 일들로 휘청이고, 때로는 맑은 하늘같은 경험도 하고, 더불어 사는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처절한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위치를, 현재의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도의 좌표처럼 명쾌한 해답을 갈구하고, 저 멀리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처럼 허황된 꿈들을 쫓기도 한다.

막연한 동경과 추종에서 벗어나 때로는 이성의 잣대로 냉철하게 분석력을 꺼내들기도 하는 인생.

 

그런 복잡다난한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인생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결국 작가는 소설이라는 픽션의 장치들을 통해 조금은 만만하게 삶을 들여다보자고 에둘러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몇 년 전 저자의 다른 장편 작품을 읽으며 명쾌하고 맛있는 문장들에 반했었다.

이 책도 오랜만에 그런 느낌의 소환을 기대하며 읽었다가 단편 단편 질문들이 더해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 묵직하게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주는 희망이라는 빛을

찾아 끊임없이 나가게 되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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