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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우리는 매일 살지만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지도 모른다."
영혼의 집짓기라는 책의 제목을 봤을때는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제를 보면
퍼니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저자는 자전적인 에세이를 통해 누구나 생의 마지막에 거쳐가야 하는 죽음에 대한 숙고를 좀더 행동으
로 마주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소 엉뚱 할 수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관을 직접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과정에서 목공기술자였던 목공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 과정은 작가에게 관을 만드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의미있는
시간을 갖을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작가본인의 이야기를 하며 개인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을 읽다보니 반갑게도 우리나라 제품의
휴대폰이 등장한다. 종종 외국작가의 글에서 우리나라와 연관된 이야기를 다룬 글들은 반갑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뿌듯해 지는 대목이다. 어쨌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커져 아버지와의 시간도 더욱 절박하
고 소중하게 여겼던 작가는 그 일련의 과정을 기록으로 덤덤하고, 세심하게 기록해 나간다.
숙련된 목공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기술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지식전달이 되게 하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 그리고 부모의 양육방식에 대한것까지 광범위한 주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관이 완성되어 가는 기간동안 가장 애정하는 세사람을 암으로 잃게 된다.
"내가 젊다고 생각한 존은 나에게 인간의 취약성이라는 우울한 수심을 남겨준 반면,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 많으 축에 속하는 아버지는 희망적이고 대조적인 감정을 심어 주셨다.
여든넷의 나이에도 건강이 양호한 아버지는 이 축복을 하루를도 낭비하지 않고 삶을 사는 것
으로써 되갚았다."
가장 측근의 죽음을 묵도하며 자신의 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소소한 과정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된다.
연로하신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들계획을 세우는 저자의 계획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묘사된 저자의 아버지는 죽는 다는 것을 두려워하지않고 오히려 더 젊은 저자보다
담담히 삶의 순간들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연로해져가는 부모님이 있는 나도 종종 어른들
앞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난처하다고 피해 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오히려 부모님이 먼저 상황들에 대한 언급을 하면 여전히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됐다.
요즘은 미리 자신이 살아있을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접하곤 하는데 우울하고
암울한 죽음이 아니라, 준비된 작별의 과정으로 갑작스러운 이별이 줄 수 있는 상황과는 다른 차원의
과정으로 의미가 있을것 같다.

저자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준비와 실천을 담은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던 과정에 대한
기록의 정식 출간본으로 아버지가 이 책을 직접 읽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과정과 상황들에 대한 오랜
기록들에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심경이 담담하고 진솔하게 담겨있다. 아버지라고 하면 어깨에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진 사람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저자의 롤모델이자 영웅으로서의, 삶과 마주하
는 순간들의 태도 등 아버지와 아들 서로에게 이보다 더 의미있고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