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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책에 대한 아무정보없이 받아본 미공개도서로 마주한 이 책의 첫인상은....꼴랑 서른셋.
삶의 나이에서 서른이라는 고비가 주는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꽤 많은 나이라고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순식간에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렇게 높아만 보이던 서른의 고비는
고작 인생의 맛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라고 해야할까?
어쨌튼, 청춘들의 고군분투기쯤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애들은 방황하는 거지 고집부리는게 아닙니다. 고집은 손에 쥔걸 놓기 싫어하는 거구요. 방황은 길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이 길이 아니구나 싶으면 다른 길로도 가본다구요. 그런데 머리 크면 달라지죠.
남이 하는 소리가 개뿔 먹히질 않아. 고집만 세어가지고."
"애들은 이거다 싶은건 받아들여요."
책속 등장인물들간의 대화에 괜히 뜨끔해진다. 착한아이컴플렉스.
돌이켜보면 나도 그렇게 정해진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학창시절을 보내왔다. 오히려 내 스스로의
기준점이라는 틀에 갇혀 더 많은 경험들을 해 보지 못한 날들에 대한 후회가 남을 뿐이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조금 서툴어도,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젊은 날의 경험치가 많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역시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은 시간 그자체이자, 시간을 태우며 타오르는 불꽃이라는말.
같은자리 아파본 사람끼리 서로 통한다는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는 경험치가 주는 삶의 지혜일것이다.
사람사이의 관계는 별것아닌 일들이 서로에게 가시처럼 박히기도 하고, 어떤 틈은 희미한 실금부터
벌어지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만으로도 틀어진다는 대목들은 격하게 공감이
가는 바이다. 지나고보니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애써 외면했던 작은 서운함들은 결국 더 큰
상처와 거리감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는 점을 알게됐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남보다 더 멀어질 수도 있는것이 가족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수첩속에 마지막 유언처럼 남겨놓은 이름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나며, 사람과의
인연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묘해서 많은 관계들을 만들어 낸다.
인생자체가 마치 여행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정에서 누군가와는 절친이 되고, 또 누군가와는 잠깐
스쳤다가 영원히 이별을 하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장 끈끈한 관계에서 미처 나누지 못했던 정을 뒤늦게 꺠닫기도 하고, 삶의 고비가
때로는 또다른 전환점이 되어 준다는 사실도 삶이 결코 단순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마냥 지속될 것만 같았던 삶이 눈깜짝할 사이 과거형으로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도 할것이다. 낡고 묵직한 압력밥솥은 마치 과묵한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하나의 코드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꾸려가야 한다. 사람인(人)이라는 한자가 서로가 기대어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듯, 주변의 사람들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읽는 내내 마음속 온기를
충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소설의 안팎에서 또 만나자는 저자의 말마저도 정겹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비타민 같았던 한편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