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마당에 가면 나는 늘 니키드생팔의 <검은나나>가 환영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이 공간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던 작품이 지금은 비록 전시공간에서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어쨌튼, 나 혼자만의 니키드생팔을 소환해 본다.
니키드생팔"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너무 반가웠던 책을 받고 요코마즈다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요코마즈다라고 하는 한 개인 컬렉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요코마즈다의 며느리
이기도 하다.

반가웠던 니키드생팔은 잠시 잊고 요코마즈다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돌아보면 우리가 가족이나 내가 아닌 다른사람에게 열광하고 공감하는 경우가 어느순간인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 개인이 20세기 누보레알리즘을 대표하는 저 멀고도 먼 나라의 프랑스
예술가에게 열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이 책의 상당부분에서는 요코 마즈다를 소개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니키드생팔>
요코마즈다가 니키드생팔의 첫 작품으로 마주한 것이 바로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작품이다.
그녀는 그 순간을 머리위에서 UFO 광선이 내려와 둘러싸인것 같은 느낌이었고,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어린시절 개인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응어리가 갑자기 해방되고 에너지가
가득차는 것 같은 느낌으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예술작품이나, 사람, 혹은 그 외의 것들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미술관에서 늘 작품해설을 하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더 공감이 갈수 밖에 없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내게도 똑같은 감흥이 일어날 수 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그녀는 니키에게 감동받은 많은 순간을 고백했고, 마침내 그 둘은 작가와 컬렉터로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무려 500여통이 넘을 만큼 오랜세월 두 사람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요코마즈다는 집안의 사업을 계승하여 운영하는
사업가로서의 인생을 살다가 우연한 계기가 되어 운명처럼
만난 니키다 생팔의 작품을 만난 이후 일본에 니키다생팔의 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은 니키다생팔마저 감동한 공간으로 많은 화제가 되기
도 한다. <붓다>라는 작품은 니키가 일본을 방문하고 요코의 미술관에 감동을 받아서 오마주로 만든 작품이다.
니키드생팔은 어린시절에 응어리졌던 마음을 사격회화라는 장르로 풀어내며 예술가로서의 서막을 올렸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고조되던 여성해방운동을 선도하듯 자시의 대표작인 <나나>시리즈를 비롯해
유머러스하고 선명한색채, 과장되게 통통한 몸매를 통해 여성의 육체가 지닌 아름다움과 더불어 힘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전혀 다른 지구반대편에서 태어난 두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 책에서는
니키드생팔이라는 예술가 개인의
작품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통해 교감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안타깝게도 요코마즈다가 온 열정을 다해 세운 니키드생팔 미술관은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술에 전당에서 요코마즈다의 컬렉션만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꽤 많은 분량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던 이 책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어딘지 마음 한켠이 참 찡했다.
근간에는 다양한 방면으로 페니미즘 운동이 활성화되어가는 시대이기도 하다. 한 예술가와 컬렉터의 이야기
안에 담겨있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오랜시간 교감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두 사람이 다음생에는 자매로 태어나서 아쉬움이 없는 날들이 이어
지길 바래본다. 조만간 그녀들의 추억의 작품을 만나보러 전시장 나들이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