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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양이 - 닿을 듯 말 듯 무심한 듯 다정한 너에게
백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3월
평점 :

살금 살금 다가와 지친 삶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길냥이 나무
가족이라서 참 고마운 반려묘와 1000일의 교감일지
「아무래도, 고양이」
누구라도 이름 아는 길냥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물론 나도 소개받아 아는 길냥이가 있다.
동네 초딩들이 지어준 단순한 이름 '삼색이'
고양이를 보지 못지고 이름만 들었을 때, 설마 세 가지 색이 섞여 있어서 삼색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작명 센스 하고는.;;
거기에 비하면 이 책의 주인공인 '나무'는 제법 그럴듯하고 어여쁜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삼색이라서 삼색이라고 부르는 건, 예전 할머님들이 모든 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만의 특색이 없는 너무 흔하고 대중적인 이름처럼 여겨졌다.
또다시 삼색을 지닌 고양이가 나타나면 어쩌려고?
내가 아는 길고양이 '삼색이'는 우리 둘째 아들이 소개해 준 길냥이다.
작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우리 동네의 아파트 세 곳에서 출몰하는 길냥이 삼색이는 놀라울 만큼 사람을 잘 따른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고양이 밥을 주고 이뻐해서 그런지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길을 가다가 '야옹~'하고 사람을 부르는 녀석들이 몇 있는데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다가가서 안녕하고 인사를 하면 스스럼없이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빈다.
주머니에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다 보니 그럴 때마다 그저 한두 번 쓰다듬어 줄 뿐, 고픈 배를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고는 했다.
어떤 날은 편의점 앞에 앉아 사람이 편의점에 오면 '야옹~'하며 울기도 한다.
그러니까 '밥 좀 사 와', '배고파'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실제로 아이들이 편의점에 들러 고양이 캔을 사다 주는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더더욱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처음엔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들이 신기했다가, 그다음엔 그 아이들을 챙겨주는 수많은 손길들에 감사했다가, 나중엔 혹시라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마저 들었다.
작년에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삼색이는 새끼를 낳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바빴다.
동네 아이들은 쫓아다니며 밥을 주고, 쫓아다니며 새끼 고양이를 구경하느라 난리였다.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고은 마음은 되려 고양이에게 플러스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지난겨울에는 길가에, 아파트에, 고양이 집도 생겼다.
작은아이 말로는 누군가가 지어준 삼색이 집이라고 했다. 문패가 있단다.
삼색이는 집이 세 채라고, 건물주라고 웃으며 말하는 아이를 보고,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지난 겨울 내내 삼색이의 겨우살이를 걱정하던 작은 아이를 보면서도, 우리 집에 함께 살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집뿐 아니라 몰려다니며 밥을 주던 아이들 모두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허락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만성비염 환자가 넷이나 사는 집에 털 달린 짐승은 절대 함께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거기다 남편과 나는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깊고 어려운 일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애정과 시간과 마음을 듬뿍 나눴던 존재와 이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또한 너무 커서 더더욱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놓고, 지난겨울, 삼색이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었다.
이미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종종 오며 가며 마주쳤던 녀석과 정이 들어 버린 모양이다.
책을 읽다가 삼색이의 안부가 너무 궁금해서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한참 보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두 달을 집에 틀어박혀있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한참 못 본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소식을 듣지 못했냐고 하니, 아마도 여행을 떠난 것 같단다.
삼색이는 종종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며,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굳은 믿음을 내비치는 아이를 보며, 혹시라도 사고를 당한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애써 감추었다.
차라리 이 책의 저자처럼 좋은 집사를 만나 길냥이에서 집냥이가 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자 간절히 바라게 된다.
길 가다 마주치면 꼭 '야옹'하고 인사를 건네던 녀석.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삼색아, 잘지내고 있지?

어릴 적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했었다.
밤에 보는 고양이 눈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게다가 어디선가 훅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고, 심지어 친근함 따위는 1도 없는 까칠함을 지닌 녀석에게 애정이 생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반대로 강아지는 늘 발랄하고 다정한데다 사람을 잘 따라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고양이가 점점 더 좋아진다.
똥꼬발랄한 강아지의 애정표현을 받는 일이 이제는 힘이 든다.
다른 집에 방문했을 때도 떠들썩한 강아지의 인사보다 조용하고 거리감 있는 고양이의 인사가 더 편하다.
멀리 떨어져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것만 같지만, 어느 순간 무심히 다가와 몸을 한번 슥 비비고 지나가는 고양이의 시크함이 딱 좋다.
어느새 호들갑보다는 조용한 온기를 더 원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생겨난 관심은, 책으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양이'책에 열광하는 독자가 되어있었다.
누군가의 고양이와 친밀해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그저 책과 인터넷으로 욕구 충족 중이라고 나 할까.

대부분의 고양이 책들이 글만큼이나 많은 사진을 담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은 글이 더 많다.
고양이와 공생하는 삶에 관해 담백하고도 진솔하게 적어나간 글들이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 동네 스타 고양이 '삼색이'처럼, 일산의 어느 아파트에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스타 길냥이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길냥이의 삶은 결코 녹녹하지 못했다.
밥을 챙겨주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었고,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고운 마음들이 있었지만, 첫 겨울이 걱정이었다고 한다.
관심은 애정이 되고, 애정이 깊어져 결국 가족이 되어버린 어느 집사의 이야기.
초보 집사에서 시간이 흘러 그저 가족이 되어, 서로의 삶을 맞대고 의지하며 위로받고 위로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양이에게서 자유로움을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함, 제대로 된 집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재력을 위해 고양이를 홀로 두어야 하는 안쓰러움, 한 생명을 책임지는 데에서 오는 수많은 뒤치다꺼리들, 언제가 될지 모를 이별에 대한 두려움.
반려동물을 키우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을 그 고민과 걱정들이 책 속에 담겨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들이 전부는 아니다.
고양이에게서 받는 온기와 위로.
고양이를 키움으로서 배우게 되는 삶의 새로운 시선들.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어서 알게 된 새로운 세상.
서로의 생을 맞대고 있는 존재들만 알 수 있는 온도와 다정함.
저자는 고양이와 함께한 순간들에서 찾아낸 빛나는 조각들을 우리에게도 펼쳐 보여준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와 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의 공간과 시간과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내일로 함께 걸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공존보다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대화도 되지 않고, 종이 달라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기어코 가족으로 서로의 삶을 기대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길냥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그토록 어렵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라는 마음마저 든다.
물론 모든 일에는 고난과 역경이 뒤따르겠지만, 낯선 존재와 가족이 되는 일이 결코 하늘의 별을 따는 일처럼 불가능의 영역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가족이 된 나무와 나무 누나.
인간이 고양이를 구원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고양이가 우리를 구원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가닿는다.
여전히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강함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있다.
괜한 화풀이를 해대고, 이유 없이 괴롭히기도 한다.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목숨에 발길질을 해대는 나쁜 사람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마음속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소중해서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 남의 고양이를 해할 수 없을 테니까.
세상이 조금만 더 다정해졌으면.
나 또한 지금보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집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어쩐지 뭉클했다.
무엇도 견디게 해주는 고양이라는 존재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으니까 말이다.
고양이가 없는 우리 집에서 때로는 내가 '집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라고 버티게 해주는 바로 그 고양이가 되어주고 싶어진다.
우리 가족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