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고양이 - 닿을 듯 말 듯 무심한 듯 다정한 너에게
백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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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 살금 다가와 지친 삶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길냥이 나무

가족이라서 참 고마운 반려묘와 1000일의 교감일지

「아무래도, 고양이」

 

 

누구라도 이름 아는 길냥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물론 나도 소개받아 아는 길냥이가 있다.

동네 초딩들이 지어준 단순한 이름 '삼색이'

고양이를 보지 못지고 이름만 들었을 때, 설마 세 가지 색이 섞여 있어서 삼색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작명 센스 하고는.;;

거기에 비하면 이 책의 주인공인 '나무'는 제법 그럴듯하고 어여쁜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삼색이라서 삼색이라고 부르는 건, 예전 할머님들이 모든 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만의 특색이 없는 너무 흔하고 대중적인 이름처럼 여겨졌다.

또다시 삼색을 지닌 고양이가 나타나면 어쩌려고?

 

내가 아는 길고양이 '삼색이'는 우리 둘째 아들이 소개해 준 길냥이다.

작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우리 동네의 아파트 세 곳에서 출몰하는 길냥이 삼색이는 놀라울 만큼 사람을 잘 따른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고양이 밥을 주고 이뻐해서 그런지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길을 가다가 '야옹~'하고 사람을 부르는 녀석들이 몇 있는데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다가가서 안녕하고 인사를 하면 스스럼없이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빈다.

주머니에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다 보니 그럴 때마다 그저 한두 번 쓰다듬어 줄 뿐, 고픈 배를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고는 했다.

어떤 날은 편의점 앞에 앉아 사람이 편의점에 오면 '야옹~'하며 울기도 한다.

그러니까 '밥 좀 사 와', '배고파'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실제로 아이들이 편의점에 들러 고양이 캔을 사다 주는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더더욱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처음엔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들이 신기했다가, 그다음엔 그 아이들을 챙겨주는 수많은 손길들에 감사했다가, 나중엔 혹시라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마저 들었다.

 

작년에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삼색이는 새끼를 낳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바빴다.

동네 아이들은 쫓아다니며 밥을 주고, 쫓아다니며 새끼 고양이를 구경하느라 난리였다.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고은 마음은 되려 고양이에게 플러스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지난겨울에는 길가에, 아파트에, 고양이 집도 생겼다.

작은아이 말로는 누군가가 지어준 삼색이 집이라고 했다. 문패가 있단다.

삼색이는 집이 세 채라고, 건물주라고 웃으며 말하는 아이를 보고,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지난 겨울 내내 삼색이의 겨우살이를 걱정하던 작은 아이를 보면서도, 우리 집에 함께 살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집뿐 아니라 몰려다니며 밥을 주던 아이들 모두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허락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만성비염 환자가 넷이나 사는 집에 털 달린 짐승은 절대 함께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거기다 남편과 나는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깊고 어려운 일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애정과 시간과 마음을 듬뿍 나눴던 존재와 이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또한 너무 커서 더더욱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놓고, 지난겨울, 삼색이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었다.

이미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종종 오며 가며 마주쳤던 녀석과 정이 들어 버린 모양이다.

 

책을 읽다가 삼색이의 안부가 너무 궁금해서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한참 보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두 달을 집에 틀어박혀있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한참 못 본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소식을 듣지 못했냐고 하니, 아마도 여행을 떠난 것 같단다.

삼색이는 종종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며,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굳은 믿음을 내비치는 아이를 보며, 혹시라도 사고를 당한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애써 감추었다.

차라리 이 책의 저자처럼 좋은 집사를 만나 길냥이에서 집냥이가 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자 간절히 바라게 된다.

 

길 가다 마주치면 꼭 '야옹'하고 인사를 건네던 녀석.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삼색아, 잘지내고 있지?

 

 

 

 

어릴 적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했었다.

밤에 보는 고양이 눈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게다가 어디선가 훅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고, 심지어 친근함 따위는 1도 없는 까칠함을 지닌 녀석에게 애정이 생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반대로 강아지는 늘 발랄하고 다정한데다 사람을 잘 따라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고양이가 점점 더 좋아진다.

똥꼬발랄한 강아지의 애정표현을 받는 일이 이제는 힘이 든다.

다른 집에 방문했을 때도 떠들썩한 강아지의 인사보다 조용하고 거리감 있는 고양이의 인사가 더 편하다.

멀리 떨어져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것만 같지만, 어느 순간 무심히 다가와 몸을 한번 슥 비비고 지나가는 고양이의 시크함이 딱 좋다.

어느새 호들갑보다는 조용한 온기를 더 원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생겨난 관심은, 책으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양이'책에 열광하는 독자가 되어있었다.

누군가의 고양이와 친밀해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그저 책과 인터넷으로 욕구 충족 중이라고 나 할까.

 

 

 

대부분의 고양이 책들이 글만큼이나 많은 사진을 담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은 글이 더 많다.

고양이와 공생하는 삶에 관해 담백하고도 진솔하게 적어나간 글들이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 동네 스타 고양이 '삼색이'처럼, 일산의 어느 아파트에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스타 길냥이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길냥이의 삶은 결코 녹녹하지 못했다.

밥을 챙겨주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었고,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고운 마음들이 있었지만, 첫 겨울이 걱정이었다고 한다.

관심은 애정이 되고, 애정이 깊어져 결국 가족이 되어버린 어느 집사의 이야기.

 

초보 집사에서 시간이 흘러 그저 가족이 되어, 서로의 삶을 맞대고 의지하며 위로받고 위로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양이에게서 자유로움을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함, 제대로 된 집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재력을 위해 고양이를 홀로 두어야 하는 안쓰러움, 한 생명을 책임지는 데에서 오는 수많은 뒤치다꺼리들, 언제가 될지 모를 이별에 대한 두려움.

반려동물을 키우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을 그 고민과 걱정들이 책 속에 담겨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들이 전부는 아니다.

 

고양이에게서 받는 온기와 위로.

고양이를 키움으로서 배우게 되는 삶의 새로운 시선들.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어서 알게 된 새로운 세상.

서로의 생을 맞대고 있는 존재들만 알 수 있는 온도와 다정함.

 

저자는 고양이와 함께한 순간들에서 찾아낸 빛나는 조각들을 우리에게도 펼쳐 보여준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와 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의 공간과 시간과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내일로 함께 걸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공존보다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대화도 되지 않고, 종이 달라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기어코 가족으로 서로의 삶을 기대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길냥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그토록 어렵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라는 마음마저 든다.

물론 모든 일에는 고난과 역경이 뒤따르겠지만, 낯선 존재와 가족이 되는 일이 결코 하늘의 별을 따는 일처럼 불가능의 영역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가족이 된 나무와 나무 누나.

인간이 고양이를 구원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고양이가 우리를 구원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가닿는다.

 

 

여전히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강함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있다.

괜한 화풀이를 해대고, 이유 없이 괴롭히기도 한다.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목숨에 발길질을 해대는 나쁜 사람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마음속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소중해서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 남의 고양이를 해할 수 없을 테니까.

 

세상이 조금만 더 다정해졌으면.

나 또한 지금보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집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어쩐지 뭉클했다.

무엇도 견디게 해주는 고양이라는 존재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으니까 말이다.

고양이가 없는 우리 집에서 때로는 내가 '집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라고 버티게 해주는 바로 그 고양이가 되어주고 싶어진다.

우리 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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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MAYBE - 너와 나의 암호말
양준일.아이스크림 지음 / 모비딕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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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의 애청자이다.

지나간 노래의 소환은 우리를 그 시대로 타임 리프 하게 만든다.

그때의 추억과 그때의 사람들과 그때의 사랑이 노래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추억 찾기 놀이를 할 만큼 어느새 나이 들어 버린 건가, 씁쓸하면서도 '지나간 어떤 날'의 시간을 회상하며 또한 즐거워진다.

 

슈가맨에 깜짝 놀랄 만큼 센세이션한 인물이 등장했다.

'90년대 GD', '탑골 GD'라 불리는 '양준일'이었다.

 

바로 그 90년대를 통과하며 가장 많은 음악을 들었던 내게도 그는 생소하기만 한 인물이었다.

(물론 나는 그때 주야장천 발라드만을 들었으니,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건지도.)

2019년에 다시 바라보는 90년대의 그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낯설지 않았다.

그냥 2019년의 인물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세련되고 파격적이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러도 전혀 이질감이 없게 느껴질 만큼 '옛날 사람'이라고 부르기 무색한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잊혀진 가수로 존재하던 그는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날렵하고 아름다웠다.

지나온 시간만큼 나이가 들었고, 그만큼 몸은 늙었지만, 그는 그냥 '양준일'이었다.

나이가 상관없을 만큼,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지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90년대에서 2019년에도 그는 그저 '양준일'이라는 인물로 존재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전혀 모르던 사람인데, 뭉클해지고, 감격스러웠다.

고된 시간을 견디며 50대가 되어있는 그는, 그 시간만큼 늙어버리기만 한 게 아니라 훨씬 더 넓고 깊게 성장해있었다.

멋진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나온 삶의 무게를 누구보다 묵묵히, 그리고 단단하게 버티며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가 정말 근사해 보였다.

 

 

 

 

 

 

화제의 인물이었던 그는 삽시간에 온 미디어를 주목시켰다.

어쩌면 실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가수로서의 지난 삶'이 다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몇십 년을 건너, 이제서야.

 

하지만 그는 늘 감사했다.

무엇에도 감사하고, 고마워했다.

지난 시간들을 투정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늘의 시간에 자신을 사랑해 주고, 그리워해준 팬들에게 너무도 고마워했다.

 

삶을 늘 긍정하고 기꺼워하는 그의 모습은 '가수'를 넘어, 인간적인 끌림을 불러일으켰다.

늘 긍정을 말하려고 하고, 순수하게 기뻐하며, 순간순간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흐뭇했다.

너무 나쁜 사람들이, 너무 잔인한 사람들이 자꾸만 뉴스에 나오는 요즘, 그를 보는 일에 흐뭇해지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비난과 멸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한 사람의 인생은 이런 모습이라고, 그는 온 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춤과 노래를 언어로 사용하던 그가, 글로 우리를 만나러 왔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양준일을 외치던 때라서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궁금함과 동시에 아주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것도 있었다.

뭐랄까,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규정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과속 차량의 아슬아슬함 같은 느낌.

물론 그에게 2019년은 전혀 빠른 시간이 아니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읽아웃>의 옹기종기 코너에 이 책이 소개되어 듣게 되었다.

토크쇼 같은 분위기의 코너인지라 책뿐 아니라 양준일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이 읽고 싶어졌다.

 

어느 페이지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을 책을 쓰고 싶었다는 그.

무엇을 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말하는지도 중요하기에, 지금 커다란 관심 속에 있는 자신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그.

선한 기운을 더 넓게 펼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따라 걸을 수 있도록,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실제로 연예인들의 선행에 많은 팬들이 동참하고, 선한 길을 함께 따라 걷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기꺼이 말하고, 행동하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걸까.

책 속에서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아픈 감정인데 그건 바로 내 아픔이다.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얼마나 오래 잡고 있을 수 있을까? 뜨거우면 나만 아프니까 내려놓는 것이다.

P. 125 _ 미움

 

 

 

그는 너무 멋진 사람이었다.

그의 춤, 그의 노래, 그의 어떤 것도 그의 생각과 삶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가 가진 생각과 신념과 긍정을 들여다보며, 진짜 멋진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그의 춤과 노래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생각과 가치관과 그의 시선과 삶의 긍정에 열광할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듯 현명하고 단단한 생각의 결정들을 얻기까지 그는 얼마나 뜨거운 불속에서 달구어졌을까.

그가 걸어온 삶의 모든 걸음들이 그에게는 오로지 영양분으로만 존재했던 것만 같다.

분명 그도 아프고, 슬프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좌절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악을 쓰며 울부짖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단단한 결정체로 우리 앞에 빛나고 있다.

 

당신들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다고.

지금이 그 순간이 아닐지 몰라도, 기어코 그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러니까 넘어져 있지 말라고, 일어서서 묵묵히 앞을 향해 걷고 또 걸으라고.

미움을 놓고 삶을 움켜쥐라고,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라고.

그는 자신의 삶으로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멋지다.

새삼 다시 한번 반한다.

 

 

 

내게 돈은 우산 같은 것이다.

많으면 나눌 수 있는 것.

하나라면 나와 내 가족이 써야 하지만

남는 것이 있다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나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거 써"라고 건넬 수 있는 것.

P.248~249 _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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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와 안나, 우리는 매일 어른이 되고 있어 - 어제보다 좋은 내일을 살아갈 너에게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
겨울왕국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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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여성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꼽자면 단연코 '겨울왕국'이 아닐까 싶다.

소극적이기만 하던 공주들이 어느 사이 점차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뮬란'을 넘어 '겨울왕국'에 이르러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구축해냈다.

이제 더 이상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는 사라졌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의지하며 간신히 무언가를 이루어내던 시간은 끝났다.

 

그녀들은 그 자체로 누구보다 용감하고, 현명하며, 아름답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 절망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 기어코 자신들의 정답을 찾아낸 그녀들.

엘사와 안나가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라고.

 

 

 

같은 사람을 보고도 저마다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많아요.

느긋하게 보이는 행동이 때로는 둔감하게 비칠 수도 있죠.

또 신념이 뚜렷한 모습은 융통성이 없이 완고하다고 표현되기도 하고,

협력을 잘하는 긍정적인 성격을 비위를 잘 맞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죠.

그러니 내가 가진 개성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P.45

 

 

한동안 출간되었던 디즈니 시리즈 중에서도 레이디스 시리즈로 <겨울왕국>, <인어공주>, <라푼젤>, <미녀와 야수>, <알라딘> 속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언제든 우리를 동심으로 다시 걸어들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디즈니의 만화영화는 특유의 위트와 따뜻함을 잊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영화라는 편견을 넘어 많은 어른이 들을 감동시키고 열광하게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우리에겐 여전히 위로와 유머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애니메이션 속 화면을 넘어 책으로 우리와 만나는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우리들을 힘껏 응원한다.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삶의 조언들을 따뜻하게 건네준다.

영화를 통해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삶의 자세와 용기, 웃음과 긍정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겨울 왕국 속 두 공주, 엘사와 안나.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공주가 어떻게 삶의 진리를 찾아 자신의 삶을 밝히는지 우리는 영화를 통해 모두 지켜보았다.

그들의 빛나던 여정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작은 선물이 되어 줄 것 같다.

특히나 여자아이들에게는 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친구들에게 특별히 더.

 

책 속에는 애니메이션 속 화면이 그대로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속 장면을 다시 회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아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쉬우면서도 다정한 글들도 함께라서 연령에 상관없이 읽기 좋을 것 같다.

 

겨울 왕국 덕후라면 무조건,

한참 친구와 자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사춘기의 소녀에게,

동화 속 친구가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고민의 실마리를 찾게 될 수도 있어요.

문제에 파묻혀 있으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두려움, 불안,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그런 감정을 억지로 외면하는 데만 급급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죠.

그럴 때일수록 냉철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거리를 두고 보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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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톡 4 - 근대의 질주 세계사톡 4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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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으로 시작해서 「세계사톡」까지.

완전 요즘 스타일의 역사 이야기, 무적핑크의 최신간 「세계사톡 4. 근대의 질주」

드디어, 읽어본다.

 

딱 요즘 아이들 눈높이, 딱 요즘 어른이들 스타일로 재해석한 이 시리즈는 늘 최애픽 중 하나.

초딩과 중딩이 함께 읽고 열광하는 책이라서 덩달아 나까지 함께 읽고 역사 공부를 하게 되는 책이다.

 

사실 처음 「조선왕조실톡」을 접했을 때 많이 낯설었다.

카톡창에 등장하는 조정 대신들의 대화가 웃프다고나 할까.

스웨그 넘치는 왕의 대사를 읽으며 당황스러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톡 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이라니.

과연 이 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떤 책보다도 더 열심히, 여러 번 「조선왕조실톡」을 읽고 또 읽었고, 당연한 결과로 학교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세계사톡」 이 출간되었을 때, 1권을 구입하면서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조선시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세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초등학생이 읽기에 부담스러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막상 1권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보면서 이 시리즈도 열심히 사야겠구나 싶어졌다.

 

게다가 이 책은 청소년들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른(20대 초반을 제외한)보다 청소년들에게 훨씬 더 쉽고 가깝게 가 닿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 분명 세대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부터도 중3인 아이에게 책 속 신조어가 무슨 뜻이냐고 여러 번 물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말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 「세계사톡」

읽으러 GO GO!!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까지

그때, 그 시절, 그분들의 기나긴 이야기

 

 

 

 

고대 세계로부터 시작된 「세계사톡」은 이번 편에서 근대의 질주를 다루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비롯해 현재 미국의 탄생과 중국, 일본의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고 두루 담고 있는 이 책 속에는 그래서 여러 전쟁과 혁명의 이야기가 많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국민들의 삶 또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지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 자유를 잃고 오랜 시간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는 동안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갈망이 깊어지고 결국 '혁명'이 시작되었다.

 

 

 

 

근대를 대표하는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친숙한 말이지요. 4차 혁명, 스타일 혁명, 아이돌계의 혁명 등등! 국어사전은 혁명을 "본래 있던 견고한 구조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급격히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래도록 사람들을 지배하던 구조가 부서지도록, 그래서 우리 삶이 '변화'하도록 수많은 이들이 노력했던 격동이 나날이 바로 근대입니다.

 

작가의 말 中

 

 

 

많은 사람들이 세계사를 배울 때 꼭 배우게 되는 프랑스와 영국의 혁명의 역사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빼곡히 담겨있다.

쉽고, 재밌고, 웃프기만 할 것이라는 짐작은 금물!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꼭꼭 눌러 담아 가득 채우고, 어렵고 지루한 부분은 잊지 않도록 유머러스한 카톡을 곁들여 필수 세계사 상식들을 조곤조곤 일러준다.

그림으로 쉽게, 요즘 스타일로 가볍게, '돋보기' 챕터를 이용해서 필요한 부분은 꼼꼼히, 무엇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나 4권에서는 '세계사 돋보기' 챕터에 좀 더 힘을 준 모습이다.

「조선왕조실톡」을 좀 더 쉽고 가볍게 읽었던 반면에, 「세계사톡」은 그림보다 설명이 좀 더 많이 실려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사를 일곱 권에 나눠 담는 것보다 세계사를 통틀어 몇 권의 책에 담는 것이 훨씬 어렵고 복잡한 과정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계의 그 많은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고작 몇 권의 책 속에 넣는 일이 보통 일이랴.

빼도 빼도 중요한 역사들이 넘쳐났을 테고, 그 모든 흐름과 사건을 설명하려면 부연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사톡」 속에는 좀 더 많은 글들이 담겨있다.

그 말은 반대로 읽을거리도 더 많고, 그 속에 담긴 지식들도 꼼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신 중, 고생이나 어른에 비해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약간의 지루함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에 대한 흥미가 있는 아이들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 집 초딩처럼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는 아이들에겐 이번 책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웹툰의 그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랬다가는 책이 터져나갔을 것 같다.

이미 5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있으니까.ㅎ

 

 

 

교과서로 외우기 위해 배웠던 세계사는 지겹고 지루하기만 했었다.

시험을 위해 줄줄줄 외워야만 했던 남의 나라 왕 이름들, 그들의 혁명, 그들의 전쟁.

다 어렵기만 하고, 재미라곤 없었다.

 

더 이상 '공부'하기 위해 외워야 하는 세계사가 아닌, 스스로 읽는 세계사는 좀 색다르게 다가온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친숙해진다.

그들이 살아낸 시간이 우리가 살아낸 시간과 딱히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다.

한편으론 그 큰 땅덩어리의 나라들이 이름을 잃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한 문명이 멸망하는 사이에도, 꿋꿋하게 지켜온 우리나라의 이름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식민지로 빼앗긴 내 나라를 기어코 되찾은 조상님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에 뭉클해진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그들만의 땅따먹기 게임 속에서 희생되고 고통받은 원주민들의 모습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살았던 땅에 이국의 사람들이 쳐들어와 '이제부터 여긴 내 땅'이라고 외치며 그들을 죽이고 몰아낸 당시의 강대국들의 횡포에 슬펐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탐욕의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지나온 역사는 늘 아프다.

찬란하게 빛나는 역사마저도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넓어진 땅에서 높은 위상을 빛내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우리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빛보다도 더 깊은 그림자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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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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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지구촌이 시끄럽다. 2003년 사스, 2012년 메르스 사태의 원인이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는데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는 미생물이 있다. 바로 슈퍼버그다. 슈퍼버그는 언론에서 항생제에 내성이 갖는 박테리아를 지칭하며 만들어낸 단어다. 주로 박테리아가 거론되지만 치료제가 듣지 않는 진균도 포함된다.

P. 386 _ 역자의 글

 

 

의학 기술을 날로 발전하고, 인간 기대 수명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지금 세대가 훨씬 오래 생명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 세대는 평균 수명이 100세가 넘는다고 예상하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몸의 노화를 껴안고 어떻게 덜 아프고 살아갈 수 있을까로 바뀌고 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병증이 생겨나고, 예전에는 희귀했던 자가면역질환을 겪는 이들 또한 점점 흔해지고 있다.

암에 걸리는 사람들도 자꾸만 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2020년 3월 현재, 우리의 일상은 잔뜩 위축되고 멈춰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자꾸만 뒤로 후퇴하는 기분이 든다.

코로나19 때문에 강제로 실천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명칭만 그럴듯하지 사실 타인과의 단절에 가까운 느낌이다.

확실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더욱더 깊은 공포로 몰아넣는다.

걸리더라도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금방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우리가 이토록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 순간에 이 책을 만났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걱정과 답답함으로 지치고 힘든 요즘에 '슈퍼버그'는 어쩌면 더한 공포감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변종 바이러스만으로도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슈퍼버그라니.

너도 만만치 않게 무서운 존재구나.

오 마이 갓!

 

 

 

 

사실 우리는 '슈퍼버그'를 알고 있다.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 해도, 언제부턴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 문제로 사회가 시끌시끌했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호흡기가 약해서 수시로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심각한 감기(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냥 감기였을까 싶기도 하고;;)로 거의 한 달을 학교에 못 간 적이 있었다.

아마 3학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체중미달일 정도로 말랐었던 나는 한 번에 10알이 넘는 약을 먹었었다.

그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약을 먹고 또 먹었던지, 나중에는 그냥 주사를 맞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이 차라리 주사가 좋다고 말할 정도면 엄청난 양의 약이 얼마나 싫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심지어 하루에 병원을 두 곳, 세 곳에 가기도 했다. (주사도 그만큼 더 맞았다)

심각한 고열이 잡히지 않았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낫게 하고 싶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마 무시하게 먹었던 약들은 내 몸에서 어떤 내성을 이미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항생제 내성에 대해 무지했기에,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던 적 또한 많았다.

약이 너무 싫어서, 말 그대로 아프면 먹고 안 아프면 안 먹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내가 내 몸을 망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항생제 내성의 무서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양제처럼 조금만 아파도 너무 쉽게 삼켜대던 항생제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그러다가 모든 약들이 듣지 않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좀 더 일찍 항생제 내성의 무서움을 알았더라면, 혹은 이런 책들이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렇게 항생제를 신봉하지 않았으리라.

우리의 부모님들은 의례 당연한 듯 의사에게 요구하고는 했다.

'독한 약으로 지어주세요.', '빨리 낫게, 얼른 나아야 일을 하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 또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프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똑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잘 듣는 약으로, 센 걸로 지어주세요.'

그 항생제가 내 몸에서 박테리아를 만나 어떤 상황에 직면하는지도 모른 채.

 

 

 

 

이 책은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인 맷 매카시'슈퍼버그'를 이기기 위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오늘날, 감염병에 맞서서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의사는 외과의다.

피가 튀는 수술 장면이 당연하듯 등장한다.

긴박한 상황에 사람을 살려내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환자를 살리는 의사도 있다.

수많은 박테리아와 진균들을 찾아내고,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들로부터 인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잠들지 못한 채 신약개발에 힘쓰고 있는 의사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이나 인정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에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매달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새로운 항생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이해관계도 얽혀있으며, 대단한 발견이 이루어져도 그게 처방되기 까지는 또 다른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는 끝없이 진화하는 박테리아에 맞서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환자에게 제대로 투약할 수 있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이 담겨있다.

 

페니실린의 발견부터 많은 항생제가 태어나고 무력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왜 끊임없이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 헤매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도 알려준다.

꼭 거쳐야 하는 동물실험과 사람에게 직접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 또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임상실험이라는 말이 어쩐지 좀 무섭게 느껴지고는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임상실험의 대상자가 된다는 것이 무조건 두렵고 무서운 일만은 아니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약으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가 임상실험 중인 신약을 소개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특히나 가벼운 병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떤 희망에라도 기대고 싶어질 것만 같다.

게다가 맷 매카시는 책 속에서 상상도 하지 못하게 친절하다.

(나는 아직까지 이토록 친절하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설명해 주는 대학병원 의사를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과 고민들이 이 책을 딱딱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익숙하지 않은 박테리아의 이름들을 읽으면서도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았던 이유는 책 전반에 흐르는 그의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환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

맷 매카시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진 인물, 톰 월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의사로 굳건히 인류를 위해 연구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없이는 자신의 삶 전체를 환자를 위해 기꺼이 할애하는 일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참 감사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항생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한 마디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항암제에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에는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이런 거부감에 직면한 의사들은 값비싼 항생제 신약보다 기존 항생제를 처방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제약회사들은 항생제 개발을 주저한다. 게다가 10년 이상 걸려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을 가진 병원균이 등장하고 있어 투자비를 회수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에 감염 학자들은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에서다.

P.387~389 _ 역자의 글

 

 

항생제 개발에 숨겨진 명과 암을 들여다보며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값싸고 효과가 좋은 약이 시판되어도 수익성이 없으면 복제약을 만들어 내지 않아서 되려 비싸지기도 하고, 항생제 자체가 내성 때문에 신약을 개발해도 언제까지나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면서 많은 제약회사들이 항생제 개발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 혈압약이나 당뇨약, 엄청나게 비싼 항암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결국 돈과 연계되어 있다.

물론 그 약들도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가 더 흔하게 먹는 약은 값싼 항생제이다.

책을 읽으며 제약회사의 고충 또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류애를 발휘해서 항생제 개발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크다.

 

 

 

 

"우리는 전염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세균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접촉으로 너무 쉽게 박테리아에 감염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죽음과 대면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를 박테리아로부터, 진균으로부터, 바이러스로부터 구원해 줄 항생제의 출현.

그것을 바로 알고 제대로 먹는 일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균들은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어떤 척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떤 항생제와 만나도 죽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들의 진화는 우리를 고통 속에서 괴롭게 만든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도록 괴롭힌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인류를 고통 속에서 구해내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슈퍼버그'를 굴복시킬 새로운 항생제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질병과의 싸움에서 꼭 우리 모두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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