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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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지구촌이 시끄럽다. 2003년 사스, 2012년 메르스 사태의 원인이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는데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는 미생물이 있다. 바로 슈퍼버그다. 슈퍼버그는 언론에서 항생제에 내성이 갖는 박테리아를 지칭하며 만들어낸 단어다. 주로 박테리아가 거론되지만 치료제가 듣지 않는 진균도 포함된다.

P. 386 _ 역자의 글

 

 

의학 기술을 날로 발전하고, 인간 기대 수명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지금 세대가 훨씬 오래 생명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 세대는 평균 수명이 100세가 넘는다고 예상하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몸의 노화를 껴안고 어떻게 덜 아프고 살아갈 수 있을까로 바뀌고 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병증이 생겨나고, 예전에는 희귀했던 자가면역질환을 겪는 이들 또한 점점 흔해지고 있다.

암에 걸리는 사람들도 자꾸만 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2020년 3월 현재, 우리의 일상은 잔뜩 위축되고 멈춰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자꾸만 뒤로 후퇴하는 기분이 든다.

코로나19 때문에 강제로 실천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명칭만 그럴듯하지 사실 타인과의 단절에 가까운 느낌이다.

확실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더욱더 깊은 공포로 몰아넣는다.

걸리더라도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금방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우리가 이토록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 순간에 이 책을 만났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걱정과 답답함으로 지치고 힘든 요즘에 '슈퍼버그'는 어쩌면 더한 공포감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변종 바이러스만으로도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슈퍼버그라니.

너도 만만치 않게 무서운 존재구나.

오 마이 갓!

 

 

 

 

사실 우리는 '슈퍼버그'를 알고 있다.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 해도, 언제부턴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 문제로 사회가 시끌시끌했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호흡기가 약해서 수시로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심각한 감기(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냥 감기였을까 싶기도 하고;;)로 거의 한 달을 학교에 못 간 적이 있었다.

아마 3학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체중미달일 정도로 말랐었던 나는 한 번에 10알이 넘는 약을 먹었었다.

그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약을 먹고 또 먹었던지, 나중에는 그냥 주사를 맞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이 차라리 주사가 좋다고 말할 정도면 엄청난 양의 약이 얼마나 싫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심지어 하루에 병원을 두 곳, 세 곳에 가기도 했다. (주사도 그만큼 더 맞았다)

심각한 고열이 잡히지 않았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낫게 하고 싶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마 무시하게 먹었던 약들은 내 몸에서 어떤 내성을 이미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항생제 내성에 대해 무지했기에,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던 적 또한 많았다.

약이 너무 싫어서, 말 그대로 아프면 먹고 안 아프면 안 먹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내가 내 몸을 망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항생제 내성의 무서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양제처럼 조금만 아파도 너무 쉽게 삼켜대던 항생제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그러다가 모든 약들이 듣지 않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좀 더 일찍 항생제 내성의 무서움을 알았더라면, 혹은 이런 책들이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렇게 항생제를 신봉하지 않았으리라.

우리의 부모님들은 의례 당연한 듯 의사에게 요구하고는 했다.

'독한 약으로 지어주세요.', '빨리 낫게, 얼른 나아야 일을 하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 또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프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똑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잘 듣는 약으로, 센 걸로 지어주세요.'

그 항생제가 내 몸에서 박테리아를 만나 어떤 상황에 직면하는지도 모른 채.

 

 

 

 

이 책은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인 맷 매카시'슈퍼버그'를 이기기 위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오늘날, 감염병에 맞서서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의사는 외과의다.

피가 튀는 수술 장면이 당연하듯 등장한다.

긴박한 상황에 사람을 살려내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환자를 살리는 의사도 있다.

수많은 박테리아와 진균들을 찾아내고,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들로부터 인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잠들지 못한 채 신약개발에 힘쓰고 있는 의사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이나 인정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에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매달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새로운 항생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이해관계도 얽혀있으며, 대단한 발견이 이루어져도 그게 처방되기 까지는 또 다른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는 끝없이 진화하는 박테리아에 맞서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환자에게 제대로 투약할 수 있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이 담겨있다.

 

페니실린의 발견부터 많은 항생제가 태어나고 무력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왜 끊임없이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 헤매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도 알려준다.

꼭 거쳐야 하는 동물실험과 사람에게 직접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 또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임상실험이라는 말이 어쩐지 좀 무섭게 느껴지고는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임상실험의 대상자가 된다는 것이 무조건 두렵고 무서운 일만은 아니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약으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가 임상실험 중인 신약을 소개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특히나 가벼운 병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떤 희망에라도 기대고 싶어질 것만 같다.

게다가 맷 매카시는 책 속에서 상상도 하지 못하게 친절하다.

(나는 아직까지 이토록 친절하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설명해 주는 대학병원 의사를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과 고민들이 이 책을 딱딱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익숙하지 않은 박테리아의 이름들을 읽으면서도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았던 이유는 책 전반에 흐르는 그의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환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

맷 매카시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진 인물, 톰 월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의사로 굳건히 인류를 위해 연구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없이는 자신의 삶 전체를 환자를 위해 기꺼이 할애하는 일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참 감사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항생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한 마디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항암제에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에는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이런 거부감에 직면한 의사들은 값비싼 항생제 신약보다 기존 항생제를 처방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제약회사들은 항생제 개발을 주저한다. 게다가 10년 이상 걸려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을 가진 병원균이 등장하고 있어 투자비를 회수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에 감염 학자들은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에서다.

P.387~389 _ 역자의 글

 

 

항생제 개발에 숨겨진 명과 암을 들여다보며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값싸고 효과가 좋은 약이 시판되어도 수익성이 없으면 복제약을 만들어 내지 않아서 되려 비싸지기도 하고, 항생제 자체가 내성 때문에 신약을 개발해도 언제까지나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면서 많은 제약회사들이 항생제 개발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 혈압약이나 당뇨약, 엄청나게 비싼 항암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결국 돈과 연계되어 있다.

물론 그 약들도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가 더 흔하게 먹는 약은 값싼 항생제이다.

책을 읽으며 제약회사의 고충 또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류애를 발휘해서 항생제 개발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크다.

 

 

 

 

"우리는 전염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세균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접촉으로 너무 쉽게 박테리아에 감염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죽음과 대면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를 박테리아로부터, 진균으로부터, 바이러스로부터 구원해 줄 항생제의 출현.

그것을 바로 알고 제대로 먹는 일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균들은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어떤 척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떤 항생제와 만나도 죽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들의 진화는 우리를 고통 속에서 괴롭게 만든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도록 괴롭힌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인류를 고통 속에서 구해내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슈퍼버그'를 굴복시킬 새로운 항생제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질병과의 싸움에서 꼭 우리 모두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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