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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박정아 지음 / 청어람 / 2017년 2월
평점 :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세상의 시선 앞에 당당히.
무엇무엇 때문에 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어느 시구절이 생각났다.
'불구하고'의 높낮이가 존재한다면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불구하고'에 해당할 것만 같은 두 사람.
부모의 반대가 너무도 당연하고 타당해 보이는 두 사람.
사랑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뛰어넘게 해주는지 보여주는 두 사람.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한다.
언니 지윤과 청첩장까지 돌리고 결혼할 '뻔'했던 남자 권기주.
결혼식 2주를 남기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며 결혼을 파투 낸 여자의 동생 최서윤.
가장 껄끄럽고, 가장 부담스럽고, 몹시도 난감한 사이인 두 사람이 서울을 떠나 청주에서 다시 만났다.
우연인 건지, 운명인 건지 이웃사촌으로 지내게 된 둘은 객지 생활이 주는 낯설음과 외로움을 종종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된다.
껄끄럽고 부담스러울 것만 같았던 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저 남자와 여자로 끌리게 되지만
이성이 크게 외친다, 이건 아니라고.
감정이 귓가에 속삭인다, 놓치면 안 되는 사랑이라고.
처음부터 끝을 예감하고 시작하는 사랑이라는 건, 매 순간 가슴을 움켜쥐게 만드는 저릿함으로 고통스럽다.
그들의 사랑은 안녕할까?
형부가 될 뻔했던 남자와 처제가 될 뻔했던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니.
너무 당연하게도 몹시 신파스러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내내 차분하고 현실적인 분위기의 글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가장 질척이기 쉬워 보이는 소재를 가지고 담백하고 바삭한 참 크래커 같은 글을 써내다니.
글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꾸며놓은 글이 아니라서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사설 같은 느낌?!
문장이 딱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더더기가 없다는 의미로.
초보 작가이신 것 같은데 거슬리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가독성 갑!!)
애써 멋지게 쓰려고 좋아 보이는 문장이나 특이한 표현들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단정하게 그 자체로만 글을 쓴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워낙 조사가 엉망인 글과 과도한 멋짐을 꾸며낸 글을 읽어서 그런 건지... 깔끔한 문장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들이 기어코 지나야만 하는 터널을 꾸밈없이 그대로 내보여주는 느낌.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생각들과 행동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감정 선의 변화들.
너무 현실적이라 실제 누군가의 연애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래서 공감할 수 없기도 했다.
책의 모든 것을 공감했지만
어쩐지 현실적인 글은 내게도 현실로 다가와서, 이 결혼 나도 반댈세를 외치게 된달까.
언니와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지만 키스와 적당한 스킨십 정도는 했던 사이였고, 강제 결혼 진행도 아닌 상황이었던지라 묘한 찝찝함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청첩장에 찍힌 같은 부모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스토리를 만들고 손가락질할 테다.
부모님의 남우세스럽다는 말이 너무도 와 닿는 두 사람인지라 읽는 내내 그들을 이해했음에도 관계 자체에서 오는 껄끄러움을 피할 길이 없었다.
두 주인공만 놓고 보자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고 둘만 보이는 게 사랑이니까 사실 전혀 상관이 없다.
둘에 집중하면 공감 × 100.
주변 인물들에 집중하면 공감 - 100.
그런데 난 왜 자꾸만 노친네처럼 로맨스 소설을 보면서 부모들에 감정 이입을 하는 건지. ㅠ_ㅠ
끝까지 반대를 했던 기주의 엄마도 옳고,
딸의 행복을 위해 끝내져주었던 서윤의 엄마도 옳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세상의 시선과, 자식의 행복 앞에 갈등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는 옳다.
부모의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에 눈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는 두 사람보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막아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옳을 수밖에 없다. 그 마음에는 감히 잴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으니까.
많은 이유들로 결혼을 반대하는 세상의 부모들이 결코 독선적이라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아가게 된다.
부족해도 내 자식이 최고이고, 행복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자식을 등 떠밀 부모는 없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현재가 암흑이라도 그들 앞에 찬란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반대가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만은 옳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자식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일 테니까.
이 글 속의 부모는 유독 옳고 옳고 옳다.
내 자식 행복을 위해 상대방 부모의 생채기는 눈 감는 게 흔한 일인데
딸 가진 부모가 동거를 권하면서 상대 부모와 연을 끊게 생긴 남주 때문에 자신들 또한 그들을 보지 않겠다고 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남의 천륜을 끊어놓고 자신들만 자식들을 끼고 행복할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에 코끝이 시큰했다.
참 이기적인 세상이다.
시댁과 인연 끊고 사는 사람도, 처가와 인연 끊고 사는 사람도 흔한 세상이다.
다 나름의 상처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가족을 버리고 선택해야 되는 사랑이라니.
가족을 외면하며 살아야만 하는 그들의 상처에 대해 나는 모른다. 또한 옳다 그르다 할 말도 없다.
단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지금은 내가 자식이지만 곧 부모가 되고,
언젠가 자식의 외면을 받는 노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자식이 사랑 앞에 부모와 함께한 30년쯤은 우습게 외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그래서 서윤의 부모가 더 빛나 보였다.
자식의 사랑을 이해하면서도,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아주는 부모라서.
내 자식 상처만 바라보느라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도 발 뻗고 자는 부모가 아니라서.
인간의 도리와 자식의 미래를 함께 지켜주는 부모라서.
나도 그런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그럼에도 기주의 엄마가 가장 잘 이해가 되는 걸 보면.... 나는 한참 멀었다 싶다.
그런 부모 밑에서 결국에는 천천히 올곧게 사랑을 지켜낸 그들이 아름답다.
현실적으로도
로맨스적으로도
사랑을 하기엔 너무도 '곤란한' 관계인 두 사람.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