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스릴러 소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추리 소설도 최근 트렌드를 따라가는 종류보다는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의 옛날 추리를 좋아한다.
스릴러 소설 또한 피가 튀고 살이 뜯기는 소설보다는 심리 스릴러를 선호하는 편이다.
애초에 영화든 책이든 너무 지나치게 잔인한 것을 잘 못 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추리와 스릴러 장르 모두에서 잔인한 살인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찌르고, 자르고, 온통 피로 도배된 잔혹한 장면들이 기어코 책에 한 장면 이상은 등장하기 시작하자, 추리와 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종종 재밌다고 소문난 책들을 사긴 했지만, 그것을 읽는 행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굳이 잔인한 살인의 과정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구경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의 책을 읽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 책에서는 피 튀기는 살인 장면이 없다.
의문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진실과 거짓이 하나의 반죽으로 뒤엉켜 우리를 혼란하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몹시 서늘하고, 섬뜩한 오싹함을 선물한다.

더듬더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진실의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어가다 덥석 거짓에게 손끝을 물리곤 했다.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움켜잡았는데 그것은 거짓이었고, 거짓이라 의심했던 것이 어느 순간 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나곤 했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독자는 내내 갈팡질팡한다.

 

 

 

 

 

글은 현재, 그때, 이전, 이렇게 세 가지 구성으로 진행된다.
현재 속 그녀는 코마 상태이다.
그때는 사고가 나기 전의 며칠을 그녀의 기억을 통해 더듬는다.
이전의 그녀는 어릴 적 일기장을 통해 이야기를 건넨다.

글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보자.

 

<현재>

 

나는 지금 1인실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방이 막힌, 비좁은 병실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사방의 벽을 타고 똑똑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더러운 침전물이 가득 떠 있는 웅덩이가 되어 나를 서서히 익사시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망상과 현실이 뒤섞인 무한한 공간에 존재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존재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설정하는 공장으로 반송되었다. 보이지 않는 벽 너머로 삶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안에 가만히 억눌려 있다.
_ p.26~27.

 

나(엠버)는 코마 상태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눈을 뜰 수도 없다.
나에게는 남편이 있고, 여동생이 있다.
왜 내가 여기 이렇게 누워있는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남편과 여동생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건지, 그 무엇도 선명하지 않다.
기억은 조각조각 부서져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나초자 알기 어렵다.
몸속에 갇혀 꿈과 현실과 지난 기억과 현재의 소리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모든 것은 혼돈 속에 뒤엉켜있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때>

 

한가지 잘못된 결정, 잘못된 방향 전환 때문에 그 1분이 계속 이어진다.
_ P. 90.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부터 사고가 나던 그 시점까지의 기억이 차근차근 재생된다.
기억 속 엠버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을 했었고, 남편과는 사이가 나빴으며, 부모님과도 소원한 사이였고,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비춰진다.
남편과 여동생 사이를 의심했으며, 길 가다 우연히 옛 연인과 조우하기도 한다.
라디오에서 해고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자 살아남기 위해 메인 진행자인 매들린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강박증이 있으며, 무언가 많이 불안해 보인다.

 

<이전>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해.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가끔 거짓말을 하지.
p. 195.

 

'일기장에게'로 시작하는 <이전>의 글들은 어릴 적, 그러니까 열 살 무렵의 시작된 그녀의 일기다.
일기에는 그녀의 일상과 세 가지 진실이 담겨있다.
일기장 속 그녀는 매우 불행했다.
부모님은 늘 싸웠고, 자주 이사를 다녔으며, 친구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그렇게 새롭게 전학을 간 학교에서 선생님의 숙제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 속에는 부모님과의 불화와 새롭게 사귀게 된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친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도 친해진 테일러.
그녀는 테일러가 가진 따뜻한 가정이 너무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은 지나치게 불행했으므로.

 

 

 

 

세 가지의 기억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린다.
현재, 온통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보려고 애쓰고 있는 그녀와 그때의 시간을 살았던 그녀와 아주 예전 어렸을 적에 일기장에 기록된 그녀는 어느 것이 진짜 그녀의 모습인지 혼란스럽다.
그녀는 때론 피해자였다가, 때로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거짓에 예민하게 굴면서도, 자신의 거짓에는 조금의 죄악감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가끔 거짓말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거짓말들에 대해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으니까.


현재 속 그녀는 코마 상태이기 때문에, 그녀의 기억에 대한 신뢰가 낮다.
코마 상태에서 그녀가 겪게 되는 일들을 지켜보며, 측은한 마음이 강해진다.

그때의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망가져 있는 모습이다.
불안해 보이고, 조급해 보이고, 늘 의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강박적인 그녀의 모습은 머릿속의 어떤 감정의 끈이 뚝 끊어져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평범하거나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일기장 속 그녀는 어쩐지 좀..... 선뜩하다.
가끔 거짓말을 하는 그녀는, 거짓말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
특히나 팔찌와 관련된 사소한 사건이나, 엄마와 관련된 엄청난 사건 속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그녀의 진짜 알맹이는 무엇인지, 그녀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섬뜩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천진함이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 천진할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기장 속 그녀는 점점 더 자기 합리화에 능해질 뿐이다.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 속 '양달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잘못이 없고, 상황이 자꾸 잘못되어 갈 뿐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일삼던 양달희를 보며,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으면 저런 생각과 결론에 도달할까 너무 궁금했었는데, 일기장 속 그녀에게서 양달희를 오버랩해 보았다.

 

 

 

 

나는 이제껏 써왔던 몸의 지퍼를 열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하나씩 벗겨낼 때마다 새로 나오는 러시아 인형처럼 내 몸은 이전보다 조금 작아진 것 같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새로운 모습이 있는지 궁금하다.
P. 407.

 

 

책은 내내 거짓말과 비밀의 안갯속에 휩싸여있다.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처음 믿었던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성을 잃어가고,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섬뜩해진다.


애초에 선으로만, 혹은 악으로만 이루어진 인간은 없는 모양이다.
한 사람 안에 깃든 선과 악이 마주 보고 있다.
선이 오른팔을 올리면 악은 왼팔을 올린다.
서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똑같이 따라 한다.
어느 순간 둘 중 누가 선이었고 악이었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그 혼란의 끝에 누군가는 죽었다.
죽은 것은 선이었을까 악이었을까.
그녀 마음속에서 똑같이 마주 보며 웃던 선과 악중 누가 남겨졌을까.

그것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되어야만 하는 내 모습으로,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도둑맞았던, 그런 삶 말이다.
P. 414.

 

 

 

우리는 모두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 갈 곳이 없으니까.
P. 413.

 

 

 

 

그것은 어쩌면 섬뜩하고 광기어린 사랑의 한 모습이었을까.
무엇이라도 사랑해야 했던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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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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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게 유해한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

제목을 읊조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해한 사람'일 수 있을까?
조금의 적의도 없이, 무한한 사랑의 이름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가끔은 미움보다 사랑이 더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 무해한 사람이었고 누구에게 유해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정말 무해한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읽힌 적이 있었을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오로지 '완벽한 타인' 중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모든 관계에서 힘을 얻고, 또한 모든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니까.
그 사람과 나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는 내게 더 큰 힘이 되고, 더 큰 상처가 된다.
내 주위의 어느 누구도 오로지 무해하기만 했던 적은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졌고, 서로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상처는 제멋대로 생겨나곤 했으니까.

나 또한 그들에게 무해의 얼굴은 아니었겠지.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 209. < 고백 >

 

 

최은영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바로 앞에 읽었던 김금희 작가의 책이 나에게는 조금 난해했으므로, 이 책을 시작할 때에도 역시나 조금 긴장했다.
두 작가 모두 최근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이었고,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평 또한 좋았던 작가들이라 '젊은 작가'들의 책은 혹시 다 어쩐지 난독증을 느끼게 하는 맥락으로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김애란 작가님을 떠올렸다.
닮아서가 아니라, 작년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단편집이 '바깥은 여름'이었던 탓이다.
이번 여름은 아마도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으니까.
'바깥은 여름'을 읽으면서 순수하게 문장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
뭉툭한 삶의 순간들 속 미묘한 감정의 일렁임 같은 것들을 담담함 속에 녹여놓은 문장들,
무심한듯한 일상의 모습에 덧씌워진 깊은 감정의 결들이 그 여름 내 마음에 날카롭게 그어져 상흔을 남겼다.
그 길고 긴 여운이 일 년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처음 만난 최은영 작가의 글이 다시 내 마음에 저릿한 상흔을 남겨 놓은 것 같다.

최은영 작가님은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책을 읽는 내내 섬세하게 잡아채 놓은 감정의 결들을 더듬으며 감탄하곤 했다.
그래, 이런 감정이 있었지.
그때, 나를 관통했던 그 감정들의 실체가 이것이었지.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었지만, 가슴은 알고 있었던 이야기.
그 감정 한가운데에서는 되려 무뎌져 보지 못했던 그 작고 연약했던 감정의 민낯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곤 한다.
모든 감정이 뭉쳐져 하나의 아픔, 슬픔, 고통으로 기억되던 시간들도, 그 감정을 지나고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 서서 되돌아보고 있노라면 그제서야 그 속에 들어있던 수많았던 감정들이 보인다.
지나고서야 선명해지는 감정이 있다.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는 감정이 있다.

이 책은 우리를 흐리게 지나쳐버렸던 그 감정의 알맹이를 들여다보라고 건네준 돋보기 같다. 
그 시절 우리들은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낀 사람들처럼 더듬거리다 놓치기 일쑤였다.
사랑을 놓치고, 믿음을 놓치고, 우정을 놓치고, 스스로를 놓치곤 했다.
핀트가 어긋나 흐리게만 보이던 감정들을 이제서야 선명히 바라본다.
어쩌면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고개 돌려 버렸을지도 모를 그때의 비겁함을 이제서야 마주 본다.
미안하다, 내가 놓친 많은 것들아.

 

 '미숙했던 지난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아마도 편집자가 썼을 띠지의 이 문구가 이 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딱, 그런 책이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p. 112. < 모래로 지은 집 >

 

 

이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중, 단편이 실려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폭력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사랑 혹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는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변주처럼 존재한다.
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타인과의 '관계', 그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감정의 실낱같은 예민함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랄지, 숨기고 싶은 치졸함 혹은 내 속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헐벗은 감정들까지 모두 다 숨김없이.

 

 

예전부터 그랬어. 왜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왜 나 스스로가 그렇게도 못나 보였을까. 저리 가. 나는 그애에게 말했어. 내 눈에도, 남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왜 너는 죽지도 않아?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아있어? 그렇게 거칠게 나를 대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인 줄 알고서.
예전 일들을 잊고, 지워버리고, 연연하지 않으려 하고, 내 안에 갇힌 그애가 추워하면 더 외면해서 얼어죽기를 바라고, 배고파하면 그대로 굶어 죽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평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했지. 그게 다 뭐였을까. 그애는 나였는데.

p. 177~178. < 모래로 지은 집 >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모래로 지은 집>이었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중편이라고 봐야 할 이야기 속, 너무 많은 문장들이 마음을 쿡쿡 찔러대고는 했다.
<그 여름>이 사랑에서 오는 슬픔을 가장 선명하게 그려냈다면,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관계에서 오는 슬픔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여자 둘과 남자 하나로 구성된 소울메이트에 가까운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를 지나 현재로 오자 색을 잃고 바래버렸다.
하나의 손을 놓치고, 그렇게 빛나던 시절도 놓쳐버린 것이다.

반대로 가장 암흑이었던 시절 낯선 땅에서 만나 서로의 치유제가 되어준 <아치디에서> 속 인물들은 현재의 삶 속에 서로가 없음에도 마치 서로가 존재하는 것 같다.
서로를 통과해 지나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떠받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시간 속에도 여전히 아련하게 빛나는 그때의 '우리'가 숨 쉬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 여름>의 이경 또한 영영 그 사랑을 잃어버렸지만, 그 여름이 내내 이경에게 남겨졌다.
사랑이 영원히 끝나버렸어도 이경에겐 수이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했다.
그게 사랑의 상처인지, 벌인지, 트로피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사라지지 못한 채 존재하는 것들 중에는 가족이 가장 깊지 않을까 싶다.
기억조차 가물한 아주 어렸던 시간들을 내내 함께 했던 사람들.
<지나가는 밤>과 <손길> 속에 그려진 가족은 약간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국 그 마음의 깊이는 같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나도 외로운데 네 외로움까지 짊어지기가 힘들었던 언니와 너무 외로워서 사람이 간절했던 동생.
자꾸만 수렁으로 걸어가는 동생을 외면했지만, 결국 외면할 수 없었던 마음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도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무료하고 긴 하루하루로 이어진 시간,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그네를 타도, 공상에 빠져 이야기를 지어내도, 자신들이 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이고 관객인 연극을 해도,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거리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메워지지 않았던 커다랗고 텅 빈, 그 무용한 시절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p. 97. < 지나가는 밤 > 中

 

가족이란 피로 이어져 있어서 남이 될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무용한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남이 될 수 없었던 건가 보다.
내게도 남겨진 '커다랗고 텅 빈, 그 무용한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아냈던 사람들,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그 어린 시절 함께 마음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며 '무료함'을 견뎌냈던 사람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해인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죽어버렸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다시 살아나는 오래된 타인이었다.
p. 215. < 손길 > 中

<손길>에서 해인은 오래전 인사도 없이 남이 되어버린 숙모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남이었지만 절대 남일 수가 없는 숙모를.
어쩌면 엄마보다 더 믿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가족을, 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관계라는 게 얼마나 서글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토록 가까웠던 사람이 너무도 낯선 타인이 되어버리는 일이 우리 삶 속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영원히 좋고, 영원히 다정하고, 영원히 무해한 관계는 없다.
그래서 서글프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다.

내가 지나온 '관계'들을 통해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났지만, 가끔은 키만 멀대같이 큰 속이 텅 빈 대나무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사람을 잃을수록, 관계에서 탈락될수록 나는 점점 비어간다.
그때 놓쳐버린 그 손이 어떤 의미였는지 뒤늦게 깨달을 때마다, 앞으로 내가 잡을 손에 대한 다짐보다 놓쳐버린 손에 대한 상실에 더 깊이 앓곤 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지난 시간들, 그 속에서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그 시간 속에 갇힌 마음들.
때론 후회로, 때론 상처로, 때론 추억으로 남겨진 그때의 우리들이 이 책 속에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p. 121. < 모래로 지은 집 > .

 

 

 

모래로 지은  >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나비, 모래, 공무.
서로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나눴던 이야기들이 쌓여 공감대를 형성했고, 현실 속 만남에서도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웃사이더적인 색깔이 강해 보였던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더욱 단단해져갔다.

셋.
관계 속에서 3이라는 숫자는 가장 불안전한 숫자다.
첫애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부모 총회에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자아이들은 절대 셋이 어울려 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셋은 기어코 문제가 생기고 만다고. 홀수여서는 안된다고. 꼭 짝수로 놀게 하라고.
그때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면 관계 속에 3이라는 숫자는 실제로 늘 아슬아슬하다.

나비와 모래와 공무도 결국 똑같은 무게로 서있지 못했다.
같은 무게의 마음을 똑같이 나누며 똑같은 의미로 서로를 바라보지 못했다.

갈등을 어물쩍 넘기는 화해가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그 둘에게 화가 났다. 감정싸움에 섞인 서로에 대한 애정이 제삼자인 내게도 보여서, 그 애정이 나를 우리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서, 다툼의 맥락을 둘만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p. 122. < 모래로 지은 집 > 中

나비는 점점 밀려남을 느꼈다.
자신만 알 수 없는 비밀이 생기고, 자기는  모르는 감정을 공유하는 둘을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우린 셋이었는데, 우린 함께였는데, 어쩌자고 너희 둘은 사랑이 되어 버렸을까.

그리고 나는 왜 혼자 남겨졌을까.

물론 모래도 공무도 아무도 나비를 따돌리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민한 감정이라는 놈은 기어코 그 속에서 찾아내고야 만다.
누군가에게 좀 더 기울어진 마음이라든지,
색이 다른 감정이라든지,
둘만을 감싸는 아우라 같은 것들을.
그래서 결국 하나는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외톨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감정의 미세한 틈을 들여다보고 만 죄로.

 

 그런데도 그애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났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p. 118, < 모래로 지은 집 > 中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p.126~127, < 모래로 지은 집 >

 

나비는 모래를 질투했다.
모래가 나비보다 더 가진 것들에 대해.
모래가 그것을 조금도 과시하지 않았어도, 나비가 모래를 진심으로 좋아했어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틈이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비뚤어진 고약함 같은 것들이 삐죽 고개를 내밀곤 했다.
자기보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나,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더 밝고 다정하게 자란 모래를 보며 나비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나보다 빛나는 상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시기 같은 것.

네가 아무리 검소해도, 네가 아무리 사려 깊어도, 너처럼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덜 가진 혹은 결핍된 사람들의 영역이 있는 거라고, '가난'을 무기로 모래를 따돌린다.
너의 세계는 나의 세계와 다르다고. 어떻게 해도 겹쳐지지 못하는 세계의 틈이 존재한다고.
불행이라는 이름으로만 얻을 수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우월감으로 모래의 진심을 무시했다.
그것은 열등감과 질투가 엉망으로 뒤엉켜 구겨진 마음의 한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이 문장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구깃구깃 구겨져 있는 내 마음의 모서리를 힘껏 눌러 펴본다.
내 마음이 구겨져있다는 것을 내가 저렇게 과시했구나 싶어서 부끄러워진다.

 

 

스물하나의 나에게 이 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십 분의 일이었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시간과도 같은 양이었다. 나의 선택으로 공무를 만났고, 일상을 나눴고,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와 떨어져 있는 나는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식의 애착이 스물하나의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p. 131. < 모래로 지은 집 >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스물하나의 마음을 표현해 냈을까.
어쩌면 이렇게 형태가 없는 감정들을 실제하게 보여주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눈에 잡히도록 보여주는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최은영 작가의 가장 큰 힘이 바로 감정을 잡아채어 그것들을 형태가 분명한 문장으로 바꿔주는 능력 아닐까.
덕분에 나는 물렁한 반죽처럼 내 마음을 조금씩 떼어내어 건네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의 일부라고 여겼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내 마음의 반죽을 가지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네가 밉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날 밤, 나는 내가 평생을 속으로 다른 사람을 책망하며 살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는 것도.
나를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몰아붙이던 남자친구에게조차 나는 의존했었던 거지. 내가 내 힘으로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해 자꾸만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했던 거야. 내가 기대어 서 있는 벽이 자꾸만 무너지고 벽이 아니라 나를 해치는 돌덩어리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걸 털고 일어나서 자기 힘으로 서 있으려고 하지 못했어.
p. 178~179. < 모래로 지은 집 > 中

 

내내 나비의 시점으로 보여주던 과거 속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모두의 손을 놓으며 모래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그 속에서 모래는 나약하고 감추고 싶은 스스로에 대해 고백한다.
그리고 나비를 얼마나 의지했는지, 사랑했는지 말한다.

그렇게 모래의 손을 놓치고서야 나비는 깨달았다.
나비에게 모래 또한 그런 존재였다는 것을.
책망하며 의지했고, 시기하며 사랑했다는 것을.
스스로 상처받으면서까지 마음을 한껏 열어 사랑했던 것은 모래였고, 스스로의 메마름으로 어떤 꽃도 피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실할 수 없다.
p. 162~163. < 모래로 지은 집 >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사람,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주는 사람, 내가 벼랑 끝으로 낙하하지 않을 거라는 안도를 주는 사람.
과연 우리에겐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나는 몇 개의 밧줄에 매달려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사람을 잃고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울게 되는지.
밧줄이 하나씩 끊어져 나갈 때마다 세상과 한 움큼씩 멀어지는 아찔함으로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 밧줄이 하나씩 끊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삶으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었다.
그 공포를 잊을 수가 없어서 가끔은 내가 모든 줄을 잘라버리고 벼랑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지곤 했다.

그래서 사람에 집착하기도 하고, 그래서 되려 관계에 무심해졌다.
아무나 붙들고 싶다가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믿고 싶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 엄마라는 가장 튼튼한 밧줄을 잃었다.
저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 쳐야 하는 나는 놀랍게도 여전히 세상에 매달려 있다.
아직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아직 세상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남편이라는 단단한 밧줄이, 아이들이라는 길고 긴 밧줄이 나를 세상과 단단히 이어주고 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정확하게는 동성애 중에서도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그중 한 편인 '그 여름'은 사랑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이고, '고백'은 동성애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회(친구)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똑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되려 '고백'은 담담하게 읽어 내렸다.
잠깐 그 당시 내 표정은 어땠을지 떠올려 봤지만,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너무 오래된 이야기들이고, 내 친구는 묵묵히 한 사람과 굳건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주위 친구들 덕분인 건지, 워낙 심지가 굳은 애라서 그런 건지 여하튼 '동성애'에 관대하지 못한 나라에서 스스로가 성소수자인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 그 여름 >

열여덟 여름에 시작된 이경과 수이의 사랑.
첫사랑의 아릿함과 서투름, 그 환희와 고통의 경계를 읽노라니 '그해 여름 손님'이라는 책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미 스토리는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그 책 리뷰어들의 입을 통해 첫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이야기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 이경과 수이의 사랑 또한 '동성애'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면, 누구에게나 있었던 아릿하고 미숙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솔직히 퀴어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약간의 진입장벽을 느끼고 다른 단편들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맨 나중에 읽게 된 '그 여름'은 편견을 버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그 여름'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제 이경은 안다. 축구는 수이에게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이의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주 적은 수의 선택지 중에서 고른 일이었을 것이다. 수이에게 축구는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끈이었다. 그런 수이에게 이경은 선택에 대해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수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p. 20, <그 여름> 中.

 이경은 수이를 사랑했지만 서로가 살아온 환경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많았기에 조금 더 느긋할 수 있었던 이경에게 매번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수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거다.
사랑의 이름으로도 넘어서지 못하는 일이 존재한다.
또한 사랑의 이름을 달고 있기에 더 깊은 상처가 되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경과 수이는 너무 어렸다.
사랑의 깊이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이해의 깊이는 살아온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들의 서투름은 그래서 안타깝고 안아주고 싶어진다.

 

 

- 보고 싶었어요.
이경은 아직도 그 문자를 받았을 때 느꼈던 캄캄한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p. 47. < 그 여름 >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고야 말았던 문장이다.
'캄캄한 기쁨'이라니.
아니, 캄캄한 기쁨을 알고 있다니.
그래 그 마음이 캄캄한 기쁨이었지.
그 마음을 표현할 말을 알지 못했었는데, '캄캄한 기쁨'이라고 명명한 순간, 이제 그 감정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같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이경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경이 그 순간 느꼈던 그 감정을 너무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 테지,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게 행복한 캄캄한 기쁨의 순간.

안타까운 건 이경이 수이에게 느낀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랑이 시작되는 그 곤혹스럽고 음험하며 절망스런 순간에 느낌 감정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이 늘 찬란하거나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경의 첫사랑은 찬란하게 빛나며 시작되었지만, 이경의 두 번째 사랑은 고통스러운 어둠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경은 수이가 최소한으로 상처받기를 바랐다. 그래서 수이에게 은지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고, 그것이 수이를 위한 일이라고 철저히 믿었다. 수이를 속이지 않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경은 자기 자신조차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다. 이경은 자신의 기만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 거짓말이 비겁함이 아니라 세심하고 사려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려라니. 지금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 수이는 그런 식의 싸구려 거짓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도.
p. 52. < 그 여름 > 中

우리가 가장 진실하지 못한 순간을 고르라면, 그건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아닐까.
그냥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혹은 너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걸까.
가장 잔인한 방식이 가장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사랑했던, 혹은 사랑받았던 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사랑이 끝난 이유를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잔인함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게 사랑받았던 시간들에 대한 예의다.
잔인해지지 않으려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상처 주지 않으려고,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해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이 끝나버린 이유를.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이별의 순간, 가장 나를 존중했던 사람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잔인하다고 여겼던 말이 사실은 가장 다정한 말이었다는 것을.

 


 

 

 

<아치디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세 시간 동안 샤워하기. 돌아와 다시 두 시간동안 샤워하기.
그뒤로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열여섯 시간 동안 텔레비전 보기.
한심하게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라도 살기까지 얼마나 힘을 내야 했는지, 마침내 배가 고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밖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p. 261. < 아치디에서 > 中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 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 274. < 아치디에서 > 中

 

아치디에서를 읽다가 펑펑 울고 싶어졌다.
실제로 눈물이 날 만큼 슬픈 글이 아님에도 어쩐지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나는 어째서 저 마음을 알고 있는 걸까.
저런 속수무책을, 저런 끝없는 무력감을, 나는 어쩌자고 알고 있는 걸까.
그것을 알고 있어서 울고 싶어졌다.
모르고 살아도 좋을 감정을 하필 알고 있어서, 내가 저런 시간을 견뎌왔다는 게 울컥하고 치받혀서, 어딘가에서 그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에,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마침내 집 밖으로 나가고, 마침내 나를 미워하는 일을 멈췄을 때조차
내 속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차마 입 밖으로 낼 수조차 없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랄도를 통해 위로받았다.
랄도가 그 시간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더, 더 무너질 수도 있었을 랄도가 한심하게라도 버텨낸 시간들.
그 시간들을 칭찬한다.
스스로를 위로조차 할 수 없었던 하민은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을까.
하민의 지금이 궁금하다.
랄도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하민도 지구 어딘가에서 하민의 삶을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타인의 삶을, 타인의 생각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지만, 실상은 가장 잘 아는 감정에 공명하고 마는 것이다.
나와 같은 감정을 만났을 때 결국 울림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최은영 작가가 보여준 감정의 결들이 나를 자꾸만 진동하게 만든다.
마음속에 물결이 일고 있다.

쇼코의 미소도 사야겠다, 읽어야겠다.
왜 아직도 그 책을 사지 않았던 걸까.

 

 

 

 

어른이 된 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p. 99. < 지나가는 밤 >

 

관계를 통해 우리들은 어떻게 변해가고,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나' 아닌 '너'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인류가 아닌 이상,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로만 존재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인간은 누구나 '너'를 통해 '나'를 본다.
나 또한 누군가의 '너'가 되어 그가 지금 나를 통과하는 중이라면, 이왕이면 '무해한 너'가 되어주고 싶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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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00만 부 기념 특별 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스노우볼!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작습니다.;;; 엄청 작아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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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지금 슬픔을 마주하고 있다.
펑펑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그저 처연하고 먹먹한 슬픔이 안개처럼 아득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토해 낼 수 있는 슬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슬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어떤 '언어'로도 써내리지 못하는 막막한 슬픔이 있다.
그 자욱한 슬픔 속에서 나 또한 그 '열리는 문'을 찾고 있었던가 보다.

슬픔을 깊이 바라보다, 그 슬픔 속에서 한발자욱 떨어져 나와, 그 슬픔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삶의 순간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싶어서 책을 들었다.

 

 

 

 

 

/ 슬픔을 겪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끝 간 데 없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
끝내 누군가와 영영 이별한 사람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겪고 있다.
가족을 잃고, 연인을 잃고, 친구를 잃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통곡하고, 또 다른 이는 숨죽여 울고, 어떤 이는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마른 슬픔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은 다 다른 빛깔로, 다른 무게로, 다른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닮은 빛깔의 슬픔을 껴안고 사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서로의 슬픔의 깊이를 어림할 수 있는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그 슬픔은 위로받는다.
그이가 지금 슬픔의 한가운데 서 있지 않더라도, 희미하게 남겨진 지나간 슬픔의 흉터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남긴다.
그 슬픔의 시간을 지나온 이를 보면서 우리는 안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있구나.
살아서 그 슬픔을 건너왔구나.
나도... 견딜 수 있겠구나.
여전히 누군가를 잃은 가슴은 헛헛하겠지만, 슬픔을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슬픔의 흉터는 때론 그래서 더 큰 위로가 되어준다.

 

 

 

 

 

비탄 속에 빠져 아스팔트 길을 혀로 핥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직면한 것은 오히려 색이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색이 '색깔이 없는 색'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_ p.156

 

 

 

이 책에는 많은 슬픔의 기록들이 있다.
비통한 심정으로 견뎌낸 시간들의 기록이다.
그이들이 지나온 슬픔의 길들.
그 슬픔을 지나 열린 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오늘.
그들의 흉터가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다정한 위로의 말 따위는 필요 없다.
말이 더 이상 의미를 담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도 많다.
때론 침묵이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저자는 나에게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슬픔을 벗어나는 방법 따위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읊조리듯 담담히 자신의 흉터를 내보여 줬을 뿐이다.

이렇게 조용하고, 다정하고, 깊은 위로가 또 있을까.

 

 

 

 

 

토해지지 않는 그 막막함들이 내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았는데,
실체가 보이지 않는 슬픔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마음들을, 그런 시간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 덕분에 다시 몸속에 공기가 들어 찬다.
크게 숨을 들이쉬어 본다.
앞이 보이지 않게 자욱하던 슬픔의 안개가 조금 뒤로 물러선다.

말이 되어지지 못하는 무언의 슬픔은 '시'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가슴에 시인을 품고 산다고 한다.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슬픔의 '시정'을 느낀다.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던 나의 슬픔의 토로들이 슬픈 시구였던가.
응어리진 채 불확실한 모습으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어떤 감정들이 여전히 내 속에 있다.
그 불투명의 낯선 감정들이 어느 날 시가 되어 나를 뚫고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의 생각을 읽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이 훌륭하면 할수록 시는 우리에게 시인의 고백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찾으라고 재촉한다. 미지의 타인의 말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뭔가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독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보다도 더 자신에 가까운 말을 시 속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_ p.136

 

 

내 속의 내가, 이렇게 종종 낯설어서, 잘 모르는 타인 같을 때,
나는 책을 읽고, 시집을 읽는다.
자신보다 더 자신에 가까운 말을 본능적으로 낚아채기 위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가장 먼저 엄습해오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고독이다. 하지만 떠난 자로 인한 고독은 그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다는 탄식이다. 슬픈 감정은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p.119~120

 

 

 

책 속에 굉장히 자주 등장하고, 깊이 관여하는 감정은 와카의 감정인 것 같다.
와카는 만가(挽歌), 즉 죽은 자에게 들려주는 노래이다.
시조에 음률이 생겨 곡조로 불리는 형태인듯 싶다.
죽은 자에게 올리는 기도 혹은 추모의 마음같이 여겨지는 와카는,
가닿을 수 없는 이에게 닿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죽음 앞에 우리는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린 것만 같지만,
사실은 그저 '죽은 자'와 '산 자'로 나뉜 것 뿐이란다.
죽음을 경계로 이곳에 내가 '산 자'로 남겨졌을 뿐이고, 그들은 경계 너머에 그저 '죽은 자'로 서있는 것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전혀 새로운 우주에 내가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죽은 자들은 내가 사랑했거나, 혹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아빠, 엄마, 외할머니.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내 영원히 그들을 잃었다고만 생각했었다.
불현듯,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오는 그리움들과 치열하게 싸워댔다.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이들을 만지고 싶어서 슬펐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죽은 자'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뿐, 여전히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책을 읽다가 깨달았다.
가닿고 싶었던 나의 열망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을.
상실의 고통은 그들이 내게 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들을 잊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느라 생겨난 감정이라는 것을.

엄마가 여전히 내 곁에 있음을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손은 닿을 수 없을지 몰라도, 마음은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어 여전히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와카를 읊조리고 싶어지는 밤이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낫다고도 부족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작품을 쓰는 것은 작가의 역할이지만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품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글을 다 쓰고 난 시점에서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간다. 글은 쓰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고 독자들이 읽음으로서 결실을 맺는다. 독자들이 읽어야만 비로소 영혼에 말을 건네는 무형(無形)의 언어가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독자는 작가와는 다른 눈높이에서 작품을 읽고 다른 뭔가를 창조해낸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작품의 전모를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아는 것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p.26~27

 

독자란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작가도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의미를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의 심층까지 발견해내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고유의 역할이 독자들에게 위임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책을 펼칠 때마다 몇 번이고 상기해야 한다.
또한 문학이란 유리책장에 장식으로 꽂힌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단 한 번뿐인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p.162

 

 

 

 

가장 이상적인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아닐까.
'읽는다'라는 행위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저자는 여러 번 피력했다.
쓰는 행위만큼 읽는 행위 또한 깊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로 창작의 고통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면서, 읽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대단한 평가는 없다.
글쓴이의 의도나 생각들이 더 중요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읽은 사람의 해석과 의미가 저평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의 저자는 독자 또한 읽음으로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작가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글은 독자를 만남으로서 완결된다고 말한다.
나와 만나, 내 내면의 소리들과 부딪혀, 진정한 하나의 책이 탄생된다니.
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표현인가.

작가의 생각을 강요받던 독서는 이제 끝났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오롯한 시선으로, 나의 해석과 의미로 책을 완결하고 싶다.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는 그저 각각의 고유한 영역일 뿐인것이다.
당신의 말이 맞고 내 말이 그른 것도, 당신의 말이 그르고 내 말이 맞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당신만 쓸 수 있고, 나만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글이 있을 뿐이다.

좀 더 깊이, 더 농밀하게, 의미 있는 책 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희망, 사랑, 신뢰, 위로, 격려, 치유, 그 어느 것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하나같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인생을 바닥에서 지탱해주고 있다.
_ p.19

무엇인가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마음속에 무지의 방을 만들어야 한다.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탐구를 계속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_ p.29

 

인생의 의미는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소박한 말이지만 우리는 매번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머리로만 생각하기에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_ p.65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 한 번의 눈길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_ p.99

태어나는 것은 사라져가는 과정이며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_ p.141

 

 

 

 

이 작은 한 권의 책 속엔 짐작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잠깐의 유희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부터 파생된 오랜 여운과 생각들은 마음을 뒤척이게 만든다.

담담해서 더 깊은 위로들.
그냥 스치기엔 너무 깊어 자꾸만 되읽는 문장들.
손끝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더듬어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특히나 나에겐 고요한 침묵 같은 묘한 위로를 건네준 책이었다.
책은 분명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왜 내겐 침묵한 채 곁을 지켜주는 친구 같았을까.


이 책을 집어 든 독자가 종이에 적힌 말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응당 만나야 할 말들과 조우하는 경험의 계기가 된다면 필자로서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응당 만나야 할 말들과 조우하면서, 내 안의 안개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단연하지만 우리는 단 한순간도 똑같은 존재일 수가 없다. 지금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매 순간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지금밖에 할 수 없는 한 번뿐인 일이다. 의식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항상 지금밖에 쓸 수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 끝머리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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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 세트 - 전2권
남궁현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어리석은 나의 첫사랑.
엇갈린 우리의 20대.
누군가에게 한 번도 일등이 되어보지 못한 당신에게.

작가의 말, 첫 세 문장이다.
이 세 문장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첫사랑을 했던 우리들, 엇갈린 20대를 보냈던 우리들, 누군가에게 그 일등이 되어보고 싶어서 죽을 만큼 노력했던 우리들.
우리는 다들 그런 시간들을 걸어서 이곳에 서 있다.
무참히 밟고 선 시간의 두께가 어른의 얼굴을 만들어 줬다.
우리는 다들 한 번쯤 사랑을 잃어본 사람들.
사랑 때문에 아파보고, 사랑 때문에 울어보고, 사랑 때문에 무너져 본 사람들.
건너온 시간들은 굳은살이 배겨 단단해졌지만, 굳은살 깊이 숨어있는 여린 살들에겐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박원의 노래 가사처럼, 노력으로 될 수 없는 그 첫 번째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의 우리들에게 이 책은 다정한 다독임 정도는 되어 주지 않을까.

 

 

 

",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면 …… 견딜 수가 없어."
" …… 차라리 남자를 사랑하지 그랬냐."
2p.132

 

 

사랑은 반듯한 사람도 휘어지게 만든다.
치근덕대는 남자들이 귀찮아서 유부녀라고 말하고 다니는 자온.
그런 자온에게 자꾸만 끌리는 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감춰야 했던 둘.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사랑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텨내야 했던 두 사람.

자온이 만약 진짜 유부녀였다면, 운은 결국 가장 질척이고 비난받을 사랑 위로 끝끝내 넘어지고 말았으리라.
반듯하게 걷던 그가 어쩌다 하필 그런 사랑 위로 넘어지고 말았는지, 왜 진창 속을 휘적휘적 걸어가야만 했는지, 사랑은 왜 그토록 고약하고 지독한지... 한탄하고 서글퍼하며 그들을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끝까지 꿋꿋하게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지켰다.
이 사랑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상대방 곁에 선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기어코 버텨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섞여들어 버렸는데, 단지 그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테니 그 비난의 눈초리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자온이 혼자라서, 다행히 운의 사랑은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함께 시작되지 않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올바른 사람도 늘 올바를 수 없고
착한 사람도 끝없이 착하기만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사랑 앞에 우리는 대부분 방향을 잃고 헤매인다.
지독히도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기적이고 옹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랑 앞에 강하기가 참 어렵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의 모습들.
우리 속에도 자온과 운과 건영과 태준, 자온의 언니 그리고 자온과 운의 부모님들의 사랑의 모습들이 다들 조금씩 숨어있는 건 아닐까.
어떤 시기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랑의 발화 모습이 조금씩 다를 뿐.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함부로 비난할 수가 없나 보다.
세상에 나쁜 사랑은... 있을까? 없을까?

 

 

"워워. 특정 여자 생기면 나도 음란하게 살 거야. 물론 상대방 동의하에, 그 사람하고만."
1권 p.116

달려가 꼭 안고 싶지만 이자온을 생각해 참는다.
집에 가기만 해.
두부처럼 으깨 버릴 테니까.
2권 p.251

 

 

 

반듯한 남자를 매력적이게 하는 것은 '반듯함'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비뚤어짐'이 아닐까.
차가운 남자의 열정이랄지, 도도한 남자의 귀여움이랄지, 무뚝뚝한 남자의 다정함 같은 것들.
그러니까 겉모습과 다른 그 안에 숨겨진 반전 매력이 그 사람의 반듯함을, 차가움을, 도도함을, 무뚝뚝함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단정한 운 속에 꿈틀대는 욕망 같은 것들이 그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해준다.
반듯한 남자도 밤엔 좀 비뚤어질 필요가 있지.
그 흐트러진 모습이 오직 한사람 한정이라는 게 그에게 더 빠지게 되는 지점이긴 하지만.

어쨌든 반듯한 남자의 욕망은 읽을 때마다 즐겁다.
온아, 너 좀더 탈선해야겠다.
노력하자.ㅋ

 

 

 

처음엔 내 애인의 절친이었고, 그다음엔 내 동창의 애인이었고, 마지막엔 내가 사랑하게 된 여자야. 벌써 6년째.
1p.85

 

 

 

지건영이라는 캐릭터가 생각보다 보편적인 남자의 캐릭터일 수도 있다는 점이 슬프다.
여자를 유희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는 남자.
연애만 할 여자, 결혼할 여자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아름답고 매력 있지만 데리고 자기만 좋은 여자와 단아하고 똑똑하고 음식도 잘하고 부지런한, 데리고 살고 싶은 여자.
여자라는 존재를 소비와 소유의 존재로 나눠서 생각하는 남자의 이중성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몇 번 자보니 지겨워진 여자와 한 번도 못 자 봐서 더 갈증 나는 여자.
유인을 소모품 취급하는 건영이 말하는 '사랑'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과거 속, 네 사람은 모두 어딘가 한 곳이 망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들러붙어 기생하며,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 넷이 공유했던 시간들은 과연 사랑이었을까.
나는 누구에게도 섞여들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빠져들지 못한 채 내내 관찰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같이 호흡하지 못한 채, 감정을 배제하고 바라본 그들은 그냥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그 불편한 질척임을 견디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현재의 이자온과 지건영은
말 그대로 너무 불편한 사이.
입안에 자꾸만 씹히는 사그락거리는 모래알 같은 사이.
뱉어도 뱉어도 입안 어딘가를 맴도는, 신경을 거스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알 같은.
절대 삼킬 수 없는 사이.
미숙함과 치기 어린 시절의 밑바닥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이.
미숙함은 상처로, 어린 치기는 부끄러움으로 남겨진 사이.
그들 사이엔 물과 기름처럼 섞이고 싶어도 절대 섞일 수 없는 시간의 기억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보는 내내 얹힌 것처럼 불편했다.
단지 감정의 시간이 어긋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불편한 시간들을 공유해버린 그들이 여전히 섞이고 싶어 부딪히는 모습이 거북했다.
놓쳐버린 인연이라고, 그저 미련 정도로만 비쳤으면 좋았을 사이들인데... 모르겠다, 나는 미련을 빙자한 다른 감정들을 그들에게서 엿본 기분이었다.

딱 그맘때의 치기 어리고 보이는 것에만 미혹당했던 지건영의 모습이 차라리 나았다.
그 모든 지저분한 시간들을 기어코 다 지켜본 자온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갈망하는 지건영은 싫었다.
지건영을 지저분하게 만든 건 거짓말을 한 유인이 아니라 욕망에 사로잡혔던 스스로였음을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
사랑이라는 것은 늘 그토록 잔인해서, 기어코 친구의 연인이었던 건영을 사랑하게 된 자온은 안쓰럽게 여겨져야 했건만, 나는 왜 불편했을까.
사랑을 버리려고 내내 어긋난 선택만을 했던 자온.
그래서 내내 불행했던 자온.
그런데 그랬던 둘을 이기적으로 느꼈던 건 나뿐일까.

유인은 거짓말을 했고, 멍청했으며, 교활한 여자로 등장했지만,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런 유인을 가운데 두고, 고고한 사랑을 했던 둘은... 유인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사이에 끼어 어부지리로 자온을 차지했던 태윤 또한 나쁘다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저들 중에 나쁜 사람은 누굴까.


책 속 인물 중 어느 누구 하나 매끄럽게 꿀꺽, 삼켜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인생이 모래알을 삼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거슬리고 삼켜지지 않는 모래알을 모른 척 꿀꺽, 삼켜넘기는 일.
그것이 우리들의 삶인 건지도.
완전하지 않은, 그래서 누구나 가지는 불안과 어둠과 미숙함과 위선들.
하필 인물들은 모두들 그 단면 하나쯤은 짊어지고 있었다.
편하고 쉬운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속에서도 까슬한 모래알이 구른다.
불편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지난 시간의 그들도, 현재의 그들도, 이제 사랑을 시작한 둘마저, 어딘가 불편하게 들러붙은 모래알을 찾지 못한 채 심장을 뒤척이게 만들었다.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럽고 완벽한 인물들에 익숙했던 내게,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들의 모습은 되려 낯설었던가 보다.
사실은 그게 인간적인 모습인 건데.
로설을 너무 읽었나.
어느 사이에 매끄럽게 포장된 인물들에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껄끄러운 현실에 건배를.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그 껄끄러움은 운과 자온의 소소한 하루들에 묻혀 잊혀져 갔다.
둘 사이에도 어쩔 수 없이 해결되지 않은 거짓말이 존재했지만,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더 애틋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하루가 예뻤다.
지난 시간들로부터 걸어 나오기 시작한 자온의 지금이, 올곧게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운의 아낌이 너무도 어여뻤다.
기꺼운 그들의 다정함이 글 초반에 까칠해졌던 내 마음을 뭉툭하게 깎아내렸다.
옥탑방의 하늘이, 텃밭의 채소들이, 옆집에 사는 지석이 반짝반짝 빛났다.
집 앞 골목에서도 애정이 묻어나는 작가님의 문장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의 어깨는 가족과 함께 웃고 떠들 때도 무겁다.
2권 p.11

흔히들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전 그 말에 늘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존재니까요. 아닐 것 같나요?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단 덜 불행하구나, 덜 아프구나, 그런 것에 위안을 받고 살아 갈 힘을 얻기도 하죠.
2권 p.73

 

 

위트 있는 문장도 잘 쓰시지만, 역시 묵직한 문장 또한 잘 쓰시는 것 같다.
굳이 어렵게 꾸며쓴 문장이 아닌데도 가슴에 톡톡,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문장들이 여럿이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모습들을 담담히 그려낸 문장들,
계절을 표현하고, 하루를 여는 시간들을 담아낸 흔한 문장 한 줄도 마음을 잡아채곤 했다.
오랜만에 가득 찬 석류알처럼 속이 꽉 들어찬 보석 같은 글을 만났다.

다들 내 취향일 거라고 그렇게 권했던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싶어서, 나의 그대들에게 감사를.
그대들 덕분에 이 작가 책은 이미 집에 다 있으니, 이젠 나머지 책들도 배부르게 읽기만 하면 될 테다.

좋은 글은 마음을 배부르게 한다.
마음에 토실토실 살이 오른다.
가을도 아닌데.

 


 

 

이도우 작가님의 사서함....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 또한 취향 저격일거라고 강추해 본다.
읽으면서 사서함 같은 분위기를 많이 느꼈으니까.
이를테면, 그 현실적인 껄끄러움 같은 것들.ㅋ
사서함에선 남주에게, 이 책에선 여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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