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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지금 슬픔을 마주하고 있다.
펑펑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그저 처연하고 먹먹한 슬픔이 안개처럼 아득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토해 낼 수 있는 슬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슬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어떤 '언어'로도 써내리지 못하는 막막한 슬픔이 있다.
그 자욱한 슬픔 속에서 나 또한 그 '열리는 문'을 찾고 있었던가 보다.
슬픔을 깊이 바라보다, 그 슬픔 속에서 한발자욱 떨어져 나와, 그 슬픔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삶의 순간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싶어서 책을 들었다.


/ 슬픔을 겪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
비탄 속에 빠져 아스팔트 길을 혀로 핥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직면한 것은 오히려 색이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색이 '색깔이 없는 색'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_ p.156
이 책에는 많은 슬픔의 기록들이 있다.
비통한 심정으로 견뎌낸 시간들의 기록이다.
그이들이 지나온 슬픔의 길들.
그 슬픔을 지나 열린 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오늘.
그들의 흉터가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다정한 위로의 말 따위는 필요 없다.
말이 더 이상 의미를 담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도 많다.
때론 침묵이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저자는 나에게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슬픔을 벗어나는 방법 따위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읊조리듯 담담히 자신의 흉터를 내보여 줬을 뿐이다.
이렇게 조용하고, 다정하고, 깊은 위로가 또 있을까.

토해지지 않는 그 막막함들이 내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았는데,
실체가 보이지 않는 슬픔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마음들을, 그런 시간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 덕분에 다시 몸속에 공기가 들어 찬다.
크게 숨을 들이쉬어 본다.
앞이 보이지 않게 자욱하던 슬픔의 안개가 조금 뒤로 물러선다.
말이 되어지지 못하는 무언의 슬픔은 '시'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가슴에 시인을 품고 산다고 한다.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슬픔의 '시정'을 느낀다.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던 나의 슬픔의 토로들이 슬픈 시구였던가.
응어리진 채 불확실한 모습으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어떤 감정들이 여전히 내 속에 있다.
그 불투명의 낯선 감정들이 어느 날 시가 되어 나를 뚫고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의 생각을 읽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이 훌륭하면 할수록 시는 우리에게 시인의 고백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찾으라고 재촉한다. 미지의 타인의 말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뭔가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독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보다도 더 자신에 가까운 말을 시 속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_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