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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이상한 나라 - 꾸준한 행복과 자존감을 찾아가는 심리 여행
송형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사춘기를 지나오며 나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누구보다 격렬하게, 뜨겁게, 나 스스로를 알고자 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것을 잘 하는지... 나는 참 열심히도 탐색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치열한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 스스로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삶의 리듬이 바뀌면서 나라는 사람 또한 내내 끝없이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가 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해두고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했음을 요즘 몸소 느끼고 있다.
내가 알던 나와는 너무도 달라 보이는 나를 만난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놀라게 되고, 스스로의 행동에 생경함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내가 낯선 타인 같다.
내게는 다시 나를 탐험할 기회가 필요했다.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놓치고 있었던 나와 대면해야만 했다.
끝없이 늘어지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자주 우울해지는 요즘의 나.
무엇에도 제대로 마음을 빼앗기지 못하는, 열정이 소멸되어 버린 내가 나조차도 무겁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과 끝없는 자책과 버려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들이 나를 자꾸만 한없이 가라앉게 만든다.
오로지 슬픔 때문이었나, 그것마저 속임수처럼 느껴지려고 한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떤 '나'가 나를 이렇게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기어코 찾아내어 만나야만 했다.
어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늘에 멈춰있지 않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나라는 이상한 나라'라는 이 책이 내게 탐험서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내 속을 들여다보고,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치유의 시간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다.
이 책은 1부, 2부,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1부가 인상적이었다.
'나 들여다보기 연습'이라는 명제로 쓰인 이 장은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연습을 이야기한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본능이 너무나도 커서, 이를 거스르고 자기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네'라고 깨닫더라도, 불과 며칠 후에 ' 그 생각조차 나의 위선이었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끝없이 자기를 불편하게 하며 재분석하는 것만이 객관화라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p. 056~057
1장 나를 푸는 공식에서 설명하는 방법은 나를 제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하고야 마는 수많은 상황들에서 좀 더 정확히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한 걸음이 아니라 열 걸음쯤은 떨어져 나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나'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가정하고 나를 바라볼 때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조금은 낯설고 낯 뜨거운, 몰랐던 '나'가 그곳에 있다.
이 장을 읽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시선이지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야겠구나 생각하고는 했다.
나는 내면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볼 때는 투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상대의 행동을 확대 해석하기도 싫고, 단점을 찾아내 싫은 감정을 가지고 싶지도 않다.
적당히 모른 체, 적당히 묵인하면서, 블러 효과를 듬뿍 덧씌워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부러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예민한 사람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기 쉽고, 반대로 상대의 자그마한 말이나 감정 변화에도 상처받기 쉬우니까 스스로를 보호하는 나름의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상대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착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모양이다.)
무뎌지기 위해서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 어쩔 수 없는 나의 내면의 예민함이 완전히 뭉툭해지진 못했지만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뭉툭하고 무던해졌다.
한데 이제는 그 뭉툭한 시선이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다 보니, 실제로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그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애초에 심플할 수가 없는 복잡한 관계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여자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낭패를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은 대체로 복잡한 동물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는 더더욱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결을 가진 집단이기에 그 속에서 완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시선이 되려 필요한 것이다.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을, 말끝에 남은 침묵을 제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나를 푸는 공식'에서 제시해주는 나를 타인으로 인식하며 바라보는 방법들 중에는 그 사람의 말 너머의 숨겨진 진심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것도 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말 너머의 진심을 해석하지 않으려는, 타인을 바라보는 흐려진 나의 시선에 대한 고민이 일었다.
일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서는 한마디 말에 수많은 사족이 딸려 있다고 의심하곤 한다.
그 속에 숨겨지는 진심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고심하고 고심하다가 결국엔 왜곡과 왜곡을 거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고서야 해석을 마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별 뜻 없던 말이 어느 순간 날카로운 무기로 변신해서 상대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되려 시어머니의 말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했었는데, 돌려서 은근히 한 말들을(그게 나쁜 말이든 좋은 말이든) 내가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심플해지고 단순해지려고 무던히 노력한 결과가 무심하고 남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나를 자꾸 옮겨가고 있다.
그 사람이 말속에 숨긴 진짜 의미, 행동에서 내보이는 감정들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고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뾰족한 것도 남을 찌를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뭉툭한 것 또한 좋은 것 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무언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대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많아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실은 어릴 때 자신의 왜소함을 감추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은 경우도 있고, 돈에 매우 열중하지만 그 이유가 어릴 때의 가난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다. 과도한 집착이 그의 빈곤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다.
_ p.085
크게 아픈 것은 아닌데 항상 "몸이 안 좋다"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가족에 대한 불만이 모두 "몸이 안 좋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인데,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족들은 모두 내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행여 가족 중 누군가가 치료를 하자고 하면 "의사들은 내 병을 몰라"라고 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으며, 운동이나 금주를 권하면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운동을 하고 술을 끊겠냐"라고 한다. 이들은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이용해 적당히 가족에게 의존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사실, 내 얘기).
_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