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허난설헌 시선집
나태주 옮김, 혜강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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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난설헌의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시가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이 책이 출간되었는지, 마침 출간 예정이었던 책이 드라마를 만나 좀 더 쉽게 독자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반갑다.
시대를 잘못 만나 서글픈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을, 그녀의 시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으니 어떤 이유에서건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필 여자에게 너무도 가혹하기만 했던 시대를 만나, 넘치는 글재주가 되려 독이 되었던 그녀, 난설헌.


그녀의 시를 요즘의 언어로 나태주 시인이 편역했다.
거기에 일러스트레이터 혜강의 고운 그림이 더해져 운치를 살려준다.

 

 

 

시를 읽는 즐거움에 그림을 보는 재미를 더해주어 시집 읽는 일이 훨씬 더 행복했다.
때로는 예쁘고 고운 꽃그림을 보려고 시집을 꺼내도 좋을 듯하다.
시가 시 자체로도 빛나겠지만, 시를 닮은 고운 그림과 만나면 읽는 이의 눈도 마음도 더 즐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어쩜 이렇게 딱 맞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아낸 건지, 출판사의 센스에 엄지 척.^^

 

 

 

 

그녀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짤막하게나마 알아볼 필요가 있을듯하다.
감사하게도 편역을 맡은 나태주 시인께서 발문에 그녀의 삶과 시에 대한 글을 몇 장에 걸쳐 적어두셨다.
2011년에 난설헌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도 그녀의 삶이 다뤄진 적이 있지만, '허난설헌'의 이름은 다 알면서 그녀의 삶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듯하다.
'글재주가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그 때문에 남편과 시댁에서 핍박을 받아 불행한 삶을 살다가 요절한 비운의 여인' 정도가 난설헌의 이름으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정보 아닐까.

그녀의 삶 속으로 한 발 더 들어서 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글 속으로 한 발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고, 어떤 마음들을 시에 남겨 두었는지, 그녀의 마음결을 따라 천천히 거닐어 본다.

 

 

 

 

여인의 수줍은 마음과 당돌한 고백이 담겨있어 깜짝 놀랐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좀 더 수동적이고, 질투를 드러내는 게 죄악인 걸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참고 인내하는 게 익숙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던가 보다.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여자들의 마음이란 똑같구나 싶어서 설핏 웃음도 난다.
칠거지악이 사라진 시대에 태어나, 솔직한 생각과 마음들을 꺼내놓고 살고 있다는데 감사함도 밀려온다.
시로 자신의 마음을 은근히 드러낸 난설헌의 센스 또한 품격이 느껴진다.
뭐랄까 좀 더 고급스런 투정이라고 할까, 은근한 고백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의 남편 성립이 조금만 덜 옹졸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서신을 남편과 주고받으며 얼마나 어여쁘게 살았을까 싶어서 안타까움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남자고 여자고 배우자를 잘 만나야 삶이 온전해지는 법인가 보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가 혼인 전 가장 다정히 지냈던 둘째 오라버니에 대한 그리움은 애잔하다.
둘째 오라버니 하곡은 난설헌의 스승이었고 시문의 동료였다고 한다.
중국에 다녀오는 길에 두보의 시집을 구해 여동생에게 선물해 줄 정도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하곡.
그런 오라버니가 귀양을 갔으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지고 슬펐을지 짐작해 볼 만하다.

비단, 오라버니에게 쓰인 시에서만 쓸쓸한 애잔함이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지내며 지은 듯한 시는 더욱 쓸쓸하고 서글프다.
그런 시의 끝맺음에는 늘 눈물이 묻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외롭고 힘들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주는 안타까운 시들이 여럿이다.
그 슬픔들을 홀로 시로써 달랬을 그녀를 생각하면 안쓰러움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랑받아 마땅한 이에게 내쳐지는 슬픔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난설헌의 그 안타깝고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그녀의 마지막 시로 이 시집은 끝맺음 하고 있다.
그녀는 꿈에 본 풍경을 시로 짓고, 스물일곱의 꽃 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녀가 더 오랜 세월 삶을 영위해갈 수 있었다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 다채로워지고 농후해졌을 그녀의 시가 얼마나 많았을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들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기어코 그녀의 재능을 죽여버린 그 시대가 원망스럽다.

짧은 생을 살다간 그녀의 시들이 당시의 중국으로 건너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대목에선 어쩐지 서글퍼졌다.
태어난 나라에서, 조선의 시인으로 더 사랑받지 못함이 분해서다.
여인의 글재주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에 대한 원망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뛰어나면 안 되는 그 빌어먹을 시대 때문에, 기록에도 남지 못한 채 쓰러져 간 수많은 꽃 같은 목숨이 안타까워 한숨이 난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났고,
많고 많은 역사가 쓰여졌다.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변했나.
남자보다 뛰어난 여자의 재능이 여자라는 이유로 저평가되는 시대는 정말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난설헌을 죽인 것은 조선일까, 한국일까.
여전히 어딘가에서 난설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서늘해진다.

 

 

 

 

책의 마지막에 한시 원문이 실려있다.

우리가 지나온 어느 시절에, 한문을 등한시하며 학교에서도 한문이 선택교과였던 때가 있었다.
하필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덕분에 나는 한문을 배우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 조우하게 된 한문은 나에게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초를 건너뛰고, 획 그리는 법도 모른 채 강제로 외워야 했던 한문은 그냥 그림마냥 따라 그리기 일쑤였다.
덕분에 지금도 한문 울렁증이 있다.
영어보다 한문이 더 싫고, 어렵고, 외우고 싶지도 않은 언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문을 모른다는 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
시시때때로 굉장히 자주, 나는 바보가 되곤 했다.
한글의 절반은 한문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한글 표현의 많은 부분이 한문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글자가 한글이 아닌 한문 자체로 쓰여있는 경우엔 그냥 딱, 바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한시 원문이 궁금했었다.
분명 한문으로 쓰인 시일 텐데, 글자를 맞춰서 뜻을 고르고, 운율에 맞춰 적힌 시일 텐데, 그것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감사하게도 한시 원문에도 한문과 한글이 같이 적혀있고,
더 감사하게도 시집에는 나태주 님의 편역으로 아예 한글 시로 탈바꿈한 시가 실려있으니
한문 무식자에게도 한시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었다.
물론 한시의 진짜 맛을 알아 원문을 읽으며 감탄하고 또 감탄할 수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 나태주 시인의 편역으로 한시를 훔쳐 읽어 본다.

그래도 괜히 한시 원문 또한 따라 읽어본다.
괜히 낱자의 뜻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 속에 적혀있을 난설헌의 마음을 좀 더 가까이 더듬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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